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졸업식, 학부모 간담회, 참관 수업, 소풍, 체험학습, 수학여행, 운동회, 학예회, 동아리활동…, 학교행사가 많습니다. 장애가 있어도 학교행사에 적극 참여하게 합니다.

행사마다 함께할 사람이 있습니다. 입학식, 졸업식, 학부모 간담회, 참관 수업, 운동회, 학예회 같은 행사에 부모님이 참석하게 합니다. 입학식, 졸업식, 소풍, 체험학습, 수학여행, 운동회, 학예회, 동아리활동 같은 행사에 친구들과 어울리게 합니다.

상한 갈대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게, 할 수 있는 만큼 어울릴 수 있는 만큼, 거기까지 하게 합니다.

한 아이가 학교 다니는 데는, 누구라도,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감당할 몫이 있습니다. 수고와 눈물,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장애가 있는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가 있어 낯설고 어렵다면 그 학생 옆에 있는 사람들이 지혜를 모으고 협력하여 돕습니다. 돕게 합니다.

시설 사회사업가는 부모형제, 선생님, 친구를 돕습니다. 부모형제, 선생님, 친구와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여 이룹니다.

입학식과 졸업식에 부모님이 참석하고, 학부모 간담회와 참관 수업에 부모님이 의견 내고, 운동회와 학예회에 부모형제 함께하여 축하하고 기뻐하게 합니다. 입학식과 졸업식조차 교실에 머문다면, 학부모 간담회와 참관 수업에 미안한 마음으로 온다면, 운동회와 학예회가 남의 아이 잔치가 된다면, 발걸음 무색하고 상처가 클 겁니다.

O

어머니와 승마장 가는 날, 어머니가 학교에 왔다. 교실에 간 어머니가 한참 만에 우영이와 나왔다.

“요새 우영이가 학교에서 잘하나 봐요. 잘한다고 하네요.”

어머니 목소리가 떨렸다.

“운동도 잘 하고, 학교에서는 밥도 잘 먹는대요. 조금 있으면 운동회라는데, 우영이 첫 운동회니까 도시락 싸서 애 아빠랑 와야겠어요.”

“아버지도 시간 내서 오시면 좋겠어요.”

“요새는 급식소에서 친구들이랑 먹는대요. 2학년 담임 선생님이 우영이랑 같이 드신다 하고요.”

선생님에게 들은 우영이 학교생활은 훌륭했다.

“입학 전에는 애 아빠랑 많이 걱정했어요. 다른 아이들 방해할까봐 걱정하고 배울 게 뭐 있을까 걱정했는데, 학교 다니니 의젓하네요.”

신발과 옷이 커지고, 걸음걸이가 늘고, 친구들과 밥을 먹고…, 어머니에게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놓치고 싶은 순간도 없을 것이다. 「2014년 9월 23일 일지, 박현진. 발췌·편집」

O

우영이 첫 운동회가 열렸고, 어머니와 누나가 왔습니다. 도시락 싸고 간식 챙겨서 왔습니다. 평일에는 시설에서 먹고 자고 학교 다니는 아들, 주말이나 집안행사 때 집에 데려가는 아들. 아들이 친구들과 뛰노는 모습 보고 싶고, 오늘이라도 실컷 먹이고 싶었겠죠.

2학년 달리기, 저학년 단체 경기, 전교생 단체 시범, 부모와 함께, 친구와 함께…, 운동회 마칠 때까지 우영이는 어디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운동회 소식 듣고 부모님, 선생님, 학교와 부지런히 의논해야 하는데, 이벤트 업체가 운동회를 맡으면서 놓친 겁니다. 만국기 펄럭이고 음악 소리 요란한, 여기저기 웃고 떠드는 운동장에서 울음을 삼켰습니다. 후회했고 죄송했습니다.

O

도움반 선생님과 우영이 지원 계획을 의논했다. 방학 동안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말씀드렸고, 3학년 학교생활은 어떻게 지원할지 의논했다.

2학년 때는 4월 봄 소풍, 10월 운동회 같은 학교행사에 친구들과 어울렸다. 전교생 조회 시간에도 꼬박꼬박 친구들 틈에 있었다. 한글과 숫자를 배우는 것 못지않게 친구들과 어울리고 학교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부탁했다.

소풍 도시락을 어머니가 쌌고, 부모 간담회에 어머니가 참석했고, 가을 운동회에 어머니와 누나가 함께했던 것처럼 학교생활에 부모형제가 더 상관하기 바란다고 했다. 부모형제와 더 의논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선생님은 우영이 입학 후 3일 동안 유심히 보기만 했단다. 우영이를 위해 무엇을 할까, 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었단다. 2년을 가르친 우영이, 여전히 막연하고 어렵다는 생각에 무기력했고, 우영이 어머니에게 면목이 없단다. 선생님이 울먹였다. 침묵이 흘렀다.

