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설에 사는 학생이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받았습니다.

학생을 지원하는 시설 직원이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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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가명, 초등 5)이가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받았다. ‘부모 상담 기초 자료’ 설문과 학부모 간담회 안내였다. 주연이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가정 통신문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드렸다.

‘부모 상담 기초 자료’ 설문 하나씩 읽고 여쭈었다. 어머니가 답한 것에 시설 직원의 생각을 보태서 제출하겠다고 했다. 오늘처럼 어머니와 오래 통화하기는 처음이다.

학부모 간담회 안내문을 읽고, 일 년에 한 번이니 꼭 오시라고 부탁드렸다. 학부모 간담회는 시설 직원이 대신할 자리가 아니다. 「2011년 3월 9일 일지, 최희정. 발췌·편집」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받으면 학생이 부모님에게 말씀드리도록 합니다. 학생이 잘 전하면 맡기고, 그렇지 않으면 거듭니다.

부모 의견을 물으면 부모님이 답하도록 합니다. 설문지는 부모님에게 팩스나 메일로 보내고, 여의치 않으면 전화로 여쭙습니다. 가능하면 학교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연락하게, 설문지는 학교에서 부모님에게 바로 보내게 합니다.

부모님이 아이 학교생활을 직접 챙기고 학교 선생님과 직접 관계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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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님이 민섭(가명, 고2)이 편에 ‘부모 상담 기초 자료’ 설문지를 보냈다. 학기 초에 항상 있다. 이런 설문은 어머니가 답했으면 한다. 선생님에게 부탁해 설문지 파일을 받았다. 민섭이 누나에게 파일을 보냈다.

“학교에서 민섭이 지도하는 데 필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어머니 몫이니 어머니께 드립니다. 어머니와 작성하셔서 보내주세요. 오늘 저녁 먹을 때, 민섭이 생일에 집에 간다고 하니 무척 좋아했습니다. 아직은 민섭이 말 가운데 온전히 알아듣는 게 엄마밖에 없습니다.”

민섭이 누나가 답장을 보냈다.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 상큼한 봄이 다가오네요. 늘 마음뿐이고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민섭이가 월평빌라에서 생활한 지도 제법 오래됐네요. 그래도 저는 민섭이 생각하면 아직도 코끝이 찡해요. 선뜻 선생님께 전화해서 민섭이 안부를 묻기가…, 아직은 가슴 한 구석이 아려서요. 잘 지내겠지 생각만 하고 맙니다. 엄마와 달리 선뜻 통화할 용기가 나지 않아요. 눈물이 앞서서요. 시간이 지나면 극복되겠죠. 항상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섭이가 좋은 곳에서 좋은 분들과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가족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데, 우리 무섭이 잘 챙겨주시리라 생각해요. 월평빌라에 행복과 사랑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봄처럼 따뜻한 일상이 되길 바랄게요.”

누나 편지를 읽는데 괜스레 코끝이 시큰하다. 장문의 편지에 묻어나는 누나 마음이 느껴진다. 덕분에 ‘부모 상담 기초 자료’를 자세히 썼다. 「2012년 3월 25일 일지, 임우석. 발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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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상담 기초 자료’ 설문지를 받았다. 나이, 성별 같은 간단한 것은 누구나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가 중요하다.

학교 선생님에게 전화했다.

“직원이 모르는 게 많습니다. 이건 부모님께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출 기한이 촉박한데 조금 늦춰 주면 어떨까요?”

학교에서 받은 것이니 일단 학교에 물었다. 조금 늦게 제출해도 된다기에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님, 학교에서 부모 상담 기초 자료라는 설문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이 많고, 아버님께서 하셔야 할 것 같아 부탁드립니다.”

설문지를 팩스로 보냈고, 설문지를 다시 팩스로 받았다.

“다 작성하고 팩스 보내기 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학교에 전화해 봤는데 날짜는 크게 상관없다고 하네요.”

학교 선생님과 아버지 사이에 연락이 오갔다.

정보가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시설 직원이 대신 작성해서 제출하면 학교 선생님과 아버지의 관계를 나서서 끊어 버리는 꼴이다. 아버지의 역할을 나서서 거두는 꼴이다. 「2012년 3월 13일 일지, 백성철. 발췌·편집」

팩스가 고장 나서 몇 번을 보내도 못 받았다는데, 끈질기게 끝내 보냈습니다. 설문지를 구실로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이 관계하게 도왔습니다. 백성철 선생은 학교 선생님과 아버지의 관계, 아버지의 역할을 살피고 살리려 했습니다. 자칫 시설 직원이 ‘끊어버리고 거둘까’ 두려워했습니다. 끈질기게 보냈던 이유입니다.

부모형제가 할 일을 부모형제가 하게 돕고 싶습니다. 기쁨 슬픔 환희 비탄 수고 보람, 눈물도 부모형제의 것이게 돕고 싶습니다. 시설 직원이 알고 있고 할 수 있어도 부모형제에게 묻고 부모형제가 하게 합니다. 세상 여느 부모형제처럼.

복지시설에 사는 학생이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받았습니다. 학생을 지원하는 시설 직원이 할 일은?

*월평빌라 최희정, 임우석, 백성철 선생님의 글과 말을 정리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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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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