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부터 2회에 걸쳐 유아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단연코 가장 뜨거운 이슈인 우리 아이 한글은 언제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경험한 선배 맘으로서의 생생한 경험을 중심으로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만 3세 이상의 유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 사이에서 단연 뜨거운 감자와 같은 이슈 중의 하나는, 아이에게 한글을 언제쯤 가르쳐 주는 것이 좋은지에 관한 고민일 것이다. 나 역시 생각보다 이른 시기인 이응이 만 36개월쯤 아주 짧고 굵게 이 고민을 해치워 버렸더랬다.

이응이가 막 돌이 지나서부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기에 워낙 함께 책을 많이 읽어 왔었는데, 만 3세가 될 무렵부터는 글자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주위를 둘러 보아도 두 돌만 되어도 한글나라니 뭐니 하는 방문 학습지를 안 하는 아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을 정도이다 보니 아이도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이 때에 나 역시 그 거대한 주류의 물결에 합류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때가 초보 엄마였던 나에게 다가온 첫 번째 중심잡기 테스트가 아니었나 싶다.

어떤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하는지 잘 알 수 없지만, 글자에 관심을 갖는다는게 한글 배움의 첫걸음이 아닐까? ⓒ은진슬

그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는 전형적인 대단지여서 이응이 연령대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숱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아파트 곳곳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학습지 판촉 부스들도 참 많았다.

같은 연령에 비해 말이 상당히 빨랐던 이응이를 두 돌 즈음부터 유모차에 태워 산책이라도 할라 치면, 아이가 참 똘똘해 보인다, 말이 참 빠르다는 등의 감언이설로 접근하여 아이와 나를 학습지의 늪에 빠뜨리려는 판촉 사원들이 참 많이도 출몰하던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경 속에서도 내가 초보엄마 치고는 나름의 중심을 잡고 잘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나 나름대로의 작지만 분명한 원칙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한글 교육을 고민하면서 세운 원칙으로 인해 주위로부터 굳건히 신념을 지킬 수 있었다. ⓒ은진슬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하고자 하는지를 어렴풋이라도 스스로 알고 요구할 수 있기 전까지는 내가 예단하여 무언가를 먼저 제공하지는 말자.’

이렇듯 나름 굳건한 신념을 지키며 학습지 아줌마들을 가열차게 거절하고, 또 거절하며 지내오던 어느 날, 너무나도 강력한 분에게 걸려 딱 한 번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에게 샘플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아이는 당연히 잘 따라 했고, 평소 나와 책도 많이 읽어서인지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집중을 잘 했다. 특히, 수업을 진행할 때 사용하는 아이들의 눈을 잡아끄는 교구들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당연히 그 판촉 직원은 아이 인지 능력이 남 다른 것 같다느니,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 줘서 아이가 집중을 참 잘 한다느니 하면서 온갖 달콤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이렇게 다니다 보면, 아이가 아직은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때가 안 되었는데도 부모 욕심으로 무리해서 학습지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보지만, 이 아이는 꼭 해야 할 것 같다고 까지 표현하며 내게 온갖 듣기 좋은 말들을 남발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가 집중을 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흥미가 다른 아이들 보다 충만해서도 아니요, 내 아이가 남들보다 인지적으로 빨라서도 아니었다.

그저 격앙된 목소리로 수업 시연을 하는 선생님과 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알록달록 종이 과일 모형들과 미니 블록들 같은 신기한 교구들이 내 아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나와 같은 초보 엄마들과 판촉사원들은 각자 자신들이 보고 싶은 대로 아이의 표현과 행동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교구와 과일 모형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초집중하는 아이의 행동이 엄마에게는 ‘우리 아이가 저렇게 똑똑하고 집중을 잘하네’로, 어쩌다가 그림과 상황을 매칭하여 글자라도 하나 맞히면 ‘어머! 벌써 한글을 아나봐!’ 등등으로 해석될 것이다.

숫자 블록들을 계속 가지고 놀며 수업이 끝났음에도 선생님을 못 가게 하는 아이의 행동이, 판촉 사원에게는 이 아이는 우리 학습지에 적합하고 인지적으로도 준비가 되었다고 해석될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초보 엄마였음에도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을 만큼의 정신 줄은 잡고 있었다.

읽는 것들에 점차 관심이 많아지는 나이, 이응이가 한글을 배우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보일 때까지 기다리고자 한다. ⓒ은진슬

만 36개월도 되지 않은 아이들 중에, 뭔가를 배우는 것에 명확한 의지와 목적성을 가지고 부모나 제 3자에게 명쾌하게 한글이 배우고 싶다든가, 이 학습지가 정말 재미있어서 하고 싶어요. 라고 정확히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저 그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부차적인 자극을 주어 가며 소위 ‘꼬시고’ 있는 것뿐이다. 이런 논리로 나는 그 후로도 몇 달 간 끊임없이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오는 그 판촉직원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이응이가 한글을 배우고 싶다는 의사 표현과 그에 상응할 만한 행동을 보일 때 까지…

Part 2에서 계속 ...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