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고, 여행시즌이 돌아왔다. 이맘때쯤이면, 산, 계곡, 바다 등으로 더위를 쫓아내기 위해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다. 공항에는 외국으로 피서를 가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정말 여행을 떠나고 싶은 시즌이다. 내 주위에는 이미 여름휴가를 갔다 온 사람들도 있다.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밖에 나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여행을 내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데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여행을 하면 내 영혼이 자유로움을 느끼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지 않을 때는 여행하면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 없기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의지대로 원하는 장소를 갈 수 있고 그러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었다.

직장에 다녔을 때는 잠시 휴가를 해외로 다녀오거나 나만의 수도권 여행 등을 할 때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고, 책을 읽는 등,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가적으로 휴가를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재충전하며 일을 하는 동기를 얻기도 했다.

두 번째는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는 사회적 관계망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든 장애가 있다. 그렇다고 친구 맺는 것을 포기하면 외로워지니 그게 나는 싫다. 오히려 서로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작년에 일본 동경에 있는 한 한국 민박집에서 숙박할 때 한국여행객과 같이 잠자리를 든 적이 있었다. 당시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들이라 많이 반가워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서로 이야기하며 다른 부분들도 있었고 공감이 가는 것들도 있었다. 내가 페이스북 친구를 맺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으로 가끔 안부를 물으며 식사하자는 얘기도 하게 됐다. 진짜 만나고 싶고, 만나면 반가워 여러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직장에 다녔을 때는 일로 출장 갈 때도 있었지만 이것도 필자에게는 여행이었다. 4년 전 워싱턴DC에서 UN산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권익을 대변하는 국제단체인 Inclusion International에서 발달장애 관련 컨퍼런스가 있었을 때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일본인 부모인 Sodeyama Keiko씨를 만났다. 처음 만나서 조금은 어색하고 서먹했지만 영어로 이야기하며 발달장애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서인지 조금씩 친분이 쌓였다.

2년 후에는 일본 지적장애인 당사자대회 참석을 준비할 당시에도 워싱턴에서 만났던 Sodeyama Keiko씨와 메일을 서로 주고받으며 대회 참석과 관련된 일을 진행했다. 워싱턴 때의 친분이 계속 되었고, 일본에 실제로 대회에 참석했을 때 만나면서 서로 반가웠다.

작년에도 휴가 차 일본으로 개인여행을 갔을 때도 그 일본인 부모와 만났고 직장에서의 일, 개인적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부모는 필자에게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고 했고, 필자는 그 제안이 정말 좋았다. 더불어 또 한 명의 남성분도 같이 얘기하며 필자에게 친근하게 잘 대해줘 친해지고 싶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올해에도 일본여행을 갈 예정인데, 가게 되면 Sodeyama Keiko씨, 그리고 같이 만났던 남성분을 만나고 싶다.

필자가 작년에 여행했던 요코하마의 야마시타 공원 분수와 정원 모습. 유럽풍 느낌이 들어 또 가고 싶은 곳이다. ⓒ이원무

동경의 미나토 구에 있는 번화가 아카사카라는 곳의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하고 이야기한 다음 촬영한 모습. 필자 옆에 있는 분이 Sodeyama Keiko씨, 제일 우측에 있는 남성 분이 Muto Masahiro씨 ⓒ이원무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지만 10년 전 독일 월드컵 관람 때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으로 필자 혼자서 여행하는 법을 터득했다. 혼자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가족들의 조언, 지원이 컸다. 지금은 누가 같이 가자고 그래도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 좋다. 가끔은 같이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말이다.

여행경비의 경우에는 직장을 다니지 않았을 때, 번역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어들인 돈, 부모님이 주신 용돈(용돈에 대해서는 부모님께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하다.)등을 받아서, 쓰고 남은 돈을 계속 저축해 마련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1달에 1번씩 월급에서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해 여행경비를 마련했다.

여행계획을 세울 때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식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합리적인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는 항공편을 알아보고, 네티즌들의 댓글을 통해 숙박하기 좋다고 여겨지는 숙소를 찾는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 여행을 필자 나름대로 즐겼다.

필자보다 심한 발달장애가 있는 당사자 분에게도 여행하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 있었다. 하남시에 있는 어느 장애인시설에 봉사활동을 하러 갈 때가 있었다. 거기서 만난 발달장애가 있는 한 분이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던 적이 있었다.

“언제 바깥으로 놀러가요?”

최근에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시설에 있는 식구들 데리고 미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요.”

여행을 하고 싶은 이유를 여쭈어 보았는데, 답을 알려주시지는 않았다. 필자가 보기에는 ‘반복되는 시설에서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얻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식구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어울리고 싶으신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 장애인들의 여행욕구는 2008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향후 여가 및 문화활동 방법 1순위로 여행이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상당히 높았다. 지금도 장애인의 여행욕구는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정부차원에서의 모든 장애영역에 대한 전반적인 장애인 여행실태 조사는 없다. 정부가 장애인 여행정책을 만들어 실행할 의지가 있는지 강한 의심이 든다.

그러기에 전반적인 장애인 여행실태 조사를 정부차원에서 했으면 한다. 그리고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보장을 통해, 장애인이 남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원하는 곳에 가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장애인에게 맞는 여행 정보제공, 여행경비 지원방법 등의 장애인 여행정책을 정부차원에서 꼼꼼히 잘 세워 실행했으면 한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대개 최저임금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아 여행자금을 모으기 정말 쉽지 않은 현실을 생각하면 최저임금 이상 보장을 국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본다. 그래야 여행자금을 모을 수 있을 테니까. 이는 발달장애인 뿐만 아니라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에게 여행지. 여행 등과 관련, 알기 쉬운 정보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족을 하나 더 달자면, 아까 말한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생각할 때 내가 하는 여행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모든 발달장애인이 여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라고 확신한다.

장애인에게 여행이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임은 물론 정말로 영혼의 자유로움과 사회적인 관계망을 얻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모든 장애인이 자신의 의지로 여행해 개인의 완성으로 이어져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길. 그래서 인간다움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길.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