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은 누구에게나 설레임과 떨림을 안겨준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질수록 새로움을 두려워하며 현재에 안주하고 변화하기를 거부하게 된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보면 사고하는 방식이나 생활패턴이 단순하고 규칙적이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장애인들도 비슷한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일정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특히 물리적 환경 변화는 신체적 활동이 용이하지 않는 장애인에게는 가장 큰 불안요소이다.

2년 전 이맘때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40대의 나이에 중증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의 신체적 조건과 6살 된 딸아이의 육아를 전적으로 도맡아 해야 했던 나의 상황에서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정신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보지도 않고 장애나 육아를 핑계로 미리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부딪혀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때 결정하자 생각하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런 와중에 내가 입학하게 될 학교에서는 나름 걱정이 태산이었나 보다. 당시 그 학교 타과에 친정동생이 출강을 나가고 있었는데 동생에게로 부랴부랴 전화가 왔었던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서류와 면접을 통과한 나에게 입학은 허락하였지만 중증 장애를 가진 내가 학교를 다니다가 사고가 난다든지 장애인을 위한 시설 인프라를 요구할 경우 행정적 재정적으로 곤란한 상황임을 동생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즉 학교 측은 ‘장애가 심하니 입학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하고 대놓고 말할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되므로 동생을 통해 내가 자진해서 입학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다.

나 때문에 불편한 전화를 받게 된 동생에게도 미안했지만 학교 측의 태도가 너무 괘씸했고 그게 계기가 되어 나는 마음을 다잡고 학교생활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는 장애학생을 위한 근로장학제도를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었으므로 학내 보행이나 학과 수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나는 최대한 도움 없이 생활하겠다는 마음으로 캠퍼스와 내가 주로 강의를 듣는 건물시설 이용을 위한 보행교육을 받았다.

보행교육을 받으면서 왜 학교 측에서 걱정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은 건물 입구의 낮은 경사로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나 점자블록은 고사하고 복도의 핸드가이드봉도 없었고 계단의 난관은 잘못 헛짚을 경우 몸이 넘어갈 정도로 낮았으며 화장실은 총 5칸 중 한 칸만이 좌변식이었고 그나마도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학생은 이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건물에서 4-5미터 앞에는 운동장이 있었는데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낭떨어지를 방불케 할 정도로 높은데도 불구하고 펜스같은 보호막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아 발을 헛디딜 경우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학교측은 해당 건물이 옛날에 지어져서 시설확충을 못했다. 새로 짓는 건물은 엘리베이터며 좌변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는 등 행정상 문제가 발생할까봐 변명을 늘어놓았고 조만간 하나하나 바꿀 계획이라고 했지만 결국 2년 동안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취한 것은 내가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갈 때까지 절대 혼자 돌아다니게 하지 말라며 근로 장학생을 득달한 것뿐이었다.

나는 보행교육을 받았으므로 좀 서툴기는 해도 강의실이며 화장실은 충분히 혼자 갈수 있었고 한동안은 나 혼자 강의실을 찾아가기도 하였다. 그런 날이면 나를 돕는 근로장학생은 호출을 받고 불려 내려갔고 그게 몇 번 반복되자 나에게 제발 혼자 다니지 말라며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알고 보니 내가 택시에서 내리던 곳 그리고 건물 바로 입구에 행정실과 교학처가 있어서 내 동태를 그대로 파악했던 것이다.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애인복지는 장애인의 자립과 재활을 통해 정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장애학생을 위한 근로장학제도를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대신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으며 장애학생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사고가 났을 경우 학교 측에 문제가 발생하는 게 더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그들이 진정 장애학생의 안전과 복지를 생각한다면 보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확충하고 정부차원이 아닌 학교 차원에서 장애학생을 지원해줄 프로그램 개발에 고민했어야 했다.

장애인들이 생활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이동과 활동상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이 해결된다면 장애인들도 충분히 혼자 자립적으로 생활하는 게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 인프라를 구축하고 장애인활동바우처제도나 장애인콜택시 등의 정책을 시행함으로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사회통합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읽은 책에는 ‘장애인에게 편한 것은 모든 이에게 편하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저상버스, 음성신호기, 계단 대신 사용되는 경사로 등 장애인을 위한 시설로 고안되고 설치되었지만 많은 비장애인들도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

비장애인만 고려한 시설은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렵지만 장애인까지 고려한 시설은 비장애인에게 더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지적한 학교 시설을 확충 보완했을 경우 그 혜택은 장애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 측은 장애인인 내가 건의했기 때문에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로 간주하고 몇몇 장애학생을 위해 적지 않은 재정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대안으로 장애학생을 위한 근로 장학제도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많은 장애인이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을 보고 많은 장애학생들이 나름의 꿈을 이루고자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비장애인들 속에서 나 홀로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 부담감에 활동상의 제약까지 겪는다면 어렵게 끌어 모았던 용기와 도전의식은 꺾어지고 자괴감마저 느낄지도 모른다.

한편 근로 장학생은 장애학생이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학업함에 있어서 어려운 점을 지원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애학생의 어려움을 해당 학생의 문제나 근로 장학생에게만 일임하는 학교의 태도는 너무나 무책임하다.

비장애인들 중에는 장애인 시설에 대해 재정적 낭비이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가령 장애인전용화장실이나 장애인전용주차장의 경우는 이용하는 장애인수를 고려할 때 비효율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이러한 장애인전용시설은 이용자를 장애인으로 제한했기 때문인데 전용시설이 아니라 우대시설로 바꿈으로서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되 비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용하는 장애인이 단 한명 뿐이더라도 그들을 위한 시설 확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애인에게는 이러한 시설이 안전과 직결되기도 하며 인간답게 살기위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이용하면서 비장애인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재정적 공간적 효율성을 높이고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설 및 디자인을 고안하고 시설 이용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통해 공존, 공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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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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