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중증장애인 사회복귀프로그램 ‘일상홈’의 해외연구를 위하여 16명의 단원이 6월 26일부터 7월 4일까지 8박 9일간 스웨덴 스톡홀롬의 척수장애와 관련된 관계기관을 방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10회에 나눠 연재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당사자주의에 대한 가치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특히 재활의료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영역에 장애인당사자들이 기웃거리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도장애인 척수장애의 재활과정에 동료(선배)장애인에 대한 믿음과 추종은 의사들보다 훨씬 강하다. 이는 척수라는 천형과도 같은 현실을 이해해주는 이는 역시 동료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일종의 끈끈한 동병상련의 동질감이 있다.

전문가들은 척수장애인을 머리로는 잘 알지는 몰라도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가슴으로는 알 수가 없다. 움직이지 않는 팔 다리와 소변대변, 통증, 성기능문제, 과반사 등의 신체적인 고통과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장애인의 신분으로의 전락을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을까?

필자도 척수장애인 선배와 동료들의 말 한마디에 힘과 용기를 얻고 그들을 통해 척수로서의 삶에 대한 지혜를 얻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재활병원에 정보메신저(전에는 동료상담가라고 하였음)를 파견하고 초기 손상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척수장애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척수손상을 치료하는 재활병원에는 당연히 척수장애인 사회복지사나 심리상담사가 있어 동료로서의 라포 형성을 하고 준비된 사회복귀에 대한 조언을 해주어야 하는데 전국의 재활병원에도 척수장애인을 직원으로 고용한 병원이 없는 슬픈 현실이다.

외국의 재활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당사자들로 구성된 코치들의 역할에 매우 부러웠다. 이곳 스웨덴은 정말 많은 척수장애인 재활코치(Rehabilitation Instructor, RI)가 재활센터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너무 부럽고 한편으로는 한국의 현실에 화도 났다.

160명의 스텝 중에 20명의 휠체어 재활코치가 척수장애인의 재활을 정성껏 돕고 있었다. 카로린스카 재활병원의 의사도 재활코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고, 재활센터의 설립자도 본인이 당사자로써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전 세계의 곳곳에서 다 인지하고 있는데 왜 한국은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할까에 의구심이 들뿐이다.

척수재활센터의 설립자인 클래스박사(Dr. Claes)(좌측)과 휠체어스쿨의 개발자인 에이크(Ake)씨(우측). ⓒ이찬우

재활센터의 설립자인 클래스 박사(Dr. Claes)는 마취과의사로써 다이빙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된 이후에 전 세계 50개 여개의 재활병원을 직접 방문한 결과, 척수장애인의 재활은 사회 복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진실을 기반으로 지금의 척수재활센터를 기초하신 분이다.

병원생활을 오래한 만큼 사회복귀에 시간이 걸린다는 철학으로 가능한 빨리 강도 있는 훈련을 통해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그 중심에 당사자로 구성된 재활코치가 있다.

물론 이 척수재활센터에는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의료에 관련된 전문 인력도 있다. 그러나 재활코치와 긴밀한 협력을 통하여 오직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를 목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20명의 척수장애인의 직원은 동료들에게 마음으로 척수를 이해하도록 인식개선을 하는 역할도 동시에 할 것은 자명하다.

고등학교 체육선생이면서 휠체어스쿨의 개발자인 에이크(Ake)씨는 40년의 경력만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척수장애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4가지를 ①휠체어활용 ②트랜스퍼 ③소-대변 ④일상생활수행능력(ADL)이라하고 특히 휠체어 스킬에 대해서 강조를 하였다.

휠체어와 떼어낼래야 뗄 수 없는 필연이라면 휠체어를 내 몸같이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은 힘으로 최대의 에너지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몸에 맞는 휠체어, 가벼운 휠체어 그리고 휠체어를 다루는 요령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총 12번의 커리큘럼으로 준비된 휠체어스쿨은 이론교육부터 일상생활까지 휠체어로 해야 하는 모든 것을 세세하게 가르쳐준다. 경사로, 다양한 높이의 턱에서 훈련과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연습을 하고 슬라럼이라는 장애물경기를 활용하여 훈련과 운동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최근 한국의 많은 척수장애인들이 어깨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는 수동휠체어의 수가(48만원)의 문제점과 체계적인 교육이 없고 ‘어깨 클리닉’같은 의료지원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도로의 불편한 상황도 일조를 한다.

