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에서 2014년 12월 ‘장애인 거주시설 안전 및 피난 매뉴얼’을 제작하여 각 시설에 배포하였다.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 이용인의 안전 환경조성에 협회가 앞장서고자 책자를 발간했으며, 안전관리 사항과 시설 유형별 피난방식을 제시하였다고 발간사에서 밝혔다.

이 매뉴얼을 대하면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인이 피난취약자들이라는 점에서 이용인을 지원하거나 스스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지원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데, 안전한 환경조성과 유형별 관리를 담고 있다고 결론지어 아쉽다.

피난약자가 이용자이니 환경을 안전하게 하고, 피난시 관리방식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고 당연해 보이나 이용인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관리자의 처치로서 마감되는 것은 ‘관리에만 치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최소한 장애특성을 고려하여 훈련에서 유의사항은 무엇이고, 내용은 무엇인지 제시해야 하고, 이용인과 종사자의 열할 분담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유감이다.

매뉴얼 내용 중 안전환경 구성에서 찬색은 고혈압 환자에게 적절하고, 붉은색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환경에 적절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가 독일 포로들을 풀어주면서 비밀유지를 위하여 붉은색 방에 두 달간 가두어 우울증 환자가 되게 하여 풀어주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점에서 붉은색은 오히려 우을증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미크 로스프 색면회화 이론에 의하면, 우울증에는 초록색을 사용하여 심리적 불안상태를 해소한다고 하였다.

차의과대 이지아 석사논문(우울증 환자의 색 선호도와 색감성에 관한 연구)에서는 붉은색은 우을증 치료에 도움이 되어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만 지나친 붉은색은 공격성을 유발한다고 하였다.

시설에서는 장애인의 만성질환 등을 구분하여 방 배치를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획일적으로 색과 질환을 연결 짓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마크 로스프가 가정주부의 우울증의 80%가 벽지색에 기인한다는 말은 색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는 밝은색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붉은색이 치료된다는 말은 아니다. 혹자는 초록보다 청색이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는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레드’의 작품을 그렸으나, 우울증으로 결국 자살했다.

매뉴얼을 보면 각 시설물은 안전을 고려하고는 있으나, 편의증진법상의 조건조차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거나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권고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욕실과 화장실에서 손잡이를 설치하면 비교적 안전하다고 안내하고 있고, 두꺼운 타올을 깔면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다고만 안내하고 있다.

손잡이는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매뉴얼에 상세 도면을 제시해 주어야 하며, 미끄럽지 않은 재질로 바닥을 하도록 안내해야 맞다.

사무실에 위험한 연필 등을 이용인이 만질 수 없도록 하라고 안내했는데, 주방에서는 이용인의 이용을 고려하여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주방으로 하라고 하였다. 연필도 위험하여 이용자가 만지지 못하게 하면서 주방은 이용인이 직접 칼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주방은 방화시설을 더 강화하라고 하고 있는데, 일반 공간보다 강화하라고 비교하는 표현보다 소화기, 살수기, 경보기를 필수적으로 갖추도록 하여 결과적으로 강화되도록 안내해야 맞다.

사무는 이용자에게 접근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분리하도록 하고, 주방은 이용자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어 이용자에게 노역을 시키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매뉴얼은 시설장과 소방관리 책임자, 근무자, 이용자별로 피난에 대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장에서는 소방점검이나 피난계획 등에서 피난유도요원, 방송인, 안전요원 등이 근무자로 막연하게 표현되어 있어 ‘역할분담’이 명확하지 않아 사고시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있다.

매뉴얼은 장애유형별 피난대책을 별도의 장으로 마련하여 장애유형별 피난대책을 잘 마련한 것처럼 보이나 반복과 중복된 내용을 책자의 절반을 채우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창문으로 소리를 지르라고 하기도 하고, 피난지시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피난하라고도 하고 있다.

휠체어장애인은 침대 옆에 휠체어를 두어서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장애 유형과 같은 내용이 반복될 뿐 장애 유형이 별로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 설명 그림에 장애 유형별로 주인공이 변할 뿐이다.

청각장애인은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인데, 초기 발견자가 방송을 통해 안내하도록 하고 있다. 다른 긴급상황 전파 방법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점멸등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없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에게도 피난 시 지시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피난하라고 하고 있다.

시각장애의 경우 시각장애의 정의만 다를 뿐, 피난 절차 및 유의사항, 초기대처 방법, 피난 준비, 피난 도중, 피난 종료의 단계적 내용이 다른 장애 유형과 거의 동일하고, 다만, 그림에서만 시각장애인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지적장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적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여 무언가 다른 내용이 있을 것인데, 예를 들어 피난 도중의 내용을 보면, 절대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마라, 갇혔다면 창문을 통해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해라, 소방기관의 지시에 따르도록 하라, 문손잡이가 뜨거운면 절대로 문을 열지 마라, 이물질이 떨어지는 것에 주의하라, 피난지시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파난하라는 내용으로 전혀 다른 것이 없다.

비상상황에 대한 진정이나 인지에 대한 도움, 쉬운 말로 안내하기, 비상통로에 대하여 그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수단을 확보하는 것 등에 대하여도 언급이 없다.

중증장애인 편에서도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 없으며, 그림에서 피난 승강기가 그려진 것이 다른 점이다.

부록에는 재난상황보고서, 소방안전관리규정, 소방훈련 및 시나리오 등을 담고 있어 각 시설에서 필요한 서식을 만들고 피난 훈련을 준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매뉴얼은 각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각자 시설에 맞는 매뉴얼을 개발하고 이에 맞추어 피난시설을 준비하고, 피난 훈련을 하며, 인력을 배치하고, 생명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각 시설이 이러한 것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각 시설이 이러한 매뉴얼을 만들지 못하므로 이 매뉴얼로 대체하도록 하여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피난대책에 대하여 자료 요청을 하면 이 자료를 내어놓는 것으로 오히려 대책강구를 방해할 수도 있다.

협회로서 시설의 업무를 덜어주고자 작성한 것인지, 시설의 관리자들에게 하나의 자료를 제공하여 피난대책을 강구하도록 안내하는 자료인지, 시설에서 갖추어야 하는 서식들을 대신 작성하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것인지 매뉴얼의 성격이 불분명하다. 이는 내용의 부실에서 기인한다.

만약 이용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면 장애 유형별 안전대책은 훨씬 보강되어야 하며, 기초자료라면 편의증진법 등의 안전대책에 대한 설비를 갖추어야 함이 상세히 안내되고 강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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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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