길을 걸으며 울고 있는 그녀 ⓒ최선영

머리가 헝클어진 것도 스카프가 흘러내린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걷고 있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스치는 낯선 이들의 시선 따위는 그녀에게는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눈에 고여 있는 눈물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 이야기는 그녀의 볼을 타고 쏟아져 내립니다

그 이야기들이 땅에 닿기 전에 힘없이 내갈기듯 움직이던 그녀의 걸음이 멈춰 섰습니다

그녀는 숨을 가다듬고 바짝 마른 손으로 볼을 타고 있던 눈물의 흔적들을 지우고

카페 안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조금 식어진 커피를 앞에 둔 그는 그녀를 반갑게 맞으며 손짓합니다

그녀에게 느껴지는 그 무거움을 그도 금새 눈치 챘는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립니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앞에 놓여 있는 커피만 바라보다 입술을 살짝 깨물던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우리 이제는 정말 정리하자 이젠 진짜 그러고 싶어”

차갑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 무게가 느껴집니다

“힘 빼지 말자 내 대답은 항상 같아”

그의 대답도 무겁고 단호했습니다

“민석이도 어제 진단...”

떨리는 목소리로 채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마주 보고 있는 그녀와 그 ⓒ최선영

그리고 다시 단호한 억양으로 말을 합니다

“나도 그럴 거야 내 아이도 그럴지 모르고...”

“알아 난 상관없어... 너와 내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넌 나를 떠날 수 있어? 아니잖아”

그녀의 팔을 낚아채며 그가 말을 합니다

“사랑만으로 넘기에는 너무 큰 산이야 내가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녀는 그의 팔을 뿌리치며 말을 던집니다

한참을 그렇게 끝이 나지 않는 말들이 오갔습니다

그러다 그녀는 그를 남겨둔 채 카페를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그가 있는 그곳에서 멀어집니다

뒤쫓아 나온 그는 미처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그녀가 떠난 텅 빈 거리에

혼자 남아 그녀의 사라져 가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3층으로 되어있는 발라 앞이었습니다

집을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에 또 다른 걸음이 더해집니다

그녀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안내견과 함께 오고 있는 동생을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안내견과 함께 오는 그녀의 동생 ⓒ최선영

“누나야?”

“응 나야”

그녀는 동생과 함께 3층으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누나... 이 녀석... 어떡하지...”

동생의 말에 그녀는 아무 대꾸도 없이 조심스레 계단만 오릅니다

3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가족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습니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가족들의 표정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꺼냅니다

“얘들아 미안하구나...”

아직 앳돼 보이는 모습이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애써 웃어 보이며

어머니의 말을 이어받습니다 “엄마 괜찮아요... 엄마 때문이 아니잖아요”

그녀와 함께 들어온 동생이 남학생의 어깨를 말없이 토닥거려줍니다

그녀가 말을 꺼냅니다

“너무 낙심하지 마 아직 먼 이야기야”

“누나 난 괜찮아”

남학생이 애써 웃어 보이며 대답합니다

그녀에게는 남동생이 둘 있습니다

바로 아래 남동생은 실명을 한 상태이고

어제 병원에 다녀왔다는 막냇동생은 같은 병으로 진단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40세에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 어머니를 보면서

그녀는 늘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자신과 두 남동생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처음 동생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차라리 그녀 자신이기를 바라며

동생에게 일어난 현실에 많이도 아파했습니다

그런데 막냇동생에게까지... 그녀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다음날 그녀의 집 앞에 그가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말없이 한참을 걷습니다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말하지 못한 게 항상 미안했어요”

그녀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에 대해 말하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스럽고 미안했습니다

그녀에게 함께 하자고 토닥이는 그 ⓒ최선영

“어머니에 대해 처음부터 알았더라도...

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내 마음은...”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시 헤어질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네가 어떻게 되어도 난 너와 함께 할 거야...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내가 네 눈이 되어 네가 나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줄게“

그의 진심이 담긴 그의 말에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밀어내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기로 마음먹습니다

“고마워요...”

“사랑하는 사람은 고맙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거야...”

그는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웃어 보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영원히 함께 하자며 약속을 했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가정에 세 아이가 함께 합니다

늘 그녀의 곁에서 함께 병원을 다니며 정기검진을 받고 운동과 음식을 조절하면서

함께 그녀의 눈을 관리해 나갑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그녀는 안타깝게도 어머니와 두 동생이 받았던

진단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언제 자신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어두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옆에 있는 그가 그 어두운 세상이 온다 해도

그녀를 환하게 밝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활짝 웃고 있는 그녀와 그 ⓒ최선영

그녀는 그의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세상의 빛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세상의 빛이 아니라

마음의 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진단을 받고 시야가 조금 좁아진 탓에 운전은 예전처럼

하지 못하지만 더 밝은 미소를 보이며 더 많은 일들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열심히 검진도 받고 최선을 다하면서...

그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둠이 찾아와도 더 밝고 더 환하게 빛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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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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