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평소 글을 쓸 때 될 수 있는 한 중립성을 지키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제 스타일과는 달리 기술되어 다소 감정적이며 공격적이라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저 한, 두 주 사이 맘 아픈 일을 겪은 엄마의 넋두리이니 너그러운 맘으로 읽어 주시기를 바라며, 임산부나 노약자,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읽기 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칼럼을 읽기 전 주의를 당부하는 글이 담긴 경고문. ⓒ은진슬

우리 장애부모들, 특히 장애엄마들을 보면, 열의 아홉은 육아에 있어서 굉장히 높은 기준점을 설정해 놓고 아이를 키우는 것 같다. 내가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는 장애부모 자조모임인 ‘심봉사임당’에서 가족나들이를 함께 나가 보면, 바로 알 수가 있다.

엄마들은 4, 5세 아이들이 혹시나 주위에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나들이 상황에서 지켜야 하는 공공 에티켓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지시키며 아이에게서 어설픈 성능의 눈이나마 도무지 떼지를 못한다. 심지어, 잔존시력이 전혀 없는 전맹 엄마들은 귀라도 떼지 못한다.

(엄마가 시각장애인이라 애들이 저런다는 소리 들을까봐…)

엄마는 아이들 챙기느라 시간이 없어 후줄근한 복장으로 나오는 한이 있어도, 아이들만큼은 깔끔하고 예쁘게 좋은 옷을 입혀서 나온다.

(엄마가 안보이니까 애 옷 입힌 게 저 모양이라는 소리 들을까봐…)

행여나 간식이라도 먹다가 조금이라도 뭘 흘리면, 애들이 그럴 수도 있고 그냥 입혀도 될 것 같지만, 엄마들의 가방 속엔 언제나 풀세트 여벌옷이 갖추어져 있어 언제라도 여벌옷으로 갈아입힌다.

(엄마가 눈이 안 보이니 애 옷에 뭐 묻은 것도 못 봐서 꼬질꼬질한 옷을 입혔다고 할까봐…)

특히나, 아이들을 교육하고 훈육할 때에는 엄마들은 한 층 더 높디 높은 도덕적, 사회규범적 가치를 적용하여 아이를 가르친다.

(엄마가 시각장애인이라 애가 저 모양이지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물론, 나 역시 영락없는 전술한 부류의 엄마 중의 한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꼭 장애엄마가 아니더라도, 보통의 엄마들 역시 아이가 아파도 엄마 탓, 아이가 다쳐도 엄마 탓, 아이가 말썽을 부려도 엄마 탓이라는 소리 많이 듣는다.

그저 아이가 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일들조차도 모두 다 엄마 때문이란다. 특히나 그게 나쁜 일인 경우엔 더 더욱 그러하다.

이럴 때 우리 엄마들은 너무 억울하다. 그런데, 그 엄마가 장애까지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의 잣대는 더 더욱 비합리적이며 가혹해진다.

비장애인엄마와 장애인엄마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잣대를 글로 담은 그림. 여러 상황에서 사람들의 잣대는 비합리적으로 나타난다. ⓒ은진슬

아이가 간식을 먹다가 뭘 조금 흘려 옷에 살짝 묻은 걸 그냥 다니면?

비장애인엄마에게: ‘어머! **이가 뭐 먹다 좀 흘렸네! 괜찮아, 별로 티도 안 나네!’

시각장애엄마에게: ‘엄마가 안보여서 못 봤나보다. **이 옷에 뭐 묻었네!’

아이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비장애엄마에게: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애들은 다 싸우면서 크는 거야.’

장애엄마에게: ‘엄마가 장애가 있으니까 애가 저렇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장애부모들은 대부분 아이를 좀 엄격하게 키우는 경향이 있다. 아직 장애를 가진 한 사람이 결혼을 하여 부모가 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편견어린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심지어, 나의 경우,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아이를 보육해 주시는 일부 교사들의 편견에 가득 찬 관점 때문에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의 크나 큰 상처를 경험했던 터라, 부모의 장애 때문에 생기는 이러한 편견으로부터 내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엄한 부모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아이에게 내색하지는 않지만, 때로는 아이를 너무 엄하게 키우는 것 같아 그 누구보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우리 합리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

아이가 먹다가 흘리는 건, 엄마의 장애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만약, 상관이 있다면, 비장애부모의 아이는 음식을 옷에 흘리지 말아야 하며, 언제나 옷에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뭔가 먹다 흘렸는데 여벌옷을 안 가져왔다면, 장애부모나 비장애부모나 그 옷을 그대로 입혀 다녀야 하는 것뿐이다.

어떤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거나 공격성을 보이고 있다고 하자. 이 역시 부모의 장애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만약, 상관이 있다면 비장애부모들의 아이들은 절대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서도 안되며 공격성을 보여서도 안 된다.

장애부모의 아이나 비장애부모의 아이나, 부모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지 못했거나, 언어발달이 좀 느리거나 하는 여러 이유들로 아이의 정서가 불안할 수도, 공격적일 수도 있는 것일 뿐이다.

일부 사람들의 편견의 논리대로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자면, 장애부모의 육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다 ‘부모의 장애’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의 장애가 소거되면, 이 모든 문제들 역시 모두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당신이 비장애부모라서 당신 아이들은 이 모든 상황에서 자유로운가? 완벽한가?

옛 어른들 말씀에, 자식일 함부로 얘기하지 말랬다.

그러니, 같은 부모로서 자식 일을 쉽게 판단하거나 편견에 찬 시선으로 함부로 말하지 말자. 왜냐하면, 장애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부모는 나름의 결핍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의 결핍이 당신의 결핍보다 조금 더 두드러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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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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