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우수성을 알리는 포스터(좌측), 건강검진 포스터(우측). ⓒ이원무

최순실이 나라 일과 재정에 개입해 자신의 입김대로 국정을 농간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장애계는 물론 대한민국의 온 시민들까지 나서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필자도 시민들의 뜻을 무시하지만 한 개인의 말을 듣는 대통의 모습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더군다나 최순실이 사주한 ‘문화창조 융합벨트’에는 1,200억을 배정했지만 장애인 활동보조 예산은 시급 9000원 동결, 장애인 연금은 고작 200원 인상, 노동권 및 건강권 예산은 삭감하는 것 등이 드러나면서 장애계는 박근혜 퇴진 투쟁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그나마 장애계의 투쟁으로 인해 활동보조 예산은 시급 9,800원으로 증액되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요즘 필자는 ‘진짜 헬조선 맞다!’는 확신이 강하게 든다. 더욱이 이 사건 이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운영 행태는 더욱 필자를 화가 나게 만들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이 건보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니, 8개월 전 정부가 7대 사회보험 재정건전화를 위한 국내외 투자 등의 적극적 자산운용을 실시한다는 방침에 따라 건보공단은 올해 5월, ‘투자전략팀’을 임시조직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재정관리실이 원래는 ‘재정관리부’와 ‘자금운용부’로 되어 있었는데, 2017년 건보공단 조직 개편안에는 재정관리실에 ‘자금관리부’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자금운용부가 관리하던 자금은 ‘자금관리부’로 이관되고 자금운용부는 단·장기 자금 운용인 투자를 업무로 한다고 한다.

윤 의원은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 2항의 ‘적립한 준비금은 보험급여 비용 부족과 지출 현금이 부족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며 ‘공단 조직 개편과 이를 통한 중장기 투자확대 방향’은 건강보험 준비금 성격상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건보공단이 과연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서 일하는 곳이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난 6월 서울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최로 개최된 ‘장애로 인한 추가 진료항목의 의료보험 적용확대’ 토론회에서 장애인들이 요구했던 목소리가 생생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당시 화상장애인 당사자는 보습제가 비급여이고 한 통에 40~50만원 들어 생활하기가 상당히 빠듯하다고 했다. 뇌병변장애인 당사자는 경추수술에 치료비가 엄청 많이 들어 이 부분에 대한 급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장장애인의 경우에는 합병증 시 산정특례로 인정되지 않고 비급여로 처리되는 등 평균 25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장애인과 장애계의 요구에도 보건복지부에서는 의료기관은 수익을 얻으려는 유인이 있다는 등, 보험급여에서는 임상유용성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가며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보험 급여화는 당장 어렵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그러면 건보공단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공공서비스(건강보험 의료서비스도 포함)가 돈벌이 경쟁에 뛰어들 때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감을 알려주는 경고문구. ⓒ이원무

제1조(목적) 이 법은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건보공단은 제1조에 나온 대로 국민건강을 위한 보험급여 실시는 물론 보험급여화, 공공의료체계 구축 등의 업무를 하는 곳이다. 건보공단이 일을 하는 이유는 이럴진데, 지금 건보공단이 추진하는 준비금 투자확대는 보험급여 실시로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하겠다는 건보공단 본연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장애인권리협약 25조 가호에는 무상 또는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의 건강관리 및 프로그램을 장애인에게 제공한다고 나와 있다. 이 조항까지도 무시하는 거다. 이런 식이면 필자는 내고 있는 건강보험료를 환불하라고 요구하고 싶을 정도다.

설립 초기 때부터 쿠테타에 현격한 공을 세운 5공 실세들이 건보공단 요직을 차지하면서 공단 운영 효율성이 낙후되었고, 지금은 투자확대에 신경을 쓰며 건강증진을 위한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건보공단! 여기에 의료집단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장애인은 장애로 인한 추가의료비 비급여, 비장애인은 MRI비급여, 선택진료비 등 소득에 비해 상당한 의료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준비금을 공공병원 확충 등 공공의료체계 구축에 써야 되는데 이마저도 투자로 돌리는 건보공단의 자세로 인해 공공의료 현실도 너무도 열악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민영병원이 90%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는 아예 없어 보인다.

재정건전성이 걱정된다면 정부에 건강보험 재정지원을 요청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에 비해 내년 건보공단에 건강보험 재정지원 예산을 삭감했다. 정부도 국민의 건강증진에 신경 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 건강증진과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단, 정부가 국민에게 집이 되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되고 있는 이 현실에서 필자는 공단과 정부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정부와 건보공단의 존재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필자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 국민이라면 마음속에서 하고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을 여러 번 해야 할 정도로 장애인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지금이라도 건보공단은 투자확대를 위한 안을 다시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 안을 철회하고 진정 장애인과 국민의 요구를 들어, 보험급여 지출과 공공의료 체계 구축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하는 조직구조로의 개편을 통해 온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건강할 권리를 누리는데 일조하는 조직으로 다시 거듭날 것을 강하게 촉구한다.

수가체계도 행위별 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로 바꾸는 등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의사들의 처우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지원 예산 증액 등도 아울러 요구하고 싶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건강의 권리를 누리는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건보공단과 정부에서 노력을 전력으로 경주해주길 필자는 바란다. 오늘도 필자는 이 질문을 다시 하며 글을 마친다.

‘정부와 건보공단의 존재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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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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