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을 햇반으로 해결한다. 햇반을 살 때마다 햇반이 아니라 햅반이 맞춤법에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햇쌀이 아니고 햅쌀이 맞듯이 말이다. 그리고 햇밤이니 햇땅콩이라고 식품점에 붙어 있는 것도 혹시 틀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쨌든 햇반에 김치 하나면 너무나 든든하고 그 날 일할 수 있는 힘이 솟는다.

사전을 찾아보고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햇반, 햇밤, 햇땅콩이 맞았다. 쌀은 고어에서 쌍시옷이 아니라 ‘ㅂㅅ’이었다. 그래서 조쌀도 좁쌀이라 발음되었던 것이다. 쌀이란 단어 앞에서만 햅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발견했다고 생각한 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햇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햇이란 말이 그해 처음 생산한 곡식이든, 그냥 그해의 곡식이든 문제가 아니었다.

집에는 전자레인지가 없어 햇반을 사면 편의점에서 데워서 집으로 가져온다. 3분만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정말 맛있는 밥이 된다. 그러나 아침에 편의점에 가기가 귀찮아서 나는 늘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서 편의점을 들린다. 햇반을 먹을 아침이면 식은밥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어느 날 편의점에서 양이 많아 보이는 사각 햇반을 사서 계산을 하러 카운터에 갔더니 이 물건은 원 플러스 원이라고 하면서 하나 더 가져오라고 했다. 그래서 햇반이 진열된 자리로 가서 사각 햇반을 찾았더니 내가 집은 햇반이 마지막으로 그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점원에게 하나 더 준다더니 물건이 있어야 가져가지, 없는데 어떡하냐고 물었다. 한참 고민을 하는 표정을 짓더니 나중에 가져갈 수 있도록 영수증에 표시를 해 주겠다고 했다. 영수증에 ‘사각햇반 미수령 1개’라고 쓰고는 도장까지 찍어 주었다. 신뢰가 갔다.

다음날 저녁 오늘은 무료로 햇반을 받겠다는 기쁨에 웃음을 띠고 가게로 갔으나 햇반이 있어야 할 자리는 다른 햇반으로 채워져 있었다. 둥근 햇반만 가득했다. 점원에게 영수증을 보이며 사각햇반을 가져가야 하는데 물건이 없다고 하자, 동일한 제품이라야 한다며 원 플러스 원이니 다시 오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세 번이나 사각 햇반을 받으러 편의점을 들렀으나 그 가게에서는 다시는 사각 햇반을 볼 수가 없었다. 할인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앞으로 더 많이 팔기 위해 할인해 주는 경우도 있고, 남은 것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할인해 주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는 후자였는데, 원 플러스 원이라는 말을 물건이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실수로 말하는 바람에 점원은 나를 만날 때마다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점원이 무슨 죄인가 싶어 나는 사각 햇반을 포기하고 영수증을 휴지통에 버렸다. 더 이상 요구는 점원을 고문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기차를 자주 탄다. 기차표는 코레일 앱을 이용한다. 기차표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역에 나가는 번거로움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코레일 앱에서는 장애인 할인이 안 되는 줄 알고 일단 티켓을 구입한 다음, 기차를 타기 전에 발매창구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 장애인 할인을 요청했다.

판매원은 왜 앱에서 할인을 하지 않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코레일 앱에서 출발지를 정하고, 도착지를 정하면 몇 명인지를 정한다. 혼자 가니 기본값으로 나와 있는 ‘1명’을 건너뛰고 나면 할인을 선택한다.

그러면 장애인 동반이나 국가유공자 등이 나온다. 그러나 메뉴판에 장애인은 없다. 좌석에서 휠체어를 선택하면 할인이 되느냐 실험을 해 보았지만 좌석만 휠체어좌석이었다.

장애인 동반자도 음영처리되어 선택이 되지 않는다. 앱에 문제가 있다고 판매원에게 말하자 1명을 선택할 때에 기본값으로 있는 ‘1명’을 그냥 넘어가지 말고 클릭을 하면 장애인이 나오니 그것을 선택하고 기본으로 되어 있는 ‘1인’은 0으로 삭제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장애인도 사람이고 1명은 같은데, 비장애인 1인이 있고, 장애인 1인이 따로 있는 것이 이상했다. 내가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1인을 선택한 다음 할인에서 장애인을 선택하게 하여 할인을 적용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별도의 1인으로 취급하는 것이 인권적으로 보면 차별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할인이 가능은 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판매원이 고마웠다.

