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입주 장애인이 취업했다면 시설과 시설 직원의 할 일은 무엇일까요? 취업했으니 종결?

향희(가명) 씨에게 새로운 직장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다니는 옷 가게는 주 5일, 하루 한두 시간 일하고 아침 일찍 마칩니다. 5년 일했습니다. 2012년 3월 16일 첫 출근. 서른셋 나이에 첫 직장입니다. 줄곧 복지시설에서 살았고, 이전 시설의 기록을 참고하여 생애 첫 직장이라고 짐작합니다.

직장 마치고 요가학원에 가는데, 두 곳 다녀오면 집에서 무료하게 지냅니다. 바쁘다면 바쁜 일상이지만, 집에서는 TV 앞에 있거나 집(시설) 안팎을 배외하는 게 고작입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둘 뻔했는데 그때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새 직장이 필요한 이유는 더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5년 일했는데 일의 발전이 별로 없습니다. 청소기 플러그 꽂는 데 3년 걸렸고, 그마저도 지금은 못 합니다. 걸레를 빨고 닦는 실력도 마찬가지입니다. 향희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관심이 많고 발전이 빠른 편입니다. 그런데 청소 실력이나 출퇴근길 익히는 것은 더뎠습니다.

‘청소에 흥미가 없나? 다른 일을 찾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른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요.

수소문하거나 부탁할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단골 옷 가게와 가끔 들르는 꽃집이 전부였습니다. 옷 가게는 무산됐고 꽃집에서는 적극 부탁했습니다. 화분에 물 주는 일이라도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꽃집 사장님이 사정을 듣고 일주일 한 번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2015년 6월 11일, 두 번째 직장 출근. 옷 가게는 직장 꽃집은 아르바이트.

두 번째 직장을 구하며 기대한 것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고, 다른 직업을 경험하고, 바깥 활동이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일을 잘했고 실력도 늘었습니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았습니다. 비록 일주일에 하루, 두세 시간이지만 갈 곳이 늘고 활동이 늘었습니다. 물론 꽃에 물을 주고, 화분을 갈고, 꽃 배달하는 다양한 업무를 맡았고요.

첫 직장과 두 번째 직장의 차이는 ‘업무, 흥미, 직장 동료와의 관계’였습니다.

첫 직장은 문 열기 전에 출근해서 청소합니다. 한두 시간 걸리는데, 향희 씨 기분에 따라 마치는 시간이 다릅니다. 기분이 좋으면 시설 직원이 도울 일이 줄고 일찍 마칩니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반대. 가게 문 열기 전에 끝내야 하는 마감 시간이 있고, 사장님과 마주치는 날이 적습니다.

두 번째 직장은 일주일에 하루 출근해서 한 시간 일합니다. 화분에 물 주기, 화분 옮기기, 화분 배달, 손님 맞이, 호미로 흙 고르기, 화분에서 모종 빼기, 분갈이할 화분에 흙 채우기, 분갈이한 화분에 장식 돌 올리기, 화분에 붙은 스티커 떼기….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모든 업무는 사장님이 제안했습니다. 향희 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잘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도울 일이 적었습니다.

마감 시간이 따로 있지 않고 맡은 일을 다하면 마칩니다. 사장님이 향희 씨의 기분을 살펴서 할 만한 것을 제안하고, 그마저도 안 되겠다 싶은 날은 사장님이 먼저 그만하자고 합니다.

일 마치고 한두 시간, 사장님과 동료와 차 마시며 수다 떨고 놀다 퇴근합니다. 점심 같이 먹는 날도 있고요.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많죠. 꽃집 평상에 앉아 혼자 쉬는 날도 있는데 안색이며 표정이 밝습니다. 주 1일 계약 시간 외에도 사장님이 바쁠 때 부릅니다. 향희 씨가 가고 싶을 때 가서 일 거들고 쉬었다 옵니다.

