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가명)이가 ‘학교폭력 피해자’이니 시설 직원이 학교에 다녀가기 바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모님 대신해서 시설 직원이 대책 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했습니다.

신영이는 장애가 있는 학생만 모인 학급에서 공부합니다. 미술·체육·음악 수업과 가끔 있는 학급 활동은 또래 친구들이 있는 통합반에서 합니다. 중학교 진학하고 한두 달, 통합반 친구들과 잘 지냈던 터라 이번 일이 갑작스러웠습니다.

부모님 대신해서 시설 직원이 참석해 달라 했지만, 부모님에게 꼭 함께 가자고 부탁했습니다. 학교 앞에서 신영이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지적장애인이고, 어머니는 외국인입니다. 아버지 표정은 무덤덤했고, 어머니 옷은 화사했습니다.

담임교사의 안내를 받아 상담실로 갔습니다. 우리가 들어서자 가해 학생 부모님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자리가 좁아 우리는 의자에 앉았고, 가해 학생 부모님들은 방바닥 같은 곳에 앉았는데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가슴이 떨려서 눈을 감았습니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라는 말이 오갔습니다. 일은 이미 커져 있었습니다.

통합반 담임교사가 이번 일을 설명했습니다. 학기 초, 반장과 몇몇 학생에게 지적장애가 있는 신영이가 통합반에서도 잘 지내도록 도와주라고 부탁했답니다. 반장과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신영이를 도왔고, 통합반과 도움반 오가는 길을 동행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아이들과 신영이는 장난을 주고받을 만큼 친해졌습니다. 친하다며 주고받은 장난이 다른 사람 눈에 놀림과 학대로 보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날은 한 친구가 달려가는 신영이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습니다. 무슨 장난 끝에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신영이는 넘어졌고, 학교폭력이 되었습니다.

신영이가 넘어진 날, 신영이가 맞았다는 날, 시설 직원이 신영이 목욕을 도와주어서 몸에 난 상처를 기억했습니다. 손톱 같은 것에 긁힌 자국이 목에 있었는데, 그게 전부였습니다. 학교 소식 듣고 다시 살폈을 때도 멍 자국이나 다른 상처는 없었습니다.

내내 고개 숙이고 있던 어머니 한 분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식 잘못 가르친 부모 죄가 크고, 어젯밤 아이를 크게 혼냈으며, 앞으로 더 잘 도와주라고 타일렀다며 아버지 한 분이 용서를 구했습니다.

신영이 부모님이 답할 차례에 아버지는 할 말이 없다 했고,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설의 생각도 듣고 싶어 했습니다.

“통합반 학생들에게 신영이를 더 잘 소개하고 부탁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번 일로 친구들과 신영이가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통합반에 가는 기회가 줄거나 친구들에게 소외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영이 친구들이 받을 상처가 염려됩니다.”

가해니 피해니 할 일이 아닌데, 친구들 사이에, 중학생 소녀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싶었습니다. 잘못이라면 어른과 사회에 있겠죠.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 함부로 ‘가해-피해’ 하며 심판대에 세우는지, 가혹합니다.

장애 있는 아이가 학교 잘 다니도록 가정과 학교, 사회가 더 애를 써야하지 않겠는가. 수고와 염려 때문에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공부한다면, 슬픕니다. 비단 학교만 그런가. 수고와 염려 때문에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산다면, 애통합니다.

신영이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번 일을 기회로 더욱 돈독해지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상의해서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신영이 부모님 속내는 듣지 못한 채 상담실을 나왔습니다. 부모님은 교무실에 잠깐 들렀다가 집으로 갔습니다. 운동장을 지날 때, 아버지는 긴 침묵을 깨고 나지막이 한마디 했습니다.

“그 아이들도 마음이 안 편할 기라. 그 아이들이 걱정이지.”

부모님 배웅하고 교무실로 다시 왔습니다. 교육청에서 나온 장학사를 만났습니다. 학교폭력 신고를 받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사건이 되었습니다.

담임교사는 상황을 설명했고, 시설 직원은 뜻을 전했습니다. 통합반 수업이 줄어들지 않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통합반 수업이 줄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자주 만나고 어울리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이 잘 어울리게 교육청, 학교, 시설에서 더 애를 써야지, 사고 예방한다며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일은 없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혜림(가명)이가 신영이를 집에 초대했습니다. 상담실 바닥에 무릎 꿇었던 혜림이 어머니를 그때 다시 만났습니다. 신영이가 혜림이네서 하룻밤 자고 왔습니다.

그해 신영이 생일파티를 혜림이 어머니 피자가게에서 했습니다.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들이 다 모였습니다. 혜림이 어머니가 피자를 내오고, 시설 직원은 신영이와 준비한 샐러드를 대접했습니다.

“신영아, 이거 맛있어. 자~아.”

“신영아, 이건 슈프림피자야. 이번에는 이거 먹어 볼래?”

“신영이는 날씬한데 완전 많이 먹어.”

아이들은 신영이를 잘 챙겼습니다. 특히 맞은편에 앉은 주연(가명)이가 신영이 입가를 닦으며 음식 흘리는 것을 봐 주었습니다. 자연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 지내는지 보였습니다.

여중생 여덟 명이 피자 세 판을 순식간에 비웠고, 혜림이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내왔습니다. 촛불을 켜고, 축하 노래를 부르고, 불을 끄고, 신영이 얼굴이 환했습니다.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을 하나씩 뜯을 때마다 여덟이 같이 ‘하하 호호’ 웃었습니다. 소녀들이었습니다.

아이 한 명이 학교 다니는 데 온 세상이 필요합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같습니다. 장애가 있으니 더 많은 관심과 수고가 필요할 따름입니다. 장애가 있다고 분리, 격리할 일이 아닙니다. 사고 예방한다며 갈라놓을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 2012년에 신영이 지원한 월평빌라 김광희 선생님의 일지와 그때 함께했던 기억과 기록을 살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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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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