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한국농아인협회 재직 당시 직원연수). ⓒ이미혜

네가 없는 세상에서도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오고 각자의 분주한 일상으로 쉼 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풍경은 계속되고 이제 다시 어둠이 찾아오는구나.

세상의 모든 소리에 도전했던 너, 그러나 그 누구도 너의 언어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처음 너의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었고, 화가 너무 났었고, 너무 미안했었고... 하지만 지금은 너를 이해 해 보려고 해.

내가 아는 너는 평범한 우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늘 갖고 있었잖아.

음료수 하나를 마셔도 나는 이름도 모르는 특이한 메뉴를 주문했었고 익숙한 것보다는 늘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보였고 스쳐 지나갈 사람들에게도 늘 관심을 보이곤 했었지.

나는 그런 너를 보며 참 유별나다고 말하곤 했었어. 남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는 네가 좀 더 단단해지기를 바랐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는데 네가 원하는 삶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는구나.

언제나 가장 빛나고 싶었던 현철아,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수화통역을 너는 거뜬히 해내곤 했어. 너의 빈소를 찾아온 농인들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하더구나.

“ 저는 아리랑이란 노래를 알고는 있었지만 김현철 선생님과 함께 중국에 국제교류사업차 갔을 때 선생님이 아리랑을 수화통역으로 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아리랑이 어떤 노래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 김현철 선생님 같은 수화통역사가 앞으로 또 다시 나올 수 있을까요? ” “ 김현철 선생님 같은 수화통역사는 백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를 기억하고 있고 너의 부재를 안타까워 하고 있단다. 너를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순천에 계시는 농인 목사님께서도 너의 빈소를 찾아오셨어. 순천이 고향인 수화통역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오셨다면서 너의 영면을 기원하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네가 가진 재능과 수화통역사로서의 모습에 반했는지 너는 정말 몰랐던 것일까. 너와 차마 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너를 좋아했던 후배 수화통역사도 밤늦게 너의 빈소를 찾아왔단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너는 너무 빨리 우리들 곁을 떠나버렸구나.

내가 정의하는 김현철은 때론 밉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어. 누구보다 가까웠기에 힘든 순간도 겪었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추억속에서만 너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고 눈만 뜨면 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구나.

메르스보다 무서운 이미혜르스라고 활짝 웃으며 나를 놀려대던 너의 목소리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기억은 흐려지고 너를 떠올리는 순간도 점점 줄어들겠지만 살아가면서 소소한 순간 순간 너를 기억하게 될 거야.

힘들다고 전화가 왔을 때 또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하며 너를 타박만 했던 내 자신이 많이 원망스럽지만 너는 너의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하고 싶어.

남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열심히 살아갈게. 현철아 잘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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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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