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에너지 넘치고 독립적이며, 자기 주관이 매우 뚜렷한 일곱 살 남아이다. 다시 말해, 순둥순둥 키우기 쉬운 순응형 스타일은 아니라는 뜻.

옷 하나를 입을 때도, 장난감 하나를 고를 때도, 일상생활 규칙을 정할 때도 자신이 주도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 상황을 매우 불편해 한다. 남편이나 나나 절대 강요하는 스타일도 아니며, 아이의 의견을 많이 들어 주고 존중해 주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종종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독립투사의 포스를 보이곤 한다.

남편과 나는, 어쩌면, 이 아이는 전생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독립투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모든 성향에는 양면성이 존재하기에, 이런 아이의 성향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뭐든지 스스로 하려 노력하는 아이의 모습,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독립투사 아들을 키우며 힘든 부분을 보상 받는 듯한 느낌도 주니까 말이다.

놀이욕구와 애정욕구 또한 무척이나 높은 아드님, 다른 아이들이 밥 한 그릇을 먹으면 배가 부르다면, 이응이는 열 그릇은 먹어야 이제 허기는 좀 면했다고 느끼는 스타일이다.

칼럼 독자들이나 블로그 이웃들은 어느 정도 알겠지만, 남편과 나는 육아관도 비슷하고, 아이에게 상호작용도 많이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이 성향에 맞추어서 눈 나쁜 엄마 아빠가 엄청나게 많이 돌아다니며 논다.

(물론, 부모가 최선을 다 한다고 느낀다 해서 아이 역시 그렇게 느낄 거라고 단정지어서는 절대 안되지만…)

그럼에도, 이응이의 소원은, 늘 엄마 아빠가 열 명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일 하는 엄마, 공부하는 엄마, 요리하는 엄마, 나랑 놀아 주는 엄마… 아빠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러면 엄마, 아빠를 상황에 구애 받지 않고 원하는 때, 원하는 용도로 맘껏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 솔직히 숨이 막히는 날도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또 긍정적인 측면을 애써 찾아 보곤 한다.

‘그래, 누가 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하고, 나만 원했으며, 원하겠는가?’

그런데, 보기와는 달리(?^^) 이 에너지 넘치는 씩씩대왕 아드님은, 후각과 청각은 거의 소머즈급으로 민감하며, 느끼는 것이 많아서인지 매우 예민하며 불안도 높은 편이다.

단적인 예로, 돌도 안 된 활동성 높은 이응이는, 엄마아빠 침대에 기어올라가서 놀다가도, 내려올 때면 무작정 돌진하지 않고 꼭 뒤로 돌아 뒤로 기어 조심조심 내려오는 반전의 매력을 보여 주는 그런 아이였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려면, 아이가 예민한 만큼 엄마의 정서적 노동강도도 높아질 수 밖에 없는데, 그나마 나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럽게 예민한 편이라 공감은 해 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씩씩대왕 이응이는 한편으론 독립적인 성향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예민하며 불안도 높은 아이이다. ⓒ은진슬

쓰다 보니, 어쩐지 육아에 지친 엄마의 넋두리 같기도 하다.

지난 해 말부터,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내적 위기가 찾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계기는 있었다. 11월쯤 유치원에 어떤 개념 없고 오지랖이 넓은 엄마 (둘) 때문에 어이 없이 마음이 상해 맞짱을 한 번 뜰까 심히 고민을 하다가, 평소, 갈등회피형에 교양 있는 삶(?^^)을 추구하는(요즘은 이것도 좀 힘든 것 같지만…) 내가 참자고 많이 화나고 아픈 마음을 삼킨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평화를 사랑하는 행동이 유치원에도, 엄마들 간에도 아름다운 평화를 안겨 주긴 했지만, 정작 내 마음에는 깊은 내상을 남기는 내전을 일으키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두 달이 지난 지금도 회복 중일 정도로 나는 힘겨웠다. 상황이 이런 데다가, 스트레스가 심하니, 20대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인 역류성 위염이 도져 더 많이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아이와 놀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너그러이 바라봐 주며 아이를 견디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런 어이 없는 일의 단초가 되었을지도 모를 아이의 성향에 과민해지고, 과잉반응도 보이게 되는 듯 했다.

사실, 아이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이 똑 같은 이응이인데, 엄마인 내가 마음이 버겁고 힘드니 아이를 대하는 내 태도가 점점 참을성이 결여되어 가고 거칠어져 간 것이다. 평소 같으면 좀 더 설득하고 조곤조곤 한 번 더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것도 잘 못하게 되고, 놀면서 내 말에 한 번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짜증도 밀려 왔다. 내게 이런 면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육아 6년간 어디에 꽁꽁 숨어 있었는지도 모를 버럭대왕이 자주 강림하기 시작했다.

