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빌라에서는 매년 초, 입주자의 한 해 삶을 계획합니다. 직원에게는 지원 계획이겠죠. 한 해 어떻게 살지, 당사자와 둘레 사람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합니다. 당사자의 복지를 당사자와 둘레 사람이 이루게, 계획부터 사회사업이게 합니다. 계획은 사회사업하기 좋은 구실입니다.

입주자마다 계획하는 시기가 다릅니다. 누구는 연말에 감사 인사 하며, 누구는 연초에 새해 인사하며 의논합니다. 방법도 다양합니다. 전화나 메일로 의논하는가 하면, 연말이나 설 전후로 직접 뵙고 의논합니다.

직접 뵙는 경우도 입주자의 집 월평빌라에서 의논하거나, 부모형제의 집으로, 학교로, 교회로, 직장으로, 학원으로 찾아가서 의논합니다. 근사한 식당이나 카페에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 계획을 구실로 식사 대접하고 차를 마십니다.

은성이는 부모님이 오셨을 때 은성이 집에서 의논했고, 태수(가명) 씨는 목사님과 식당에서 밥 먹으며 의논했습니다. 귀옥(가명) 씨는 부모님 댁에 가서 부모님과 의논했고, 진석 씨는 어머니와 전화로 의논했습니다. 지순이는 아르바이트하는 미용실에서 원장님과 직장생활 의논했고, 우성이는 남상초등학교 찾아가서 선생님과 학교생활 의논했습니다. 선영이는 창동교회 중고등부 부장 집사님에게 식사 대접하며 신앙생활 의논했습니다. 모든 입주자가 이렇게 당사자와 둘레 사람이 의논하게 합니다.

부산 사는 부모님이 은성이를 데리러 왔다. 설날 연휴 내내 부산 부모님 댁에서 보낼 예정이다. 월평빌라 303호 은성이 집에서 부모님과 마주 앉아 올해 계획을 의논했다. 은성이는 올해 수학여행을 간다. 「2017년 1월 6일 일지, 유유성」 발췌, 편집

대산교회 허운 목사님과 2015년 계획을 의논했다. 태수 씨 직장에서 가까운 국밥집에서 만났다. 목사님의 목회 계획과 태수 씨의 신앙생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오늘 식사는 태수 씨가 대접했다.

태수 씨가 일하는 ‘이해숙머리방’에 목사님과 들렀다. 미용실 원장님이 목사님과 인사했다. 몇 마디 끝에 미용실 직원과 목사님이 제주도 사람인 걸 알고 서로 반가워했다.

목사님은 태수 씨가 청소하는 계단을 직접 올라가 보고, 미용실 원장님에게 ‘태수 잘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원장님도 목사님에게 ‘태수 씨 잘 대해 주세요.’하고 부탁했다. 태수 씨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었다. 「2015년 2월 6일 일지, 임경주」 발췌, 편집

순서는, 먼저 당사자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합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자기 복지의 주체로서 의논합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입주자라도 묻고 의논합니다.

지적장애가 있고, 말을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한다며 무시하지 않습니다. 눈만 깜빡이며 알아 듣는지 조차 모르는 중증 장애가 있더라도, 그래서 사실상 직원이 계획하는 경우라도, 직원의 생각을 정리해서 묻습니다. 설명이라도 해야 합니다. 삶의 당사자, 복지의 당사자, 계획의 당사자가 있는데 그를 무시한 채 계획하면 안 됩니다.

사진, 동영상, 기록, 이야기로 이전 경험이나 작년을 추억하게 합니다. 여러 안을 제시하고 그 가운데 선택하게 합니다. 어떻게든 당사자가 선택, 통제하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삶의 주인이자 복지의 주체는 개인이니 집단으로 계획할 일은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별화하여 의논하고 계획합니다.

경아(가명) 씨가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13일 만에 퇴원했다. 많이 힘들었는지 밥 먹으면서 졸았다. 두 시간 자고 일어나니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잠에서 깬 경아 씨와 올해 계획을 의논했다.

“경아 씨, 많이 힘들었지요? 오늘 퇴원한다고 어머니께 문자 보냈어요. 어머니 보고 싶죠? 어머니도 많이 보고 싶다 하셨어요.

