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이하면서 지난날의 내 삶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100세 시대라 할 만큼 현대사회에 이르러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다.

그러나 나는 왠지 그렇게 오래 살지는 못할 것 같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더라도 내 나이 이제 마흔세 살이니 겨우 반평생을 살아온 셈이다. 이 시점에서 살아온 내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이 적당할까?

유아기에는 해 저무는 지도 모르고 동네 골목을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놀았고, 항년기에는 몇번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 친 것 외에는 교칙을 법처럼 여기며 성적은 비록 모범생이라 할 수 없었지만 나름 범생으로서 학업에 충실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공부만 빼고 캠퍼스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방황 그리고 음주문화를 즐기며 4년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고 사회인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도 놀랄 만큼 12년 근속하며 첫 직장을 마지막 직장으로 경제활동을 마무리 했었다.

12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았고 후배들로부터 멘토라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종사한 업계에서는 나름 전설로 이름을 떨쳤던 시기였다. 대학 시절 친구였던 사람을 연인으로 10년을 만났고 그와 결혼하여 예쁜 딸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온전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적어보니 ‘인생의 큰 굴곡 없이 살아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만 보고 살아왔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나보다 물질적 경제적으로 앞서있는 사람을 쫓아가느라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실 만족스러웠다. 해마다 연봉이 올랐고 성과를 인정받으면서 나의 성취감과 직위도 덩달아 높아졌으니까...

그렇게 내 삶은 멋진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무한질주 했다. 일반도로를 타고 느릿느릿 지나가는 사람이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차가 고장나 달리지 못하고 갓길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차를 미리 점검하지 않은 그들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비난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자만과 오만으로 살았던 것 같다. 자동차 안의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사실이고 진실이라 생각하고 감히 그들을 판단했던 것이다. 그랬던 나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어떤 개체나 현상에 대해서 겉이 아닌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세상을 보며 산다는 것은 행복이고 축복이다. 그러나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한 번 더 필터하여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화려하고 예쁜 외모를 위해 성형이 필수가 되어버린 사회, 집 평수나 몇 CC의 차량을 타고 다니느냐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고 판단하는 사회, 항상 누군가와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사회...

이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생각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가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없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본다.

외모가 아닌 마음이 예쁜 사람이 인기 있고 넓지는 않더라도 나에게 안락하고 편안한 집과 자에 만족하며 누구보다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발전과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가 된다면 이 세상은 좀 더 따뜻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눈 뜬 장님이라는 말처럼 나는 그러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나는 정말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바라보게 되었다. 눈에 보이던 것에 더 가치를 주고 살아왔던 삶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이 이제 무엇인지 조금씩 느끼고 알아간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 좋다. 비시각장애인일 때는 나 역시 예쁘고 멋진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방의 말 속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스킨십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의 감정을 느낀다.

나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내 삶 구석구석에 찌꺼기처럼 달라붙어 있는 자만과 오만을 벗고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누구 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에게 충실하며 상대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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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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