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 빈집이 많습니다. 부모님 댁으로 고향으로 명절 쇠러 갑니다. 멀리 함양, 고성, 진해, 창원, 부산, 가까이 거창읍, 가조면, 북상면, 남상면. 일주일 전, 이삼 일 전, 당일 출발합니다. 당일, 1박 2일, 연휴 사흘, 일주일 있다가 옵니다. 버스 타고 가고, 부모형제 모셔 가고, 직원이 모셔다 드리기도 합니다.

고속도로 어느 나들목 지나는 부모님 차 안에, 발 디딜 틈 없는 대합실 어느 의자에, 밀려오고 밀려가는 플랫폼 위에… 삼천만 귀성객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어디쯤 가고 있겠죠.

가야죠. 시설에 살더라도 명절에는 부모형제 친구 만나러 가야죠. 언제 보겠습니까. 시설에 갔다더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없고 묻지도 않는, 잊히는 존재가 되는 게 두렵습니다.

1

동네 어귀에 귀옥(가명) 씨 부모님이 마중 나왔다.

“아빠.”

“우리 귀옥이, 집에 온다고 선물 사고, 바빴네.”

서른 앞둔 아가씨는 아직도 ‘아빠’라 부르고, 일흔 넘은 아버지는 아직도 ‘우리 딸’ 하며 맞는다. 어머니도 딸을 반겼다.

“어제 두부 만들고, 지금 비지 띄우는 중인데 좀 들어가요.”

“네, 커피 한잔 주세요.”

몇 년 노력해서 부모님 댁까지 버스 타고 간다. 이번 명절에 버스로 오려다 인사도 드릴 겸 직원 자가용으로 왔다.

“두부 한 접시 잡사야지. 조금만 있어요.”

어머니가 직접 만든 두부를 내 왔다. 농사지은 콩을 불리고 갈고 주무르고 끓이고 젓고, 하얀 면보에 걸러내 빚은 하얀 두부. 그새 양념장도 만들었다. 귀옥 씨와 마주 앉아 먹었다.

“어머니, 손맛이 좋으세요. 양념장에 찍어 먹으니 정말 맛있어요.”

“한 모 싸 놓았으니 떡국 끓일 때 넣어 먹어요.”

어느 명절에는 월평빌라에 떡을 보냈다.

“선생님, 설이라고 우리 떡 하면서 월평빌라 것도 했어요. 보낼게요. 사람이 많아서 많이 보내야죠?”

“아버님, 딸 먹을 만큼만 보내셔도 됩니다.”

“아니, 내가 택배로 보냈어요.”

“아, 벌써 보내셨어요?”

“네. 보냈어요.”

“고맙습니다.”

“우리 귀옥이는 설에 오죠?”

“네. 그럼요. 간다고 했어요.”

“그때 오면 콩비지도 줄게요. 여기서 두부를 만들어서 맛있어요.”

풍성하다. 두부 한 모 떡 한 되 나누는 부모님 인정에 풍성한 명절을 맞는다. (김귀옥 씨 2015년 설과 추석, 임경주 선생님 일지에서 발췌․편집)

2

“경아(가명) 씨, 아침에 청소하고 샤워해요. 오후에 부모님 오신다니 준비하고 기다려요.”

침대에 누운 경아 씨에게 혼잣말이 아니기 바라며 한 마디 건넸다.

스물일곱 꽃 필 때 사고로 누웠다.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몇 해 뒤 월평빌라에 살게 되었다. <<잠수복과 나비>>를 쓴 ‘장도미니크 보비’처럼 움직일 수 있는 건 두 눈꺼풀뿐이다. 장도미니크 보미는 눈꺼풀을 움직여 책을 썼지만, 경아 씨는 말을 알아듣는지조차 모른다.

종일 누워 있으니 수시로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하고, 가래가 생기지 않게 자주 침을 걷어내야 한다. 미숫가루 같은 것을 위관으로 먹고, 목욕은 남의 손을 빌린다. 형편이 이러니 부모님 댁에 가더라도 당일 돌아왔다.

이번 설은 다르다. 여동생이 간호사로 병원에 취직했다. 마침 경아 씨가 다니는 병원이다. 취직하면서 집을 얻었고, 부모님 댁에서 가깝다. 여동생이 있어 이번 설은 편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 댁에 간다. 그러니 오늘은 귀성 기분을 내도된다.

“경아 씨가 주무셔도 청소할 거예요. 오늘은, 그래도 청소할게요. 부모님 오시니 깔끔하게 해서 맞아야죠. 창문 좀 열게요.”

경아 씨가 먹는 주스로 부모님을 대접했다. 부모님에게 맛보이고 싶었다. 딸이 주스를 마실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어머니, 경아 씨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제 짐작으로 샀지만, 그래도 경아 씨가 준비한 거예요.”