「향희 씨가 출근길에 준비한 커피를 사장님에게 드렸다. 사장님은 방금 찐 감자를 내왔다.

“향희 씨, 나이가 어떻게 돼요?”

“서른여섯 살입니다.”

대답이 어려운 향희 씨를 대신해 대답했다.

“아 그래? 그럼 내가 다섯 살 많으니깐 언니 하면 되겠네. 이제 언니라고 불러요.”

“예예.”

향희 씨가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대답했다.

“내 조카 이름도 향희인데.”

2015년 6월 5일 일지, 이지영. 발췌 편집」

「꽃집에는 물 주는 일만 있는 게 아니다. 물 주고 화분 옮기고 꽃을 심고, 다양하다. 오늘은 밖에 있는 화분을 화원 안으로 옮겼다. 무겁기도 하고 실내가 복잡해서 잘할 수 있을까 싶다. 사장님도 (시설) 직원도 조금 걱정이 됐다.

걱정도 잠시, 하나 둘 천천히 화분을 옮긴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도 힘들다는 내색 없이 열심이다. 바깥 사장님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살살하라고 했다. 쉬운 일이 아닌데도 한 시간 가량 열심히 옮겼다.

일 마치고 사장님과 점심을 먹었다. 사장님 지인이 찾아와 점심 같이 먹자 했지만 향희 씨와 점심 약속 했다며 사양했다. 일하는 날마다 점심을 같이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 직장 동료와 외식하니 따로 외식할 일이 없다.

2015년 10월 6일 일지, 이지영. 발췌 편집」

두 직장의 차이가 ‘업무, 흥미, 직장 동료와의 관계’라고 했는데, 짐작되죠? 향희 씨를 지원하는 시설 직원은 '차이의 핵심은 직장 동료와의 관계다’ 했습니다. 사장님의 역할이 크다는 겁니다.

사장님이 향희 씨의 기분을 살펴 업무를 지시하고, 업무 중에도 살펴 일의 분량을 정하는 직장에서의 차이는 예정된 거겠죠. 일마다 때마다 사장님이 향희 씨를 살피고, 사장님과의 관계가 좋으니 할 만한 일을 많이 찾았습니다. 그만큼 강점을 많이 발견했고요.

「사장님 주신 돈으로 장화와 앞치마, 모자를 샀다.

“향희 씨, 이제 일만 하면 딱 되겠어요. 장화도 예쁜 거 샀네요.”

장화를 신고 물을 주었다. 물을 다 주고 나니 사장님이 호미를 챙겨 왔다. 흙더미를 호미로 두드려 부드럽게 하고 잡초를 고른다. 화분에 넣을 흙을 장만하는 일이다. 호미를 두드리는 속도가 빠르고 세졌다.

“그러다가 얼굴 맞겠어요.”

사장님의 걱정에 호미의 속도가 줄었다. 잠시 후 다시 빨라졌다.

“향희 씨, 호미 두드리면서 스트레스 풀어요?”

일을 마치니 앞치마에 흙이 가득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한 듯하다. 사장님이 롤케이크와 커피를 내왔다.

“향희 씨, 오늘 일 많이 했네요. 수고했어요.”

2016년 3월 28일 일지, 김민지. 발췌 편집」

「“향희 씨, 표정이 왜 안 좋아? 어디 아파? 무슨 일 있었어?”

“…….”

계속 화난 표정이다. 아픈 것은 아닌 듯.

“오늘 일하기 힘들어요? 나무랑 꽃에 물 줄 거예요?”

“응.”

물을 주는데 팔이 자꾸 처진다. 그 모습을 보던 사장님이 간식 먹고 하자며 불렀다. 향희 씨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일하기 싫은 날인가 보다. 사장님도 눈치챘는지 오늘은 물만 주고 가까운 곳에 산책 다녀오라고 했다.

“일하기 싫은 날도 있는 거야. 향희 씨, 그렇지?”

