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발달장애인 정책수립 촉구를 위한 농성결과 보고회. ⓒ박신영

지난 5월은 뜨거웠다. 어린이날이던 5월 5일 상우와 함께 시청을 찾아가던 때만 해도 어머니들의 농성이 40여일이나 지속될 줄은 몰랐다.

직장에서도 줄곧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끝날 것 같지 않던 날들이 기적적으로 마무리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날이 벌써 보름이 지나, 6월 27일은 보고대회와 축하공연으로 다시 앞으로의 결의를 다지게 되는 날이다. 이런 날을 맞이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

문득, 그 5월과 6월, 세상에 나왔던 또 다른 어머니들을 떠올린다. 일본 신주쿠역에 모였던 일본의 어머니들 그리고 시청 앞 퀴어축제 때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아이들에게 프리허그를 해주던 어머니들이다.

일본에서는 작년에 통과된 안보법에 대한 반대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페이스북을 통해 결성하게 된 엄마의 모임은 지난 5월 5일부터 8일까지를 '누구의 아이도 죽게 하지 않는 주간'으로 선포하고 신주쿠역에 모여 안보법 반대 시위를 했다.

“지진과 달리 전쟁과 원전은 사람이 막아낼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는 엄마들이 자신의 입으로 전쟁은 필요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안보법에 반대하는 엄마의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시위를 사실 예전에 기사에서 접했다면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인 것으로 단순히 읽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나 또한 세상에 처음으로, 그동안 표현할 수 없었던 절박한 심경을 모두 함께 모여 말한 후이니, 또, 저 나라의 모인 이들도 어머니들이라고 하니, 그 심경이 충분히 공감되어 유심히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젊은 엄마들이 묵묵히 행진을 하며 안보법 반대시위를 하는 영상을 보고는 참 의아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안보법과 무슨 상관이 있는거지?’

그 때, 2011년과 2012년에 EBS 지식채널e 에 올라왔던 두 편의 편지를 소개하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각각 전쟁에 참여했던 일본군과 한국군, 어린 아들들이 각자의 어머니께 보내던, 부치지 못한 편지글을 재구성한 영상이다.

나라의 부름에 거역할 도리가 없어 폭탄을 지고 미군의 배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가미가제 특공대의 조종사인 일본군 아들이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부를 이름은 ‘천황폐하 만세’가 아니라 ‘어머니’이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하나요, 너무 무섭습니다.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어머니 전쟁이 어서 끝나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1950년 8월 10일 전투에서 숨진 이우근 학도병의 군복 주머니에서 발견된 편지글도 영상으로 만들어져 보여졌다.

두 군인이 전쟁터로 가게 되었을 때, 갓 스물이나 지났을까. 지금 내 나이보다 스무살은 더 어린 나이에 전쟁의 와중에서 두려움을 견디며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어미의 심정이 한국 엄마라고, 일본 엄마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키우느라 온통 육아에 집중해야할 어머니들이 거리로 나와, 세상에 나와 전쟁법 이라는 안보법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어머니가 있다. 지난 서울 시청 앞 퀴어축제 때, 장성한 청년들의 눈물로 가득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등을 두드려주며 너를 세상 누구보다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따뜻한 표정으로 안아주는 한 어머니가 있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엄마는 널 있는 그대로 사랑한단다’의 어머니들이었다. 내 자녀가 성소수자인 게 걱정이 아니라,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 걱정인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프리허그 행사였다.

“넌 충분히 예뻐”, “언젠가는 저도 말씀드릴께요 거짓말 안하고”, “정말로 이 부스가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대화들이 포스트잇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성별은 타고나는 것이다, 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어릴때부터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가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가 세상에서 살아갈 날들이 걱정인, 아픔을 아는 부모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성별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신의 실수라고 믿기 때문에, 또 신 또한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한없이 안쓰러워하며 함께하는 분이라 믿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과 슬픔에 함께 울고, 분노한다. 참, 아프고 힘들게 차별과 편견에 맞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우리는 모두 그 아이들의 어머니이다. 차별과 편견에 시름시름 죽어가고, 전쟁터에 내몰려 티끌처럼 죽어나가고, 나 죽으면 지역사회에 함께 있지 못하고 멀리 시설에 보내져 짐덩이처럼 취급받을지 모를 아이들의 어머니다.

전쟁을 만들고, 차별과 편견을 만들고, 핍박하는 사람들의 어머니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우리는 보석처럼 귀하게 키운 내 아이들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그 세상이 정말 따뜻하고 행복하고 아픔이 없기를 바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에 대한 예의를 갖춘 세상이기를 바라는, 이토록 단순하고 소박한 바람만을 가진, 세상의 어머니들이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 경제논리와 효용성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다름을 존중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세상, 사람이 더욱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대의 어머니는 집안을 비추던 아내에서 더 나아가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햇빛이 되어야겠다. 아이를 잃고 안으로 삼키던 울음 대신 아이를 지키는 투사가 되어 세상의 아이들을 지켜내야겠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우리는, 내 아이가 살아갈 다음 세상을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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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맘이자 새로운 세계, 장애아동을 키우는 삶에 들어선지 10년째다. 아들이 네 살 때 발달장애인 것을 인지하고 1년 휴직하며 아이 교육에 힘쓰는 한편 아이의 장애등록에 따른 고심과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 등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장애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오래 가는 “길 장(長), 사랑 애(愛)” 임을 깨닫게 된다.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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