중요한 것은 어깨를 보호해 주어야한다는 것을 당사자도 의료전문가도 잘 인지를 못하고 있고 사후약방문보다는 사전에 예방을 하는 선제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일상생활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세바스찬씨(좌측)와 체육관의 코치인 아날리씨(우측). ⓒ이찬우

88서울장애인올림픽에 스웨덴 휠체어농구대표로 한국에 와 본적이 있다는 아날리씨는 체육관의 코치로 활약을 하고 있다. 늘 운동복차림인 그녀에게는 강인함과 자신감이 풍겨온다.

체육관에는 매일 오전 11시에 전문강사와 함께 모든 참가자와 가족, 스텝들이 에어로빅을 즐긴다. 헬스클럽에서는 개인에 맞는 처방으로 생활 체력을 강화시키는 훈련을 하고 시간에 맞추어서 휠체어 농구, 휠체어 럭비, 탁구, 실내조정 등 다양한 체육활동을 하는데 아날리씨가 그 중심에 있다.

일상생활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세바스찬씨는 얼굴에서부터 바이킹의 후예 같은 강인함이 있다. 스노우 보딩 사고로 하반신마비가 되었지만 후배 척수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센터는 물론 가정까지도 방문하여 밀착형으로 지도를 하고 있다.

여동생이 한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자랑하는 그의 얼굴에서 장애의 그늘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겨울이면 스노우 보딩을 즐긴다는 그는 천상 스포츠맨이었다.

척수재단과 척수재활센터의 기획자 및 관리자인 에리카(Erica)씨(좌측)와 가족지원을 전담하고 있는 재활코치인 카롤리나(Karolina)씨(우측). ⓒ이찬우

그리고 몇 번 소개한 에리카(Erica)씨는 승마사고 이후 2002년부터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으며 척수재단과 척수재활센터의 브레인으로 기획과 관리를 하는 실무자이다. 가녀린 체구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넘치고 매일 새로운 의상으로 코디를 하는 패셔니스타이다.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 그녀는 척수재활센터의 마스코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척수장애와 관련되어 외부와 다양한 연구를 지휘하고 있고 유럽 내에서 열리는 많은 학회와 연구모임에 참여를 한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한번 초청하고 싶은 분이다.

자동차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되어 이곳에서 재활훈련을 받고 이곳의 재활코치가 된 카롤리나(Karolina)씨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가족지원을 전담하고 있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당사자 못지않게 가족도 매우 중요한 재활대상자라고 강조를 하였다.

손상을 당한 당사자 못지않게 가족의 어려움도 적지가 않다. 하지만 가족은 방치한 채 당사자에게만 집중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가족들의 장애수용, 척수장애 바로알기, 처수장애인 가족을 올바르게 지지하는 방법 등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척수장애인과 가족은 상호간에 굉장히 중요한 동반자이며 상호 옹호자가 되어야 함에도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카롤리나씨의 이야기이다. 이를 위해 제도적으로 지원이 가능한 것들도 알려주고 가족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해소를 하도록 다양한 형식으로 가족들의 자조모임도 개최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방문단이 물어보는 질문에 재활코치(RI)를 하려면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라고 답변을 했다. 그런 제도도 없다고 했다. 장애인 당사자이고 그 삶이 해왔던 일들이 증명만 된다면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 동료상담과 관련되어 자격증화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다양한 자격이 오히려 장애인들 가지고 있는 당사자성을 규격화하여 재단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며 좋겠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의 일환이 될 수는 있지만 전문가들을 싫어하면서 전문가화 되어가는 행태는 아이러니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전국적으로 권역별재활병원이 6개가 있고 2개를 더 신축할 예정이다. 국립재활원도 있고 전문적으로 재활병원의 간판을 걸고 있는 병원도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어디에도 당사자 재활코치가 근무하는 곳이 한 곳도 없는 이 슬픈 현실에서 척수장애인들의 재활은 요원하기만 하다.

장애인건강권법의 2018년부터 시행을 위해 정부가 하위 법령과 전달체계 등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지만 실질적으로 당사자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가 아니라 그저 환자 역할만 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의심이 된다. 스웨덴 척수재활센터의 재활코치가 답이 되지 않을까 확신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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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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