나는 이번 달에 지방에 갈 여러 일들을 준비하기 위해 코레일 앱을 이용하여 한꺼번에 십여 장의 티켓을 예매했다. 그리고 장애학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핸드폰에서 기차표를 확인해 보고 요금할인이 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다른 인터넷 기차표를 확인해 보니 다른 표들은 모두 할인이 적용되어 있었다.

내가 한 번에 여러 표를 구입하면서 실수로 광주행만 할인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할인을 눌렀으나 프로그램 오류로 할인이 적용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구입한 표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은 잘못은 내게 있었다. 프로그램 오류는 회사가 손해면 빨리 수정하나 고객이 불편하거나 불리한 오류라면 굳이 고치지 않는다.

기차 안에서 역무원을 찾았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 같으면 잠을 청했을 것인데, 정신을 차리고 지나가는 역무원이 있는지 살폈으나 지나가는 여행객들 하나하나 눈에 힘을 주고 아래위로 훑어보았으나 제복을 입은 역무원은 없었다.

1호차부터 16호차까지 역무원을 찾아 다녔으나 도대체 역무원은 찾을 수가 없었다. 광명, 오승, 공주, 익산, 정읍 등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승객을 안내하기 위해 기차에서 내려 서 있는 역무원이 혹시 있는지 찾기 위해 나는 기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렸으나 평소에 그렇게 출입문 앞에서 안내하던 역무원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파업 때문인지 마치 무인기차 같은 생각이 들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 나는 티켓을 파는 창구로 달려갔다. 핸드폰 코레일 앱을 켜서 방금 내린 표를 보이며 장애인 할인을 받지 못했으니 지금 할인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할인을 받아야 한다'며 지금은 할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기차 내에서라도 역무원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니 내 잘못이란다. 나는 눈에 보여야 역무원을 찾지 않느냐며 시각장애인 복지카드를 들이밀었다.

기차를 탄 사실이 증명되고 내가 장애인인 것이 확인 가능한데, 왜 할인이 안 되느냐고 물었다. 할인 규정을 정한 이상 그것은 고객의 권리이고, 잘못된 계산은 시간과 무관하게 시정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잘못 했다고 하여 편의점을 나선 다음에는 시정을 해 주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이니 말이다.

나는 덤으로 받지 못한 햇반이 떠올랐다. 요즘 참으로 내 권리를 찾지 못한 것 같았다. 편의점 주인이 고의적으로 떨이를 위해 원 플러스 원을 했지만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점원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티켓은 달랐다. 먼저 금액이 적지 않은 데다가 코레일이 얻지 않아야 할 이득을 취하고도 돌려주지 않은 것이니 부당이득이라 생각되었다.

내 실수인지 프로그램 오류인지 확인은 할 수가 없었다. 내 실수라 하더라도 잘못을 발견한 이상 돌려주는 것이 맞다. 확인 가능하고, 권리였기 때문이다. 표를 구입하고 탑승을 하지 않았을 경우 시간이 지나 이용할 기회를 놓쳤다면 환급이 되지 않는 것은 고객이 스스로 포기한 것이지만 오류로 인한 잘못된 계산을 시간이 지났다고 코레일이 그냥 먹는 것은 부당했다.

만약 계산이 잘못되어 내가 이득을 보았다면 코레일은 시간이 지났다고 포기를 했을까? 피 같은 내 돈을 먹은 코레일이 미웠다. 스마트폰 통신사들이 계약 기간이 지나면 마음대로 사용료를 올려 폭탄청구서를 날리는 것이나, 보험사들이 슬쩍 동의 없이 추가상품을 끼어넣어 고객의 통장에서 자동이체하여 갈취하고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것과 코레일이 무엇이 다른가 싶었다.

장애인 할인은 장애인이라서 덤으로 준 원 플러스 원이 아니다. 스스로가 사회에 규정을 발표하면서 계약으로 이루어진 장애인의 권리인 것이다. 앱도 장애인 할인은 숨겨져 찾기 어렵고, 시간이 지났다고 부당하게 얻은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니 시간이 지나면 가지지 않아야 할 돈을 가진 것이 정당해지는 것인가?

계속 따지면 영업방해로 몰려 험한 꼴을 볼 것 같아 나는 약한 모습으로 뒤돌아서야 했다. 햇반이 아니라 햅반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이 또한 나의 왜곡된 사고인지 반성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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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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