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그들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는 글씨. ⓒ최선영

진한 커피를 내리 세 잔을 마신 탓일까...

여행 다녀온 후유증일까...

쉽게 잠들지 않는 불편한 잠자리에서 얼마나 뒤척였을지 모를 긴 어둠을 깨뜨리는 전화벨 소리로 그녀는 흠칫 놀라며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는 그녀 그림. ⓒ최선영

“이 시간에 누구지?”

낯선 번호임을 확인하고는 거절을 누르고 시간을 확인합니다.

 

“3시... 2시간이나 뒤척였군...”

그녀는 뒤척인 시간들이 생각보다 길었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잠을 청하려 합니다. 다시 휴대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번호를 확인한 그녀는 좀 전의 번호임을 확인하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거절을 누릅니다. 뒤척이다 일어나며 불만 썩인 말을 내뱉습니다.

“오늘은 잠들긴 틀렸어 책이나 읽어야겠다”

스탠드를 켜고 일어난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내립니다. 막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또 전화벨이 울립니다.

“여보세요”

대체 누가 이 시간에 세 번씩이나 전화를 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쇼파에 앉아 전화를 받는 그녀 그림. ⓒ최선영

“나야~제발 끊지 말고 내 말 좀 들어줘 부탁이야 제발...”

저 너머에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다급함에 그녀는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줘 지금 아버지가 위독해 널 많이 찾으셔 마지막으로 한 번만 와줬으면 좋겠어”

낯선 그의 목소리에는 지독한 절박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냅니다.

“저... 죄송한데 전화를 잘 못 거신 것 같아요...”

“아... 은영... 은영이 아니야?”

“네 아니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번호 다시 확인해 보세요”

“죄송합니다...”

낯선 전화는 급하게 끊어졌습니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머금었습니다.

“무슨 일이지? 사귀던 사이인데 오해가 있어서 여자가 헤어지자고 했나? 그런데 아버지가 위독한데 찾고 있다? 그래서 급하게 연락을 한 것 같은데... 어머 내가 왜 남의 일에...”

그녀는 짧은 몇 마디에 살을 덧붙이며 혼잣말을 하다 머리를 가로저으며 읽으려다 만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눈은 책을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는 낯선 전화의 여운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늦은 아침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낯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습니다.

“여보세요”

“저... 지난번 새벽에 전화했던 사람입니다. 너무 죄송해서 다시 한 번 정중히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니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괜찮으니 맘쓰지 마세요”

그런데 이 낯선 번호는 그때와 다른 번호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안하다는 표현을 지나칠 만큼 많이 남기고 그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번호가 두 개인가? 뭐지?”

한참을 생각하다.

“자기 번호로 전화하니까 안 받아서 다른 사람 전화를 빌려서 전화를 했는데 그게 번호를 급하게 누르다 보니 네게 잘못 누른 거였구나...”

그녀는 그럴듯하게 그날의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되셨을까...”

그녀는 중얼거리다 늦겠다며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차를 타고 출발하며 급하게 전화를 꺼내 듭니다.

“여보세요~ 저 지금 출발합니다. 곧 뵐게요”

“여보세요 저...”

“네 말씀하세요”

“저 전화를 잘못 거신 것 같네요...

전 좀 전에 전화드렸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그제야 통화기록에서 전화를 잘 못 누른 것을 알고는 민망해합니다

“아... 제가 잘 못 누른 것 같네요 죄송해요”

“하하 아닙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 네...”

그녀와 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가끔 그는 그녀에게 안부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조금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그의 전화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웃으며 전화를 주고받는 그들 그림. ⓒ최선영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부터는 그녀가 먼저 안부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소소한 것들이었습니다. 점심은 무얼 먹었는지 날씨가 추우면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고 친구를 만난 이야기도 나누며 일상의 안부를 맴도는 대화들이었습니다.

그녀와 그는 서로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둘 다 만나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누구 한쪽에서 그런 말이 나올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서로 전화를 주고받으며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것에 그들은 만족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 있다며 만나보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그가 떠올랐습니다.

“난 아직...”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이야”

친구는 버럭 화까지 내며 그녀를 다그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야 그 사람도 소개팅할 마음이 없으시단다"

그녀를 찾아온 친구는 안부 인사도 없이 퉁명스럽게 소개팅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잘 됐네~ 호호”

그녀는 홀가분해졌다는 듯 웃어넘깁니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사뭇 진지한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저... 오늘 소개팅 거절했어요. 우리 이제 만날까요?”

그녀도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대답합니다.

“네 만나요”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 그녀가 대답합니다.

“오히려 그쪽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들은 만나기로 약속한 날까지 서로 먼저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밸런타인데이로 초콜릿이 날개를 달고 팔려나가던 날 저녁 그녀의 손에 들려진 작은 쇼핑백 안에도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상자가 보입니다.

예약석에 앉아 있는 그녀의 앞으로 목발을 짚은 그가 천천히 다가옵니다. 그녀 앞에 멈춰 선 그는 그녀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넵니다.

“혜은 씨?”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합니다.

“네...”

“실망하셨죠...”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멋쩍은 미소를 보냅니다. 그녀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떨어져 있는 그의 곁으로 걸음을 내딛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며 그에게 다가간 그녀도 그에게 말을 건넵니다.

“실망하셨나요?”

그녀의 말에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활짝 웃어 보입니다.

마주 보며 웃고 있는 그들 그림. ⓒ최선영

그리고 1년 후, ,​그들은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아 초콜릿을 먹으며 영화 한편을 봅니다.

“이거 꼭 우리 이야기 닮지 않았어?”

“뭐 내용은 다르지만 줄기는 비슷한 거 같아”

“당신은 그때 무슨 생각으로 만나자고 했을 때 바로 네~한 거야?”

그가 그녀에게 묻습니다. 초콜릿을 건네며 그녀가 대답을 합니다.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었어요... 싫다고 하면 내 마음이 더 깊어지기 전에 접으려고... 당신은요?”

“나도... 좋은 여자 있다고 만나보라고 하는데 내 머릿속에는 당신 생각밖에 없었거든 나 장애인이라고 싫다고 하더라도 만나보고 싶었어. 그전에 소개팅 상대가 당신인 줄 알았으면 달려갔을 텐데... 하하하”

그들은 그렇게 실수로 걸려 온 전화가 인연이 되어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날의 전화가 실수가 아니라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라 믿으며 지금도 가끔 전화데이트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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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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