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설경. ⓒ김미혜

미시간 주 내에서도 외곽으로 한참 들어온 ‘Mount Pleasant’라는 곳에 도착한지 한 달이 지났다. 평범한 듯 보였던 일상 속에서도 여가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어 장애에 대한 생각과 결부하여 나누고자 한다.

한국인에겐 너무 느린 미국

내가 미국에 도착했던 첫날을 다시 회상해본다. 밤낮이 뒤바뀐 시차로 인해 아침에 눈을 떴는데 마치 저녁을 굶은 사람처럼 배고픔을 느꼈다. 한국에서 챙겨온 햇반을 열심히 먹는데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마트를 비롯하여 여가를 위한 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대중교통도 없고 미국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노란택시도 하나 없었다. 당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습관처럼 노트북을 열었다. 그런데 초고속 인터넷도 아니어서 자꾸만 화면이 멈추었다.

나는 문득 강원도 어느 산골 마을에 와있는 느낌이랄까? 집도 드문드문 있고, 인근에 사람들도 없고, 고요함 속에 높은 하늘만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눈이 자주 오는 관계로 창밖을 바라보는 날이 많았다.

개강을 한 뒤,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며 연구원 아이디 발급을 요청하러 갔다. 그런데 2주나 걸리면서 의지도 늘어짐을 느꼈다. 기숙사 관리인에게 몇 가지 시설을 고쳐달라고 했는데 3주 뒤에나 기술자가 찾아왔다. 어느 현지인 하나 급하게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기다림이 당연한 문화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오직 한국 사람들만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볼일을 보고 다시 찾아온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이 말이 맞았다. 나는 마트에서 긴 줄을 피해 다른 계산대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느려짐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받아들이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기다림을 체념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냥 좋은 식으로 받아들이려고요.’라는 나의 말에 이곳에서 40년 정도 사신 한국분이 이정도의 적응이면 나중에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겠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그 칭찬에 힘을 입어 기다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했다. 문득,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는 기다림이 필요한 노인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든든한 밑바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빨리 만들어내고 처리해야한다는 강박적인 문화 속에서 조금 느리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것도 사실이다. 잠깐도 느려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장애에 대한 이해와 기다림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가도 기다림에 대한 학문이자 잠시 느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중단할 때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마음의 상태이다. 한국에서는 여가학자가 대학생들을 향하여 ‘책을 덮고 여가를 누리세요!’ 라고 말하는 것도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라는 문화라는 것이 나를 이끌어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문화의 강력한 힘을 느낀다. 기다림에 대하여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것을 자연히 받아들이게 하는 은근한 힘이 생겨 다함께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칼럼을 어떤 독자들이 읽는지 알 길이 없다. 획기적이고 생산적인 정보를 얻고자 목적하는 분이라면 실망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생산에 대한 강박이기에 잘 하려는 의지도 중단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추어 칼럼니스트에게 칼럼이 더 이상 여가가 아닌 일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답답하게만 보였던 적막한 동네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을 첨부한다. 글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래본다.

미국의 설경. ⓒ김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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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칼럼리스트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에게 진정한 쉼은 무엇인지, 자유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은 무엇인지를 가르쳤으며, 현재는 미국 센트럴 미시간 대학교(Central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장애인의 여가를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여가와 행복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하고, 미국의 현장감 있는 소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장애인의 삶에 대한 관심은 열정과 패기로 가득했던 20대 청년시절의 첫 직장,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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