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이가 집에 가면 언제쯤 오죠?”

“이번에는 부모님 하고 병원 다녀오느라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은성이와 친한 아이들이 있는데, 은성이 집에 놀러 가고 싶대요. 곧 학년 올라가면 못 갈 것 같아서요. 방학하는 날은 어때요?”

하굣길에 임희경(가명) 선생님과 몇 마디 주고받다가 은성이 친구들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초대하는 게 좋을까? 식당에서 만날까? 은성이 집에 온다는데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은성이는 어떨까, 아이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까? 시설이라서 주저했습니다. 은성이와 아이들에게, 어머니에게 물어봤습니다. 은성이는 마냥 좋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은성이 친구들이 놀러 오는 건 좋은데……, 조금 걱정돼요. 혹시 아이들이 와 보고 안 좋게 생각하면, 은성이에게도 안 좋을까 봐…. 아직 어리잖아요?”

어머니 생각을 임희경 선생님과 나눴습니다.

“그렇잖아도 아이들에게 설명했어요. 어떤 곳인지, 형은 왜 거기 사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친척 중에 몸 불편한 사람 있어요, 우리 엄마 친구 중에 몸 불편한 사람 있어요, 선생님은 우리가 아기인줄 아세요? 다 알아요, 하지 않겠어요? 참 기특하죠. 예쁘고요. 괜찮을 겁니다.”

임희경 선생님 말씀을 어머니에게 전했더니 마음을 조금 놓았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도 자기 생각이 있을 겁니다. 어울리며 생각을 넓히고 다듬기도 할 거고요. 그러니, 그럴수록.

은성이가 4학년 마지막 수업을 하고 집에 오면서 같은 반 친구 네 명을 데려왔습니다. 여학생만 네 명. 녀석! ‘은성이 오빠 집에 놀러 가도 돼요?’ 했던 아이들입니다. 은성이는 초등 5학년이지만 나이로는 중학생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꼬박꼬박 오빠, 형이라고 합니다.

두 손 모아 인사하고, 진지하게 듣고, 차분히 말하는 게 요즘 아이들 같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참하고 귀여운지. 벌써부터 오고 싶었는데 참았다가 오늘에야 왔답니다. 말도 참 예쁘게 하죠. 담임 선생님은 일이 생겨 못 왔습니다.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자기 사는 곳과 조금 다른 풍경이 낯설고 궁금한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은성이가 주로 이용하는 물리치료실과 공동 식당을 둘러보고, 공용 거실을 지나 은성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여기가 은성이 오빠 자는 방이에요?”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자기 집 자기 방 들어가듯 곧장 들어갔습니다. 시설 직원이 간식을 내주었더니 방문을 닫고 저들끼리 놀았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방문 닫고 놀지요. 속닥속닥하다가 큰 소리로 웃다가, 말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한 시간쯤 놀다가 점심 먹으러 시내 피자 가게에 갔습니다. 피자는 은성이 어머니가 대접했습니다. 아들 친구들 놀러 온다는데, 뭐든 내주고 싶었을 겁니다.

피자 가게 함께 다녀온 동료에게 들으니, 아이들이 참 기특했습니다. 얼굴도 예쁜 영미(가명)가 은성이 앞서 가게 문을 열고 휠체어 들어가기 좋게 기다렸습니다. 피자 먹을 때도 은성이를 잘 챙겼고요. 그래서인지 은성이는 영미를 제일 좋아합니다.

피자 먹고 금방 헤어질 줄 알았는데,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해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습니다. 거기서도 한참 수다 떨다가 헤어졌습니다. 영화 보러 가자는 걸 겨우 달래서 보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몇 명이 5학년 같은 반이 되었고, 영미만큼 은성이를 챙기고 영미만큼 은성이가 좋아하는 현주(가명)가 반장이 되었습니다. 은성이 5학년은 꿈같은 시절이겠죠. 「임우석, 2013년 2월 15일 일지, 발췌·편집」

2

‘안녕하세요? 은성이 담임입니다. 식사하셨어요? 다음 주에 반 아이들과 은성이 집에 놀러 가려고 합니다. 괜찮을까요?’

은성이와 친한, 6학년 같은 반 아이들이 ‘은성이 형 집에 놀러 가고 싶어요.’ 했답니다. 이번에는 남학생만 네 명. 남자 아이들만 보내려니 불안해서 김경민(가명) 선생님도 같이 오겠다 합니다.

