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및 장애인복지법 개정 단식 투쟁. ⓒ이상호

형록에게

승리의 기록 ; (炯 빛날 형 錄 기록할 록 ; K! 아들놈의 이름이다)

아빠입니다.

11월이 되면 생에 몇 번 째 인지 모를 단식에 들어갈 듯합니다. 지난 몇 년간 당신과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장애운동 언저리에서 수많은 책무와 사명사이에서 끙끙 거리다가

그만 큰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그 시간들을 견뎌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잘 따라와 줘서, 아니 나보다 더 강건하게 버텨줘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호환마마 보다 더 무서운 자뻑이라 할 지언 정 난 당신이 나의 아들로 와줘서 매번 깊은 감동에 젖고 있습니다. 아빠가 아들을 돌보는 것이 아닌, 아들이 아빠를 돌보는 모양새가 된 것은 이미 수년이 지났으니 말입니다.

한심한 아빠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애기했습니다. 아빠는 왜 후배들에게 어마무시하게 돈도 쓰고 시간도 보내면서 자신에게는 단 한 푼도 쓰지 않느냐고…

올해 생일에 당신이 선물해준 4만원짜리 나이키 슬리퍼도 지나가던 길에 얻어걸린 1,000원 짜리 슬리퍼로 버티겠다는 나의 언사에 한심함을 너머 치료불가능이라 판단하는 당신의 짜증어린 눈빛에 슬며시 눈을 돌려 당신이 좋아하는 곱창으로 땜빵(?)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 버릇과 내성은 80년대 간곡한 시대의 뒤안길에서 선배들에게 배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닌 선배들만큼은 살아내지 못하더라도 이 정도는 유지하면서 죽어야 하는 책무가 있습니다.

아빠 단식하는데…

왜? 후배 시켜!

아니 내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 또한 한심함을 너머 치료불가능이라 판단하는 당신의 짜증어린 눈빛에 슬며시 눈을 돌려 뭘로 땜빵을 해야 하나 잔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2007년 장애인복지법 개정 단식 투쟁. ⓒ이상호

시간은 7년을 넘어 2007년을 기억합니다. 그 해 겨울의 초입과 절정에서도 저는 여의도 천막에서 단식 중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초딩이 되기 전 해로 기억합니다.

당신에게는 외국 나간다고 구라를 시전 했다가 당신의 천막 방문으로 들통이 나고…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왜 아빠는 집으로 가지 않느냐며 울었던 그 밤은 참 힘들었습니다. 어마무시 배고픈데 서러움까지 더 하니…

알아듣지 못 할 복잡한 이야기이긴 하나…

당신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운동이 고양기일 때에는 일정의 저항이 사회에 쉽지 않은 강단을 던져주지만, 조정 기에 접어들면 제도와 운동 사이에서 일정의 간극이 발생합니다. 도덕적 긴장감이 이완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운동에 대한 도덕적 반전, 실천에 함께 하지 못하는 죄책감등이 숙성되어 일정의 시간이 지나면 단결을 내오고 전선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토대위에 대안과 저항, 전선을 그어 약자의 삶이 지난 시기에 비해 반전을 내오게 되는 것이 아빠가 그 동안 겪어내었던 이른 바, 운동의 정석이었습니다.

그리 되기 힘들 듯합니다. 싸움의 내부에서 조차 도덕적 긴장감이 이완되고 있다는 것이 장애계 내부의 진단인 것 같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인데 하나는 활동보조 시간과 급여의 문제입니다. 당사자의 입자에서는 무엇보다 시간의 확대가 중요하고, 활보 분들은 급여가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신체장애보다 더욱 비극에 빠져 있는 정신적 장애인 분들의 제한적 서비스 시간, 혹은 서비스 이용에서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것은 이 싸움을 넘어서는 뇌관으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전달체계의 기형성입니다. 서비스에 제목은 자립생활 서비스인데 재활과 일자리 사업 등이 혼재되어 정책의 원칙과 근본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마치 청소년 복지관 사무를 노인복지관에서 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장애계를 둘러 싼 권력의 향방을 뜻합니다.

실현가능성은 둘째 치고 시설과 지역을 동시에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지 중 2인 당신에게 물어봐도 금방 혜안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군사비를 상당량 희생해야 하는 분단조국에서 말입니다. 어찌 보면 질문 자체가 한심하다 할 것입니다.

보편적 복지 국가는 차치하더라도 선별적 복지국가에서 조차 시설과 대규모 정신병원은 비용의 측면에서도 국가는 감당할 수 없음을 지난 시기 역사에서 충분히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중증의 신체장애인 분들은 시설로부터 탈출을 감행했고 성공했습니다.

다만 500명을 탈출시키는데 500명의 산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장애운동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충분히 예상했지만 기존의 장애 전달체계에서는 이에 대한 실천과 감행의 부재가 있었고 장애인당사자를 중심으로 한 진앙지가 있었음은 곧 역사적으로, 실증적으로 밝혀 질 것입니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났습니다.

야! 청춘이 내 뜻 데로 되지 않는다! - 나 -

야! 그런 세상을 물려 준 우리 잘못이다!

술이나 쳐 먹어라! - 친구 -

이미 몰락을 예감하고 있는 대 부분의 자영업자 분들, 청춘, 장애인, 노년의 세대! 최근 blue house(청와대?)를 둘러 싼 소설 같은 이야기들!

세상이 따뜻해지지 않을 거라는 암울한 예견을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사고 이후 당신과 잘 지내보려 시전 했던 수많은 여행과 캠핑은 종지부를 찍을 것 같습니다. 이제 북한도 무서워하는 중 2가 되니 당신의 에너지는 차고 넘쳐 나의 장애로 인한 정적인 여행과 캠핑은 한계에 이른 것 같습니다.

단식이 끝나면 넉넉하게 여행을 갑시다. 아빠는 후지게 살았지만 그래도 운이 좋아 곁에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당신과 함께 한 분, 한 분 만나고 모시면서 삶의 자양분과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나머지는 당신의 삶입니다.

이형록 선생!

깊이 감사드리고 고맙습니다.

아들 형록이와의 가족사진. ⓒ이상호

[2017년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공개 모집]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장애운동을 한다는 것은 유전적으로 무척 훌륭한 DNA가 없다면 기실 불가능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화려함을 강점으로 한다. 재벌을 비난하지만 재벌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과 일치한다. 물론 loser(루저: 패배자, 손해 보는 사람)가 재벌로 편입되는 일은 통계학적으로 잡히지 않을 만큼 불가능하다. 자본의 입장에서 천박하거나 가난한 것은 화려한 조명아래 어두운 그늘이 된다. 물론 그것을 들여다보거나 살펴보려하는 용기를 가진 이는 드물다. 주위를 살펴 볼 만큼의 여유는 자본의 입장에서 허락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링거를 꽂은 채 연명치료를 하는 모양새로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후로 대한민국은 늘 울고 있다. 마치 타이게투스산(고대 스파르타인 들이 불구자 혹은 원치 않은 아이들을 버렸던 산의 이름)에 울려 퍼졌던 통곡처럼, 누군가는 타이게투스산에 울렸던 통곡을 대신해야 하지 않을까? 헛소리를 넘어서는 수준에서 통곡을 대신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