2016년 4월 6일 일지, 김민지. 발췌 편집」

사장님과 관계를 위해 시설 직원은 무엇을 했을까요?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특별히 한 건 없습니다. 사장님이 먼저 밥 먹자, 커피 마시자, 쉬었다 하자, 놀러 와라, 일 잘한다 했어요.”

향희 씨를 지원한 시설 직원들의 대답이 같습니다.

대답은 그랬지만 향희 씨도 사장님 못지않습니다. 출근길에 사장님과 동료와 마실 커피를 사서 대접하고, 명절에 선물 전하고, 어느 날 밥값은 향희 씨가 내고, 며칠 뒤 생일에 한턱 쏠 계획입니다.

「어제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비가 오면 꽃집은 한가하다. 사장님과 나눠 먹을 빵을 샀다.

“향희 씨, 빵 사 왔어요?”

“네. 이거 먹어.”

“그럼 우리 커피 타서 같이 먹을까요?”

접시와 포크를 가져 왔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일하러 안 와도 돼요.”

“이번 주에는 댄스교실이 휴강이에요. 그래서 꽃집에 자주 오고 싶어 하세요.”

“그래요? 그럼 비 오는 날에는 이렇게 향희 씨랑 커피 마시면 좋겠다.”

마침 사장님 지인이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놀러 왔다. 비 오는 날 평상에 앉아 사장님과 커피 마시니 참 좋다. 하우스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좋고 커피향도 좋다.

2016년 5월 3일 일지, 김민지. 발췌 편집」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쓰고, 발품 팔며 직장 알아보고, 면접 봐서 취직했습니다. 이제 시설 직원은 무엇을 지원해야 할까요? 향희 씨와 꽃집 사장님을 보면서 손에 잡히는 무엇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에는 ‘업무’와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하나 소홀하면 직장생활이 힘듭니다. 시설 입주 장애인의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업무의 깊이를 더하고 동료와 잘 지내는 게 중요합니다.

맡은 ‘업무’를 잘하게 돕습니다. 맡은 업무 가운데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조금씩 발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살피고 살립니다. 출근 준비와 출퇴근도 혼자 하게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직장 동료 가운데 업무를 가르치거나 도울 만한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부탁합니다. 직장 동료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여 함께 일하게 합니다.

시설 직원이 ‘업무’를 가르치거나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시설 직원은 더불어 일하게 하는 것이 본업이니 도울 만한 사람을 찾는 겁니다. ‘업무’를 지원하는 것도 결국은 ‘관계’를 살피고 살리는 거네요.

동료와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죠. 이것은 시설 직원의 일이 분명합니다. 잘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무엇을 했습니까? 직장 동료와 밥 먹고 차 마시며 어울리게 주선했습니다. 출근길에 커피 사서 대접하고 비 오는 날 평상에 앉아 담소 나누었습니다. 회식자리에 함께하고 야유회 가면 함께 가게 주선하면 좋겠습니다.

이에 더해, 직장 동료로서 구실 잘하게 돕습니다. 동료의 생일 결혼 출산 이사 입원 초상 같은 경조사에 축하하고 문안하고 위로합니다. 당사자의 경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일 턱으로 밥 사고, 월급 탔다고 간식 쏘고, 명절 맞아 선물합니다. 사장님과 동료의 칭찬에 적극 감사합니다. 때를 살펴 선물하고 카드 써서 감사하고 축하하게 합니다.

이런 것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고, 그 효과는 매우 큽니다. 사람 구실 하려면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구직을 위해 애썼던 것만큼 취업 후에는 당사자가 맡은 ‘업무’를 잘하고, 직장 동료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직장인으로 ‘구실’ 하게 지원합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직장생활)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하는 것이 시설 사회사업가의 일입니다.

※ 배향희 씨를 지원한 월평빌라 이지영 선생님과 김민지 선생님의 말과 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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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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