선생님은 우영이 혼자 물이라도 먹을 수 있게, 두 사람이 돕던 걸 한 사람만으로도 가능하게, 그 한 사람마저 갈수록 수월해지게 하는 것이 지금 할 일이라고 했다. 작년처럼 학교행사에 함께하도록 애쓰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어머니와 수시로 연락했다. 사진 찍어 보내고, 전화하고, 학교에서 만나면 오래 이야기했다.

우영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기 바란다는 말씀이 고맙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돕겠다는 말씀이 고맙다. 찾아와서 함께 의논하니 고맙다는 말씀이 고맙다. 찾아와 의논하길 잘했다. 작년에 비추어 올해를 의논하니 편안하다. 선생님도 편안해 했다.

작년과 같아도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와 선생님과 의논하며 시작했으니 작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계획하며 욕심이 났다.

3월에 학년 담임 선생님이 결정되면 그때 다시 의논할 계획이다. 의논하기 전에 우영이 자료와 『월평빌라 이야기』를 챙겨드려야겠다. 「2015년 1월 16일 일지, 박현진. 발췌·편집」

O

3학년 2학기 개학을 앞두고 도움반 선생님, 복지시설 사회복지사, 시설 물리치료사, 시설 간호사가 학교에서 만났다. 어머니는 일이 생겨 못 왔지만 사전에 의견을 보냈고, 학교 선생님과 따로 만나기로 했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와 의사 소견을 사전에 설명했다. 시설 간호사는 건강 상태와 먹는 약을 설명했다. 시설 물리치료사는 재활운동을 설명했다. 학교 선생님은 2학기 학습지도안을 설명했다. 네 사람은 우영이의 학습, 재활, 학교생활을 의논했다.

“올해도 운동회를 하나요?”

운동회 이야기를 꺼냈다. 2학년 가을 운동회가 생각났다.

“아니요. 올해는 하지 않습니다. 운동회 대신 학예회를 합니다.”

“이번 학예회에 우영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한 가지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할 수 있는 게 마땅치 않고 상황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학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머니와 의논해 볼게요. 작은 것이라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1학년 학예회, 2학년 운동회에서 우영이는 휠체어에 가만 앉아있었다. 어머니는 그게 섭섭했지만 학교 사정이 있고 선생님들이 힘들 거라고만 했다.

“학교에서 모두 감당하라는 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 돕겠습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대신해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선생님이 메모했다. 「2015년 8월 12일 일지, 박현진. 발췌·편집」

O

3학년 가을에는 학예회가 열렸습니다. 시골 작은 학교에 부모들이 오고, 지역 단체장들이 자리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유치원 재롱, 저학년 악기 연주, 고학년 합창, 학년 댄스, 풍물반 풍물, 전교생 아동극…, 우영이는 어디 있을까?

학예회 하이라이트는 「강아지 똥」 아동극이었습니다. 서른 명 남짓한 전교생 대부분이 참여했습니다. 몇 날을 준비했겠죠. 사회자가 아동극 시작을 알리자 무대 아래쪽이 부산합니다. 교직원 세 명이 휠체어 탄 우영이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선생님과 우영이가 무대 중앙에 섰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습니다. 우영이 손에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우영이가 인사하며 연극의 막을 열었고, 사람들은 박수로 우영이와 연극을 맞았습니다.

무대 앞쪽에 1학년 3학년 5학년, 뒤쪽에 2학년 4학년 6학년이 앉았습니다. 그럴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3학년과 4학년 자리를 바꿨습니다. 3학년 아이들이 휠체어 탄 우영이와 함께 뒷자리 앉겠다고 했답니다. 아이들의 생각이 깊습니다.

4학년 가을에는 운동회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김밥과 음료수, 간식 챙겨서 일찍 왔습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정렬했습니다. 우영이도 학년 맨 뒤에 섰습니다.

전교생이 체조할 때, 어머니가 우영이 손을 잡고 체조했습니다. 우영이는 공 건네기 단체전에 출전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우영이를 도와 다음 선수에게 공을 넘겼습니다. 4학년 50미터 달리기, 세 명이 출발선에 섰습니다. 우영이가 거기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시설 직원이 도왔습니다. 1등 할 요량으로 힘차게 달렸답니다. 2등 했습니다. 3등한 아이가 속상해 했답니다. 제대로 했죠.

우영이는 운동회 내내 청군 천막에서 아이들 틈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틈틈이 우영이에게 말을 걸고 옆에서 재잘거렸습니다.

“어, 우영이 오빠 나랑 같은 곰 인형 들고 있네. 맞다, 오빠도 달리기해서 곰 인형 받았지.”

현주(가명)가 우영이 무릎에 놓여있는 곰 인형을 우영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우영이 오빠, 곰 인형 예쁘지?”

두 번째 학예회와 두 번째 운동회에는 우영이도 함께했습니다.

* 월평빌라 박현진, 윤영택 선생님의 글과 말을 정리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