경아 씨, 올해는 가족들과 자주 만나면 좋겠어요. 딸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전화하고 달려온다고 어머니가 그랬어요. 4월과 10월에는 어머니 얼굴 꼭 보겠네요. 경상대병원에서 위관 교체하기로 했거든요. 어머니가 진료 예약하고, 병원에도 오실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동생들 생일에는 꼭 문자라도 합시다. 날짜는 어머니께서 다 알려줬어요. 축하 문자 보내고, 경아 씨 예쁜 얼굴 사진 찍어서 보내드려요.

작년에 동생들과 가기로 했던 가족여행, 올해는 꼭 갔으면 좋겠어요. 계획까지 했다가 무산된 게 많이 아쉽죠? 날씨 풀리면 서울 동생과 의논해요.

올해 경아 씨 생일은 기대를 좀 할까요? 제 생각에는 어머니께서 경아 씨 동생들과 꼭 올 것 같거든요.”

경아 씨는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눈만 깜빡인다. 「2017년 1월 20일 일지, 김향」 발췌, 편집

당사자와 의논한 내용을 바탕으로 둘레 사람과 의논합니다. 둘레 사람과 의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동영상, 기록, 이야기로 이전 경험이나 작년을 추억하게 합니다.

“올해 어떻게 지내기 바랍니까?”하고 막연하게 물으면, “건강하게 잘 지내면 됩니다. 알아서 해 주세요. 바랄 게 뭐 있겠습니까.”하는 막연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러니 잘 묻고 잘 의논하게, 지난 경험이나 올해 바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의논합니다.

작년 가족여행 사진과 동영상과 기록, 지난 운동회 사진과 기록, 지난 여전도회 나들이 사진, 작년 직장 회식 사진을 보며… 올해도, 올해는, 어떻게 보낼지 의논하는 겁니다. 영화 한 편 본 것처럼, 일 년을 추억하며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하는 겁니다. 그런 후에 올해 계획을 물으면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부모형제에게는 가족행사를 중심으로, 학교 선생님에게는 학사 일정을 중심으로, 교회 목사님에게는 목회 계획을 바탕으로, 직장 사장님과 동료, 이웃,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일 기일 명절 가족여행,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학예회 소풍 부모간담회, 근로시간 임금 회식 야유회 휴가, 개강식 종강식 수업시간 수강료, 예배시간 성경공부 전도회 활동 전교인체육대회…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의논하며, 부탁할 것은 부탁합니다.

작년 경험과 추억을 정리한 메모지를 활용합니다. 작년 평가서가 있으니 간단히 정리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당사자와 함께 정리해도 좋습니다.

동생 내외가 윤숙 씨 집으로 왔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함께 밥을 먹었다. 누나가 건강해 보인다고 했다. 식사 마치고 차 마시며 2017년 계획을 의논했다. 동생이 윤숙 씨의 「2016년 계획서와 평가서」를 읽고 많이 놀라워했다. 누나가 이렇게 잘 지냈나, 이렇게 아름다웠나, 이렇게 고마웠나 했다.

가족들은 윤숙 씨가 건강하기 바랐다. 자주 시간 내지 못해 미안하다며, 더 자주 함께하겠다고 남동생이 먼저 제안했다. 추석에는 형님 댁에서 온 가족과 지내고, 설날에는 윤숙 씨 건강 봐서 그때 결정하자고 했다. 평일에도 남동생 내외와 조카들이 윤숙 씨 모시고 가까운 곳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윤숙 씨 생일과 남동생 내외 생일, 조카들 생일에도 형편 봐서 함께하자고 했다.

동생 내외가 찾아와 의논하니 고맙다. 의논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돕겠다고 했다. 「2017년 1월 20일 일지, 송숙희」 발췌, 편집

당사자와 둘레 사람과 인사하고 묻고 의논하며 계획하면 어떻게 도와야할지 분명해 집니다. 실마리가 보이고 단서를 얻습니다. 이렇게 하면 당사자도 둘레 사람도 직원도, 한 해를 꿈꿉니다. 잘 해 보고 싶은 의욕이 생깁니다.

이렇게 해야 당사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자기 복지의 주체로 섭니다. 당사자와 둘레 사람의 관계를 헤아리고 살릴 수 있습니다. 당사자와 둘레 사람이 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삽니다. 사회사업답습니다.

복지시설에 살더라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자기 복지의 주체로 살아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꿈꾸어야 합니다.

참조 : 진석 씨의 꿈, 2017년 계획서 cafe.daum.net/ilove392766/XTOP/3825

* 동료들과 2017년 지원 계획서를 작성하고 다듬고 공부하며 썼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