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ose your battle!

미국 사람들이 잘 하는 말 중에 ‘Choose your battle!’이라는 말이 있다.

육아를 하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특히 더 많이 쓰이는 듯한데, 이 말을 내 나름으로 해석하자면 싸움도 골라가면서 해라 정도?

'Choose your battle!' 겪은 상황을 예로 나름 해석하자면 '싸움도 골라가면서 해라!' 정도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은진슬

내가 약 두 시간 전쯤 겪은 상황을 예로 들어 ‘Choose your battle!’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볼까 한다.

난 요 몇주 엄마바라기가 되어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이응이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파 이모와 머리 좀 식힐 생각으로 이응이를 데리고 집 근처 커피전문점에 가게 되었다.

커피와 아이가 먹을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자리에 돌아왔더니 18개월, 호기심 왕성, 운동능력 왕성한 이응이, 소파에서 신발도 안 신고 내려오겠단다.

이 커피전문점 인테리어가 원목 컨셉트라 거실 마루바닥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이는 신발을 신지 않고 그냥 가도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난 몇 번이나 신발을 신어야 한다고 설득해 보았지만… 아이는 계속 해서 신발을 신지 않고 내려가겠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계속 완강하게 저항하는 아이에게 신고 싶지 않으면 신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는 맨발로 소파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래 니가 이.겼.다!

그 날, 나는 양말만 신고 신났다고 걸어 다니는 18개월 커피전문점 탐험가 이응이 손을 잡고 제법 넓은 카페를 함께 탐험해야만 했다.

아마도, 결혼 전의 나 같으면 지저분해서 안 된다고 내 결벽증적 성향까지 가세하여 아이를 설득하여 끝내 이기려고 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 분명 그랬다.

하지만, 이제 자의식이 폭발하는 18개월 남아의 엄마가 된 나는, 이응이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면서 이렇게 혼잣말 하듯 덧붙였을 뿐이었다. ‘그래, 엄마는 지저분해서 싫지만 양말은 집에 가서 빨면 되고, 니가 양말만 신고 다닌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그냥 신지말자.’ 라고…

그렇다고 양말만 신고 까페를 신나서 돌아다니는 이응이 엄마로서 곁을 따라다니는 내 모습이 영 맘에 걸리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저 엄마는 애 신발도 안신기고 돌아다니게 하고 뭐 하는 건가, 개념이 없는 엄마는 아닌가 하고 생각할까봐서…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내가 말하려는 건 그래도 결국 나는 내 싸움을 선택했다는 거다. 만약 아이가 하려는 행동이 다른 사람이나 공중도덕 및 아이의 안전에 문제가 될 만한 것이었다면, 끝까지 아이와 싸워서 ‘내 뜻’, ‘옳다고 믿는 그것’을 하게 만들었겠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에너지를 들여가며 싸워서 아이의 뜻을 이겨야 할만한 가치도 이유도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거다.

카페에서 혹은 일상에서 우리는 여러 사소한 문제들로 아이와 전쟁아닌 전쟁을 치루고 있다. ⓒ은진슬

일상 속에서 우리 엄마들은 늘 이런 사소한 문제들로 유아기 아이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이응이보다 조금 더 자란 3, 4세 유아들의 경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정말이지 언밸런스하고 언빌리버블한 패션을 하고 가겠다고 하여 우아하고 고상한 엄마의 감각과 취향에 강력한 테러를 가하려고 하거나,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가겠다는 등 어른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해서 엄마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만약, 다섯 살이 된 이응이가 비도 안 오는 화창한 날에 우비와 장화를 신고 유치원 등원길을 나선다면, 게다가 그 곁을 내가 함께 걸어가야 한다면… 나도 뭐 썩 달갑지는 않을것 같다. 다른 사람 시선도 좀 의식될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좀 더 여유 있게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뭐 그런들 어떠랴? 남을 물거나 해치는 것도 아니고,

공중도덕에 반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아니라도 육아에는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들여 해야 할 일들이 얼마든지 차고 넘쳐 흐른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행동들을 강요하느라 우리의 소중한 에너지와 엄마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말자. 아이와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로 싸우느라 엄마의 교양 있고 아름다운 목소리와 분별을 잃지 말자.

이 글은 이응이가 18개월경 될 무렵 작성해두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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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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