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빌라에서 직장이란?

월평빌라 입주자는 지역사회 일반 사업장에서 일합니다. 보통의 삶을 살도록 도우려는 뜻에서 그렇게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직장에 출근하고 집으로 퇴근하듯 말입니다.

또, 지역사회가 장애인과 더불어 일하도록 도우려는 뜻에서 그렇게 합니다. 지역사회에는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사업장이 적습니다. ‘내 일터’에서 장애인과 함께한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시설 직원이 두루 다니며 설명하고 의논하고 부탁하고 설득하며 돕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지역사회에 다니며 직장 알아보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취업하기 어렵고, 취업해도 며칠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도 찾고 또 찾습니다.

시설에 2천여 평 땅이 있습니다. 거기에 ‘직업’으로 닭, 돼지, 개를 키우면 어떨지 의논한 적이 있습니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지역의 수천 개 사업장을 다 가 보기 전에는 취업할 곳이 없다 단정하지 말자’고 당부했습니다. 당부가 아니라 협박이죠. 그렇게 단호하게 이야기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취업하기 어렵고 취업하더라도 오래 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역사회에 알아보다 안 되면 시설에서 닭, 돼지, 개 키우려 하겠죠. 잘되면 더 이상 지역사회에서 직장을 구하지 않을 겁니다. 잘 안 되면요? 지역사회에서 직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지역사회에서 찾도록 단호하게 부탁한 겁니다.

월평빌라 직장인 현황

2016년 6월 현재, 월평빌라 입주 장애인 서른두 명 가운데 열두 명이 직장에 다닙니다. 중증장애인시설이란 걸 감안하면 적지 않습니다.

주 5일 주 40시간 근로자 1명(농장일 전반), 주 5일 주 20시간 근로자 1명(축사 정리), 주 5일 주 10시간 시간제 근로자 4명(신발 가게, 옷 가게, 미용실 청소와 보조), 주 3일 주 9시간 시간제 근로자 1명(건물 청소), 주 3일 주 6시간 시간제 근로자 2명(학원, 미용실 청소), 주 1일 주 2시간 시간제 근로자 3명(커피숍, 미용실 청소). 겹벌이(투잡)나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설 직원의 지원은 입주자마다 다릅니다. 혼자 출퇴근하고 직장 동료와 함께 일해서 지원할 게 없는 경우, 출퇴근만 지원하는 경우, 출퇴근은 물론 직장 업무까지 시설 직원이 지원하는 경우, 다양합니다.

직장 생활의 모양새도 입주자마다 다릅니다. 일을 금방 익혀서 혼자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더디어서 시설 직원이 오랫동안 많은 것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사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살피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도록 지원합니다.

구직 활동

취업의 경로는 다양합니다. 다른 시설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지만, 시설 내 작업장이나 복지관 직업센터 같은 곳을 통해 지역 내 직장을 구하는 경우가 있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지원을 받아서 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월평빌라는 당사자와 의논하고, 시설 직원이 당사자와 함께 지역사회 두루 다니며 일반 사업장의 문을 두드립니다.

취업의 시작은 구직이고, 구직은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주체이게 합니다. 무슨 직종 어느 직장을 다닐지 당사자가 알아보고 선택하게 합니다. 부모형제·친구·지인들과 무슨 직종 어느 직장을 다닐지 의논합니다. 그들에게 직장 구한다는 소식을 알리고 좋은 사람 좋은 직장 알아봐달라고 도와달라고, 묻고 의논하고 부탁합니다. 이력서 쓰고 추천서 받는 것을 함께하게 합니다.

2014년 겨울, 고등학교 1학년 지선(가명)이가 아르바이트를 구했습니다. 사회복지 전공대학생 두 명이 지선이를 도왔습니다. 그때 찾아간 둘레 사람이며 사업장이 50곳이었습니다. 대단하죠. 마침내 미용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고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3입니다. 학교 마치면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늦게 집에 옵니다.

구직에서 거절의 의미

직장 구하는 과정에 거절하는 곳이 있겠죠. 거절당하는 당사자도 있고요. 괜찮습니다. 우리 관심은 일할 한 곳입니다. 거절한 ‘아흔아홉 곳’에 시선을 두지 않습니다.

거절, 여기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내 일터’에서 장애인이 일한다, 장애인과 함께 일한다는 생각을 못 했을 겁니다. 장애인은 저기 장애인끼리 일하는 데서 일해야 하는데 말이죠. 특히 시설에 사는 장애인은 더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장애인 당사자와 시설 직원이 찾아와서 함께 일하자고 하니 적잖이 당황했을 겁니다. 우선은 거절했지만, ‘장애인과 함께 일한다’는 생각이 비로소 생깁니다. 그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거절당했다고 낙심할 일만은 아닙니다.

