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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책 읽기' 시각장애 맘의 공룡파워

장애와 다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심어 주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6-10-28 15:37:58
3, 4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예쁜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다. 아이 곁에는 엄마가 다정한 표정으로 앉아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아이가 있는 집의 베드타임 풍경일 것이다. 이런 이미지들은 TV 드라마 속이나 아이들의 동화책 속에도 많이 등장하는 정형화된 이상향이기도 하다.

동화책이나 매스컴에서 보여 주는 저런 정형화된 판박이 같은 베드타임 이미지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과연 저렇게 이상적으로 그려지는 베드타임이 충실히 실현되고 있는 가정이 우리 현실 속에 몇이나 될까? 분명한 건, 우리 집 베드타임은 저런 이상적인 모습은 아닌데 말이다.

왜 동화책 속 아이는 하나 같이 더할 나위 없이 예쁘게 꾸며진 자기 방, 예쁜 침대에 누워 있는 걸까? (침대 안 쓰고 이불 깔고 자는 집도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예쁜 방, 예쁜 침대라 해도 한국의 3, 4세 아이들 중 한국적 육아 환경에서 저 예쁜 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하는 아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도대체 저렇게 예쁜 잠옷은 어디서 파는 거지? (우리 이응이는 자기 전에 목욕하고 뽀로로가 그려진 내복을 입고 자는데…)

이런 딴지쟁이, 투덜이스머프 같은 생각은 나 혼자만의 것일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당신 아이의 베드타임은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럼 이쯤에서 우리 집의 일상적인 베드타임의 모습을 살짝 공개해 보고자 한다.

오후 8시 30분 전, 후로 아이가 목욕을 마치면 자동차나 뽀로로, 미키마우스 등이 그려진 내복으로 갈아입은 후, 오늘 하루 아이가 지켜야 하는 일들을 잘 했는지 서로 이야기한 후, 잘 지킨 정도에 따라 다른 색깔로 영역별로 아이와 함께 색칠을 한다. 한 마디로 아이의 눈높이에서 하루 일과를 돌아보는 것. 예를 들어, ‘음식을 골고루 먹었나요?’라는 항목에 대해 아이와 얼마나 잘 지켰는지 이야기한 다음, 아주 잘 지켰으면 초록색 보통이면 노란색 잘 지키지 못했으면 빨간색을 색칠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 돌아보기를 마치고 나면 엄마와 아빠, 이응이는 모두 안방의 침대로 가서 셋이 불을 끄고 나란히 눕는다.

본격적인 베드타임 시작!

우선, 아빠와 함께 하는 몸놀이를 하는데, 우리는 이 놀이를 ‘부릉부릉’이라고 부른다. 침대에 누워서 아빠 몸으로 이응이가 좋아하는 자동차도 태워주고, 우주선이 되어 태양계 여행도 하고,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도 되어 주면서 누워서 몸놀이를 10분 정도 신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는데, 이응이가 밤 9시 이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베드타임을 시작하면 다섯 가지의 탈 것을 선택하여 몸놀이를 할 수 있고(부릉부릉 5개), 안자겠다고 버티거나 이응이의 잘못으로 베드타임 시작 시간이 9시를 넘기면 부릉부릉 3개만 가능하며, 베드타임 시작이 10시가 되면(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부릉부릉은 0개가 된다. 이러한 규칙에 따라 부릉부릉이 어쩌다가 3개가 되면 이응이는 엄청나게 슬퍼하며 종종 울기도 한다.

이 과정을 마치면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워서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듣는다. 불을 다 끄고 이불까지 덮고 누워서 어떻게 책을 읽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한 것 아닌가? 우리 집의 베드타임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리는 이상과는 많이 다르다고.