친구들 오는 날, 학교에서 돌아온 은성이가 양팔을 흔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애들이랑 선생님들 오신대요.”

“그래? 카레랑 치킨 너겟 만들었는데 좋아할지 모르겠다.”

“맛있는 냄새가 나요. 숟가락은 내가 챙길게요.”

이런 날 어머니가 대접하면 좋겠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설명했고, 어머니 대신 준비했습니다. 은성이는 자기도 거들고 싶은지 숟가락을 챙겼습니다. 뇌성마비를 앓아서 손이 자유롭지 않은데, 그래도 떨리는 손 힘주며 하나씩 놓았습니다.

“아, 힘들다. 몇 개 더 해야 되지?”

말은 힘들다 하는데 얼굴은 내내 싱글벙글합니다.

학교에서 실컷 봤을 텐데 밥 먹으며 이야기가 멈추지 않습니다. 밥 다 먹은 아이들이 주방에 모였습니다. 전기렌지에 불 올리고, 국자와 막대 꺼내고, 설탕 꺼내더니 ‘달고나’를 만들었습니다.

“은성이 형이랑 만들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은성이가 차린 밥 같이 먹고, 두 분 선생님이 사 온 케이크 먹고, 친구들과 달고나 만들고, 실컷 이야기하고, 사진 찍고, 한참 놀다가 집에 갔습니다. 은성이는 마당에서 배웅하고, 휠체어에 앉아 자가용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습니다.

“다른 중학교 가도 꼭 놀러 올게.”

진우(가명) 말처럼 내년에도 이듬해도 오래도록 오가면 좋겠습니다. 「임우석, 2015년 1월 30일 일지/ 박현진 2015년 2월 4일 일지, 발췌·편집」

3

‘안녕하세요. 은성이 6학년 때 담임입니다. 지난번에 은성이 집에 놀러 갔던 아이들과 피자 한번 먹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오랜만에 김경민 선생님과 통화했습니다. 은성이가 좋다했고, 말 나온 김에 날 잡았습니다. 8월 3일 오후 5시 30분, 미스터피자. 은성이 창동초등학교 6학년 동창회.

동창회 시간 맞춰 피자 가게에 갔습니다. 조금 있으니 성태(가명)와 윤석(가명)이가 왔고, 뒤이어 김경민 선생님과 황명익(가명) 선생님이 도착했습니다. 선생님과 인사하고 시설 직원은 모임에서 빠졌습니다.

마쳤다는 연락받고 가서 은성이를 데려왔습니다. 피자 먹고 강변 산책하고 서점에 들렀답니다. 피자는 은성이가 사려고 했는데, 피자와 아이스크림 모두 두 분 선생님이 샀습니다. 김경민 선생님에게 책도 선물 받았고요.

“오늘 참 재미있었다. 다음에 또 만나서 놀고 싶다.”

황명익 선생님이 다음에 영화 보자고 했습니다. 두 번째 동창회를 기다립니다.

‘김경민 선생님, 황명익 선생님, 넘넘 고맙습니다. 은성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 보니 저도 행복합니다. 귀한 인연 이어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함께한 친구들, 고마워.’

김경민 선생님이 SNS에 올린 동창회 사진을 보고 은성이 어머니가 답장했습니다. 아들 집에 누가 오는 게 조심스럽고, 아들이 밖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염려하던 어머니 모습은 없죠. 평안해 보입니다. 「임우석, 2015년 8월 3일 일지, 발췌·편집」

아이들 오가고 함께한 이야기 들으니 천국인가 싶습니다. 장애 인식 개선한답시고 구경하듯 시설 다녀가는 게 무어냐, 서로 상처 받지 않고 불편하지 않게 배려한답시고 분리해서 교육하는 건 또 무어냐, 잘 돕고 잘 보살핀다며 아예 따로 살고 따로 떼어 공부하는 건 말해 무어냐.

시설 안에 특수학급 만들어 시설 학생끼리 학교 다녔다면 동창회가 어땠을까, 동창회마저 시설 행사이지 않을까?

아이들 어울리게 주선한 학교 선생님들, 더불어 살게 도운 월평빌라 동료들, 고맙습니다. 은성이 옆에 있는 친구들아, 고맙다. 너희들 세상 같다면야….

* 임우석 선생님과 박현진 선생님의 글과 말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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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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