거절당한 당사자는 어쩌죠? 당사자가 겪을 수치 낙심 절망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시설 직원이 당사자 대신 직장을 구하지는 않습니다. 당사자가 겪는 좌절이나 괴로움이 있겠지만 그마저 당사자의 몫입니다. 당사자 대신 직장 알아보고 ‘내일부터 어디로 출근하세요.’ 하는 것이야말로 당사자의 인격을 무시하는 겁니다.

잘 받아들이고 잘 이겨내게 돕습니다. 낙심하며 주저앉아 있을 일이 아닙니다. 다음, 다음, 또 다음 하며 나아갈 일입니다. 거절도 몇 번 경험하면 익숙해집니다. ‘거절당하는 힘’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생깁니다. 아흔아홉 번 넘어진 끝에 일어서는 한 번의 성공이 보상합니다. 물론 차별에는 맞서야죠.

면접의 떨림

좋은 직장 좋은 사람 만나서 면접을 본다면 준비를 잘 합니다. 누구 추천으로 면접 보게 되더라도 당사자에게 그 과정을 잘 설명합니다. 무조건 오라는 경우도 가능하면 이력서 내고 면접을 보게 합니다.

면접 준비 잘해야죠. 미용실 목욕탕 다녀오고, 옷을 장만하거나 잘 다려서 갖춰 입습니다. 예상 질문을 뽑고 어떻게 대답할지 연습합니다. 사전에 예상 질문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누구라도 면접관 앞에 서면 떨리죠. 그 떨림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나팔꽃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줄기를 뻗을 때의 가느다란 떨림이라고 합니다. 떨림이 있어야 불합격의 고배도 합격의 환희도 그 사람 것이 되고 실제가 됩니다. 면접관 앞에는 당사자를 세웁니다.

취업은 종결?

취업했다면, 시설과 시설 직원이 할 일은 무엇일까요? 취업했으니 종결? 취업 후에는 당사자가 그 일을 잘 하도록, 직장 동료들과 잘 지내도록, 직장인으로 살아가도록 지원합니다.

출퇴근에서 맡은 업무에 이르기까지 당사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씩 늘어나도록 돕습니다. 혼자 걸어 다닐 만한가, 버스 타고 다닐 만한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조금씩 발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동료들의 도움은 어떤 것이 필요한가를 살펴서 지원합니다. 동료들에게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여 함께 일하게 합니다.

동료들과의 관계를 지원합니다. 생일 결혼 출산 집들이 입원 초상 같은 동료들의 경조사를 챙기도록 돕고, 회의 회식 연수 같은 직장 행사에 참여하도록 돕고, 연말연시나 명절에 선물하고 인사하도록 도와 직장 동료로서 직장인으로서 잘 지내게 합니다.

직장의 유익

직장 다니는 입주자는 생활에 활기가 있고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자부심이 있고, 여러 이유로 자존감도 높습니다. 자기가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것 하고 사고 싶은 것 사는 여유와 여가가 생깁니다. 당사자가 가장 잘 느낍니다.

이웃해 사는 다른 입주자도 그걸 느낍니다. 월평빌라 초기 2년 동안은 시설 입주 전에 직장 다녔던 두 명 외에는 직장 다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일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직장 구해서 일하자 하면, 말도 못 꺼내게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출근하는 날은 세수하고 옷 갖춰 입고 시설 밖으로 나가고, 직장 회식이다 나들이다 해서 어디 다녀오고, 월급 받아서 하고 싶은 것 하고 사고 싶은 것 사고 이웃에게 월급 턱 내고, 얼굴 표정이 밝아지고 발걸음이 힘차고 말에 힘이 생기고….

비슷한 처지의 이웃이 직장 다니며 변하는 걸 보고 ‘나도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4년쯤 되었을 때 일곱 명이 직장 다녔고, 7년 지난 지금 열두 명이 직장 다닙니다.

시설 입주 장애인에게 직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는 곳입니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주당 근로시간이 얼마냐, 월급이 얼마냐에 앞서 직장이 ‘있다 없다’의 차이가 우선하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어디 갈 곳이 있고, 가면 반기고 함께 일할 사람이 있다는, 어디 소속되어 있고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는 것 같습니다.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여느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 월평빌라 동료의 말과 글에서, 직장 다니는 입주자의 표정과 삶에서 보고 느낀 바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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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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