그렇다. 나는 불을 끄고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는 부모의 자세라고 보기에는 여간 불량한 자세가 아닌데, 이런 불량독서(?)가 가능한 이유는, 내가 내 눈으로 글씨를 볼 수 있었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엄마의 선견지명(?)에 따라 점자를 배워 두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내 눈이 많이 나빠져 더 이상 일반 교과서를 보며 공부할 수 없게 된 중학생 시절에도 나는 큰 혼란 없이 자연스럽게 점자책으로 갈아탈 수 있었으며, 악보를 보면서 피아노를 칠 수 없어도 점자를 잘 알았기 때문에 점자 악보를 배우고 악보를 외워서 피아노도 계속 공부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내 영어 공부는 매일 밤, 자기 전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독해책을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배 위에 올려놓고 두 세 챕터 푸는 것이 전부였는데, 고3 때 이 시간은 고단한 입시생의 하루를 견디는 나 나름의 휴식과도 같은 의식이 되어 주었다. 아무튼, 엄마의 탁월한 선견지명 덕분에 나는 점자를 정말로 잘 읽는다. 시각장애인들 중에서도 나보다 점자를 빠르게 잘 읽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

아이가 만 3세가 되었을 때, 나는 1급 시각장애 엄마의 이렇듯 특이한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베드타임에 아이에게 점자 동화책을 읽어 주겠다는 결정을 했다. 내가 굳이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로 했다.’가 아닌, ‘읽어 주겠다는 결정을 했다.’라는 다소 무겁고 비장해 보이는(?) 어휘를 사용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내 시력이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와 간단한 놀이를 하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하는 선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진 이질감을 가져다주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 앞에서 점자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 나름으로는 아이에게 내 장애에 대해 오픈하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납득할 수 있도록 아이와 공유와 토론을 기꺼이 할 준비가 되었다는 선언적 의미를 가지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나는 휠체어도 타지 않으며, 흰 지팡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도수가 매우 높은 안경을 쓰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안경을 쓴 사람이 나만은 아니기에 그것도 극단적으로 장애인스러운(?) 비주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점자를 읽는다는 건, 시각장애로 야기될 수 있는 극도로 이질적이며, 타인의 시선을 자석처럼 잡아끄는 가장 장애인다운 핵심 정체성인 샘인데, 나는 드디어 이런 내 시각장애인으로서의 날 것 그대로의 정체성을 아이에게 드러내기로 한 것이었다.

아이는 아마 놀랄 수도 있고,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 당황하거나 끝도 없는 질문을 쏟아낼 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 내게 100%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두 불구하고 해야만 했다. 내가 대학 시절부터 장애에 대해 다양한 연령,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강의를 하면서 느낀 점은, 조금이라도 생각주머니가 말랑말랑 유연할 때 ‘다름’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효과성이 가장 좋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철학이 확고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친구 엄마 한 번 쳐다보고, 나 한 번 쳐다보며 이질감을 느낀다면,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사연 때문에 아이에게 잠들기 전에 동화책 몇 권 읽어 주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이었다.

자, 이제 결심도 했으니 점자 동화책만 구하면 되는데, 점자 동화책은 과연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옛날 같으면 내 마음이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점자 동화책을 직접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나의 이토록 어려운 결심을 바로 실행해 옮길 수 없었겠지만, 요즘은 그래도 상황이 나아져서 내가 점자 동화책 만들 걱정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것만으로도 내 짐은 한 층 가벼워졌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산하기관인 ‘한국학생점자도서관’에서는 나와 같은 시각장애를 가진 엄마의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일반 동화책의 텍스트를 점역한 다음,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도록 그림을 방해하지 않는 투명한 재질의 특수 용지(모텍스)에 인쇄하여 동화책에 붙여 시각장애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볼 수 있는 점자 동화책을 제작, 대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도서관이 종로구에 위치하고 있어 우리 집에서는 너무 멀기 때문에 나는 택배 서비스를 이용한 대여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고 있지만, 여느 공공 어린이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데리고 가서 함께 맘껏 책을 골라 가며 읽을 수도 있다. 아이와 어쩌다 공립 어린이 도서관 같은 곳에 가도 거기에 있는 책들은 나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인데, 이곳에 가면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아무 걱정 없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시각장애 엄마들에게는 엄마로서의 자존감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시설 좋은 도서관에서도 누릴 수 없었던 자유를 선물해 주는 멋진 곳이다.

도서관에는 점자 동화책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과 교구들도 갖추어져 있는데, 서울시에 거주하는 시각장애 부모에게는 점자 동화책과 마찬가지로 이동의 제한성이 높은 시각장애 부모들을 위해 도서관에서 별도의 차량을 운영하여 직접 찾아가는 대여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2월에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면 정기적으로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방문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책들을 실컷 읽어줄 계획이다.