오랜만에 부모님 댁 가는데, 또 명절이니까, 명절 선물을 준비했다. 경아 씨에게 선물 산다고 설명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직원이 짐작하고 골랐다. 경아 씨 용돈으로 쌌고, 경아 씨가 준비한 선물이라고 여겼다. 경아 씨 입장 헤아려 편지도 썼다.

“경아야, 고맙다.”

선물 보고 편지 읽던 어머니가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경아 씨가 딸 노릇하려고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휠체어를 밀고 집을 나섰다. 이웃에게 인사하고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배웅하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섰다.

“경아야, 집에 가자.”

차 안을 정리하던 아버지가, 잠든 아이를 제자리에 누일 때처럼 번쩍 안아 태웠다. 아이는 아가씨가 되었고 아버지는 늙어서, 힘에 부칠 법도 한데. (경아 씨 2014년 설, 최희정 선생님일지 발췌․편집)

그 후로 몇 번 집에 갔습니다. 어머니가 바깥일을 하면서부터 부모님 댁 가는 발길이 끊겼습니다. 가족들이 경아 씨 집에 왔습니다.

어느 추석, 어머니가 오기로 했는데 못 왔습니다. 어머니는, 답 없는 딸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 했습니다. 경아 씨는 많이 속상했는지 열이 나고 가래가 끓어서 입원했습니다. 어머니 속도 많이 탔겠죠. 결국 어머니가 왔습니다. 딸이 불러서 온 겁니다. 어머니 온다 하니 열 내려서 바로 퇴원했습니다.

명절에는 부모님 댁에 가야죠. 못 가면 온몸으로 부릅니다. (경아 씨 2015년 추석, 김수경 선생님 일지 발췌․편집)

3

토요일 저녁, 어머니는 딸이 보고 싶다며 불쑥 찾아왔습니다. 딸은 어머니와 통했는지 어느 때보다 방긋 웃으며 맞았습니다. 어린 딸을 시설에 보내고 가정을 책임지던 어머니는, 보고 싶을 때 불쑥 찾아올 수 있는 집 가까이에 딸이 왔다며 기뻐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딸은 저산소증으로 응급실에 갔고, 어머니 품에서 마지막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가족들이 원망할 법도 한데, 그때도 그 후로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분 기일에 직원들이 어머니와 함께 산소에 가고, 어머니와 직원들은 아직도 가끔 만나서 식사합니다.

어머니는 명절마다, 딸이 살았고 딸을 보냈던 월평빌라를 찾습니다. 매번 쌀 한 포대 가져옵니다. 벌써 4년, 여덟 번 다녀갔습니다. 어느 해는 아들과 같이 왔고, 이듬해는 며느리 될 사람을 데려 왔습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는데, 벌써 손자 둘을 봤다며 기뻐했습니다. 올해는 손자와 함께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명절인데 당연히 가야지 하며 들른다 했습니다. 어머니 얼굴 뵈면 가슴이 먹먹할 겁니다. 명절마다 찾아오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명절마다 찾아오는 그분의 어머니, 명절마다 그분을 기억합니다.)

4

입주 때, 명절은 꼭 가족과 함께하기를 부탁합니다. 하루도 좋고 한 시간도 좋으니 꼭 함께하기를 약속받습니다. 오가는 차편이 마땅치 않으면 직원이 모셔 오갈 테니 염려 마시라고 합니다.

가족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명절이라야 일가친척을 겨우 만납니다. 일 년에 한두 번요. 명절에 못 만나면 가족들의 기억에서 차츰 잊힐 겁니다. 첫 해는 ‘아무개가 월평빌라에 사는구나. 잘 지내지?’ 안부 묻는데, 이삼 년 지나면 인사에서 빠지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두렵습니다. 시설에 산다는 이유로 잊히는 걸 두려워합니다.

명절은 가족과 함께하고 고향에 다녀오기 좋은 구실입니다. 가족과 이웃이 순조롭게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얼마나 좋은 구실입니까? 이를 적극 살립니다.

가족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필요하면 월평빌라에서 거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설 직원이 모시고 가고 모셔 왔습니다. 이듬해에는 부모형제가 모시러 왔습니다. 첫해 한나절 다녀온 분이 이듬해에는 하루 묵었습니다. 일주일씩 묵고 오는 분도 있습니다. 월평빌라 딸 집에서 명절을 지내는 분도 있습니다.

시설 편하자고 입주자 보낸다며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명절 쇠도록 지원하는 모습 보면 풀립니다. 세 시간이든 몇 시간이든 명절 전후로 모셔 오가는데 어찌 직원 편하자고 그런다 하겠습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뜻을 알면 가족이 먼저 나섭니다.

가족 있는 분은 가족에게, 가족 없는 분은 친척 집이나 들를 만한 곳에 다녀옵니다. 명절 선물 준비하고 조카 용돈 챙겨서 갑니다. 아들 노릇 고모 노릇 하기 바랍니다.

이번 명절에도 빈집이 많습니다.

* 지난 명절을 돌아보며 기록을 살피고 동료에게 물어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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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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