한 2주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감정이란 부메랑과 같아서, 버럭대왕이 강림하는 빈도 만큼 아이의 감정도 나빠져 갔다. 나도 안다. 버럭대왕의 강림 빈도와 아이의 떼쓰기와 징징거림 사이에는 강한 정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아이와 김치부침개를 만들어 보라던 유치원 숙제를 하던 날, 나는 칼럼 마감에 공부에 바쁜 와중에도 재료를 준비하며 약속한 TV 시청 시간까지 기다려 준 후에 함께 하자고 했음에도, 평소와 달리 TV를 더 보겠다며 징징거리는 아이에게 이게 니 숙제지 내 숙제냐며 하이톤으로 버럭대왕의 성명서를 발포하고 말았다.

안되겠다 싶었다. 침실에 가서 마음을 진정시킨 후, 아이와 부침개를 만든 다음, 아이에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이응이에게 (마치 직장동료에게나 할 법한톤으로?^^) 진정성 있는 협조를 구했다.

‘이응아! 엄마가 자주 화를 내서 너도 기분이 안 좋고 힘들지? 엄마도 그래. 정말 미안해. 엄마도 요즘 지쳐서인지 쉽게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파. 그러니까, 이응이도 징징거리지 않고,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좀 더 집중해 주었으면 좋겠어. 엄마도 화내지 않고 예쁘게 말하며 좀 더 노력해 볼게. 이렇게 7일 동안 서로 화 내지 않고 성공하면, 엄마는 엄마도 잘 했다고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함께 노력해 준 이응이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은데, 함께 해 보면 어떨까?’

잠자코 내 말을 듣던 아이는 그러겠다고 했다. 이 약속을 남편과 아이를 돌봐 주시는 이모께도 즉시 공표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평소 내가 존경하는 조선미 박사님의 글에서 얻어 와서 살짝 변형한 것이다. 박사님께서는 본인에게 강화물로서 작은 귀걸이 같은 걸 활용하셨다는데, 나는 아이의 참여와 노력하는 상호적 측면을 강화하고 싶어 아이에게도 작은 선물을 강화물로 걸었던 것이다.

버럭대왕으로 인해 상처받는 나와 아이를 위해 환궁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은진슬

오늘로 엄마에게 강림하신 버럭대왕 환궁 프로젝트도 6일차에 접어들었다.

물론, 순간순간 위기가 찾아오긴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탈 없이 잘 흘러가고 있다. 확실히, 부메랑과 같은 감정의 속성상, 내가 노력하며 아이에게 솜털 같은 마음을 내어 주니, 아이도 간질간질 깃털 같은 마음을 내어 준다. 확실히 우리의 아침은 한결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졌다.

오늘 아침 등원길에도 아이와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서로를 칭찬하며 정겨운 풍경을 연출했다.

‘이응아! 오늘 아침도 등원 준비하면서 이응이가 엄마 말을 잘 따라 주며 노력해 주었고, 엄마도 화 내지 않고 예쁘게 말하려 노력하니까 기분 좋게 유치원에 갈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이응이도 엄마도 참 잘했다. 그치? 이제 2 일만 더 노력하면 성공인데, 이응이는 어떤 선물 받고 싶어?’

‘나는 3 호선 지하철 장난감 뒤에 연결할 다른 지하철 갖고 싶어.’

‘엄마는 이응이랑 놀러 다닐 때 예쁘게 신을 패딩부츠 갖고 싶은데…’

똑딱똑딱, 짹깍짹깍!

여기까지 칼럼의 초고를 쓰고, 퇴고와 편집을 진행하는 동안 약속했던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과연, 이응이 엄마의 버럭대왕 환궁프로젝트는 성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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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위기가 있기는 했으나, 이응이의 협조와 엄마의 처절한 노력 덕분에 끝내 성공할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비록 일주일의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육아를 처음 시작할 때의 처음 마음도 되새겨 볼 수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이와 서로 노력하는 과정을 겪어 가며 아이 마음과 내 마음 속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어 무척 의미 있었다.

서로 감정이 치고 올라오려는 찰나에 그것을 미리 공유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패턴을 형성해 가면서, (늘 아이 마음 읽기에만 골몰하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에게 내 감정을 좀 더 많이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내일부터는 2 주로 기간을 늘려 다시 버럭대왕 환궁프로젝트를 시행하려 한다. 하루하루 아이들과 벅찬 육아상황에서 감정소모도 많고, 육체적으로도 힘든 우리 엄마 아빠들, 버럭대왕 환궁프로젝트 한 번 시도해 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내 마음과 아이 마음이 더 잘 보이고, 바르게 들리며, 말랑말랑 부드럽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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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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