짜잔! 드디어 점자 동화책을 처음으로 읽어 주던 날. 나는 한껏 흥분한 목소리로 불 다 끄고 침대에 누워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응아! 엄마가 지금부터 동화책을 읽어 줄거야. 아까 택배 아저씨가 가져다 준 점자 동화책들 엄마랑 같이 봤지? 엄마는 눈이 너무 나빠서 글씨를 볼 수가 없는데, 이렇게 올록볼록한 점자를 사용하면 캄캄한 밤에 불을 끄고도 책을 읽을 수 있거든. 완전 신기하지? 이응이는 캄캄한 곳에서 그림책에 있는 그림 볼 수 있어?’

‘아니, 못 봐.’

‘자, 그럼 지금부터 엄마가 책을 어떻게 읽는지 잘 들어 봐.’

‘고래 백화점에 가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문어 공주에게는 나쁜 버릇이 딱 하나 있어요. 마트에만 가면 뭐든 다 사달라고 조르는 것이지요.’
책 한 권을 다 읽고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이응아! 엄마 캄캄한 방에서도 책 잘 읽지? 다른 엄마들은 이렇게 밤에 방에 불 끄고 책 읽어주는 거 못하거든. 엄마 공룡 파워 짱이지?’

‘어, 맞아! 엄마 공룡파워 짱이야.’

캄캄한 밤에 불 다 끄고 지극히 불량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점자 동화책을 읽어주는 ‘Reading in the dark’가 시작된 지도 어느 새 10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다행히 나의 우려와는 달리 아이는 내가 점자를 읽는 모습에 놀라지도,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엘리베이터에 있는 점자를 유심히 만져보기도 하고, 내게 가르쳐 달라고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나는 왜 점자를 못 읽어? 아무리 만져봐도 모르겠어.’라며 답답한 표정을 짓기에 ‘이응이가 좀 더 커서 한글을 배워서 잘 읽게 되면 그 때 엄마가 점자 가르쳐 줄게.’라고 말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아이와 책이 좋은 친구이기를 바라기 마련인데, 자기 전에 책 읽어 주는 이 시간을 이응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어쩌다가 내가 일 때문에 바빠서 동화책을 빨리 교체해서 대여하지 못해 같은 동화책을 계속 읽어주면 이거 재미없으니까 빨리 다른 거 빌려 오라며 야단을 칠 정도이다.

아이가 엄마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기를 바래서 시작했던 ‘어둠 속의 책 읽기’가 뜻 밖에 나에게도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책을 읽어 주다 보면 청각은 몇 배 더 예민해지고,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아이에게 정확한 발음으로 재미있게 책을 읽어 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강의를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는데, 얼마 전 인터넷 강의 녹화 때, 기록으로 남는 강의라는 점이 너무 신경 쓰여서 오랜만에 점자 원고를 읽으면서 한 강의였음에도 Reading이 훨씬 더 자연스러워 져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한 편, 어쩌다 번역된 동화를 읽다 보면 이 사람은 왜 이런 단어를 써서 번역을 했을까, 아이들 눈높이에서는 이런 단어가 낫지 않았을까 등등의 생각이 떠올라 아이가 잠들고 나면 남편과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책을 좋아하는 내가 육아를 핑계로 게으른 아줌마가 되어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데,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 ‘행복한 왕자’ 등의 동화를 읽다 보면 새삼 작가의 작품 세계와 철학에 감탄하게 되는 호사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아이를 위해 조금은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던 ‘어둠 속의 책 읽기’라는 의식이 아이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의외로 나에게 얼마나 많은 소소한 기쁨과 지적 유희까지 가져다주는 달콤한 시간이 되었는지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다.

이응이가 과연 언제까지 엄마와의 조금은 특별한 책읽기를 좋아해 주고, 원할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아이가 자라 언젠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는 그 어느 순간, 이 달콤하고 소중한 시간은 끝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때가 너무 빨리 오지는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

모쪼록 그 날이 올 때까지 나도, 아이도 행복한 ‘Reading in the dark’라는 이 특별한 의식이, 아이가 나의 장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다름을 멋지게 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또한, 이응이가 눈으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상황을 불편함(?) 내지는 약점(?)이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방식에 갇혀 ‘어렵겠다’, ‘힘들겠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누워서 책 볼 수 있어 편하겠다’, ‘불을 안 켜도 되니 전기료가 절약되어 좋겠다’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줄 아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 주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꿈꾸며,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고, 어둠 속에서 빛을 볼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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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은진슬 (glassd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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