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여가사회라고 한다. 주 40시간 근무제와 토요 휴업일의 시행으로 자유시간이 늘어났고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왜일까?

바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가(餘暇)학의 측면에서 설명해 보려고 한다. ‘여가’ 라는 용어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러하다.

첫째로 여가는 자유시간이다. 의무라는 짐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아이를 잠시 맡겨두고 혼자 있는 시간이 자유시간이 될 수 있다.

둘째로 여가는 내가 선택한 즐거운 활동이다. 국민여가활동조사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하는 여가활동은 TV시청, 산책, 목욕, 친구와의 만남 등이다.

셋째로 여가는 만족스러운 ‘마음의 상태’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구속하는 의무와 같은 것들로부터 벗어나 평온함, 안락함, 해방감 등의 마음의 상태를 누리고 싶어 한다.

만약 누군가 비즈니스를 위해 주말에 상사와 함께 골프를 치고 있다면 일과 여가가 반반 섞여있는 상태가 된다. 이렇듯이 여가는 이 세 가지 – 자유시간, 자발적으로 선택한 즐거운 활동, 마음의 상태라는 삼박자가 모두 성립해야 ‘순수 여가(Pure leisure)’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왜 여전히 바쁘고, 잘 쉬지 못할까? 휴일에 지출하는 비용은 더 많아졌는데도 왜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을까? 그것은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우리 자신을 속박하는 것들로부터 마음의 상태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친목을 위해 만든 자리에서도 불확실한 노후와 미래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고 나면 갈 길을 찾지 못하는 푸념들로 모임의 분위기는 이내 어두워지고 만다. 각자가 짊어지고 가는 인생의 무거운 짐들은 그 어떤 재미꺼리로도 쉽사리 잊혀 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자 한계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의 현실은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숟가락 논쟁이 뜨겁고, 치열함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잠깐의 여가도 유보하고 배움이나 성취, 성과를 위해 주말을 희생해야 한다.

청년들은 쉬고 싶어도 쉼의 욕구를 억압하고, 사회가 인정하는 활동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해 한다. 여가학자들은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 대하여,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자유시간과 여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지만 사람들은 더 반여가적(anti-leisure)이고, 일 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여가를 교육하고 연구하는 나의 여가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무엇을 열심히 하기보다는, 열중하던 것을 잠시 멈추려고 애쓰는 편이다. 지쳐가는 일상에서 나를 회복시킬 것을 찾으려고 한다. 때로는 주말에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몸과 마음에 부담이 될 때가 있다.

평일 내내 전공에 관한 서적들을 많이 읽고 컴퓨터 앞에 줄곧 앉아있으면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눈을 편하게 쉬어주려고 근처 낮은 산이나 공원에 가서 푸르른 숲을 보곤 한다.

숲은 참 조용하고 편안해서 나를 편하게 쉬게 하고, 신체활동량을 늘려주고, 다시 창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그러나 과중한 계획들로 인해 꼼짝달싹 못 하는 경우에는 눈을 감고 잠깐 졸거나,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면서 쉼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활동이 많다고 해서 여가를 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지 않다고 해서 여가를 잘 누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혹시 장애로 인하여 ‘남들과 같은’ 여가 생활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단정하시는 분이 있다면 잘못된 여가지식이라고 말씀해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여가는 자신의 몸과 내면을 다스리는 중요한 삶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남들과 같은’ 여가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옷도 남의 옷을 입으면 나의 특징은 사라지고 불편함만 남을 뿐이다.

그래서 여가는 본질적으로 모두에게 주어진 평등한 기회라고 말하고 싶다. 각자의 인생의 위치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을 누리며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쫓기듯이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직 여가를 잘 누리기 위해서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규칙적으로 해나가면서 몸과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해나가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남들이 하는 여가활동이 나에게도 필요한지는 현명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요즘 세상에 해외여행 한번 못 가보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풍문 따위는 분명하게 저항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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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칼럼리스트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에게 진정한 쉼은 무엇인지, 자유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은 무엇인지를 가르쳤으며, 현재는 미국 센트럴 미시간 대학교(Central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장애인의 여가를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여가와 행복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하고, 미국의 현장감 있는 소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장애인의 삶에 대한 관심은 열정과 패기로 가득했던 20대 청년시절의 첫 직장,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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