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각장애 엄마, 당연히 운전은 꿈속에서나 가능하다.

데니스 홍 박사님이 NFB(National Federation of the Blind: 전미시각장애인협회)와 함께 개발 중인 시각장애인이 진동, 사운드 등의 비시각적 정보를 활용하여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와, Google이 개발해 오고 있는 자율주행차 중 어떤 것이 먼저 시 제품화될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나로서는 당연히 전자 쪽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내 성향상, AI(인공지능)이 운전하는 차에 아무런 주도권도 없이 실려 다니는 것 보다는 내가 직접 운전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동차를 개발한 데니스 홍 박사(오른쪽). ⓒTED

내가 어렸을 때,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건 일종의 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동차의 이런 사회적 가치나 의미 등은 많이 퇴색되었고, 이제는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일종의 생활필수재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한 가정의 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가정이 자동차 한 대는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인데, 사실, 이런 분위기는, 시각장애부모들의 아이들에게 엄청난 절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이 만 3, 4세쯤 되어 본격적인 기관생활을 하고, 주위의 아이들과 엄마 아빠들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 대조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우리 집에는 왜 차가 없어?’라고 묻기 시작한다.

그러면 부모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 문제에 대한 아이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겪게 되고, 한 1년쯤 그렇게 하다 보면 아이들이 성숙해져서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가정에서의 패턴이다. 나 역시 당연히 이런 과정을 겪었고, 이응이가 다섯 살쯤에 이 상황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자동차가 옛날같이 가치재였다면 이런 과정을 아이와 함께 겪어가는 게 덜 마음 아팠을테지만, 남들이 다 하는 일, 너무나도 평범한 그 무언가를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없을 때 느껴야 하는 부모로서의 자괴감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다.

그나마, 평소에는 그런대로 이 자괴감을 다루는 데에 별 무리가 없지만, 아이가 너무 많이 아파 응급상황이라도 발생하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아무리 이성적이며 강철멘탈이라도 아이에게 더없이 미안하고 가슴이 찢어진다.

40도에 육박하는 고열에 시달리며 뇌수막염에 걸린 아이를 안고 달래며 응급실에 가기 위해 한밤중에 잡히지 않는 택시를 기다릴 때, 장거리를 여행하는 지하철에서 한참을 가도 그 누구도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아 힘들다고 보채는 아이에게 다섯 살 어린이는 씩씩하게 서서 갈 수 있는 거라고, 이응이 힘든 건 알지만 엄마랑 다닐 때 이렇게 힘들어 하면 우리는 같이 놀러 다닐 수 없다고 냉정하게 말해야 할 때…

아이에게는 그 마음을 절대 들키지 않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다.

얼마전, 한국에 놀러온 나의 절친 리애짱과 이응이와 신나는 나들이 후, 집 근처 지하철 역에서..ⓒ은진슬

아이가 네 살 때의 일이다. 당시에 이응이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버스를 한 번 환승하여 40분 정도 걸리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데리러 가면, 육교를 건너 버스를 환승 해야 하는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다며 아이는 종종 택시를 탔으면 좋겠다고 보채곤 하였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아이의 요구를 들어준 적이 없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쩌면 나더러 너무 독한 엄마라고, 피도 눈물도 없는 엄마라고, 아동학대 아니냐고 비난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나도 네 살 아이에게 그 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사실, 한 두 번으로 끝날 수 있다면, 나도 아이와 택시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긴 시간 어린이집을 다닐 텐데, 그 때마다 택시를 타고 다닌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차가 없고, 운전도 할 수 없는 엄마인 내가 이 아이와 긴 시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이 역시 강해지고 이 상황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가 보챌 때마다, 왜 택시를 탈 수 없는 지 설명해 주고는 정 힘들어 할 때는 아이를 안고 걷기도 하고, 아이에게는 높은 육교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함께 숫자를 세고 노래를 불러 주기도 하면서 그 힘든 길을 함께 다녔다.

이렇게 독한 엄마의 하드트레이닝을 받은 결과, 이제 여섯 살인 이응이는, 신도림에서 혜화까지는 옆 동네 마실가는 수준으로 알며, 적어도 ITX나 KTX 정도는 타 줘야 좀 멀리 갔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도시의 방랑어린이가 되었다.

전술한 내용이 좀 불쌍하고 우울한 무드였다면, 이제는 조금은 밝고 긍정적인 측면을 논해 보자.

나는 얼마 전까지 약 1년 여간 아이와 신도림에서 혜화역까지 놀이수업을 다녔다. 아이와 놀이수업 가는 날, 하원길에 엄마들을 만나면 어디 가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혜화동에 간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라며 이렇게들 말하곤 했다.

‘지하철 타고 아이랑 거기까지 가다니, 정말 대단해요. 나는 못해요. 무엇보다도 애들이 지하철에서 그 긴 시간을 얌전히 있지 못할 거구요. …’

이런 말을 들으면, 유치원에서 걸어갈 수 있는 아파트단지에서도 차를 가져와 아이를 하원 시키는 엄마들이 결코 적지 않은 요즘 세태에서는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 문제는 어찌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 아이들이 지하철을 제대로 타 볼 기회가 없었기에 거기서 얌전히 지내는 법을 알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응이가 의젓하게 긴 시간 지하철을 잘 탈 수 있는 비결은, 엄마가 운전을 못하다 보니 다른 옵션이 없었기에 지하철을 끊임없이 탈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끊임없이 지하철에서는 어떤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지를 교육 받고, 훈련 받고, 조련 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응이는 한글을 전혀 읽지 못하던 시절부터 지하철노선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노선도의 각선의 색깔 별로 몇 호선이며 각각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까지 가는지, 환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그러던 다섯 살 여름의 어느 날, 전혀 가르친 적이 없었음에도, 아이는 우연히 마구마구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남편과 내가 추론하는 건, 자신이 듣고, 자주 가는 지하철역 이름의 음가와 노선도나 역에 적혀 있는 역명을 매칭하여 자꾸 듣고 보다 보니 스스로 한글을 깨치게 되었을 거라는 정도다.

한 발 더 나아가, 이응이는 지하철노선도와 출구 안내도 등을 하도 많이 보아서인지 지도를 제대로 읽고 해석할 줄 안다.

또한, 지하철에서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나이에 비해 의젓하게 잘 앉아 있고 지하철역 이름도 술술 잘 읽는 아이를 보며, 무릎으로 돌아 앉아 바깥 풍경이라도 볼라 치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다리를 한껏 모으고 조심하는 아이를 보며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예쁘다고, 기특하다고 칭찬을 참 많이 해 주신다.

그러면, 아이는 드러내지는 않지만, 자신을 제법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봄, 엄마랑 함께한 일본 여행에서, 요코하마 동물원 근처 나카야마역에서. ⓒ은진슬

엄마가 자동차가 없어서, 운전을 하지 못해서 여느 아이들보다 조금은 힘들게 지하철을 이용하여 놀러 다녀야 했던 시간들이, 아이에게 오히려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지하철을 타면 나 외에 많은 사람들도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기에 작은 소리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도, 무릎으로 앉아서 창밖을 볼 때는 옆 사람들의 바지에 신발이 닿지 않도록 다리를 나란히 붙이고 앉아야 한다는 것도, 노약자석에는 어떤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지도…

이응이는 이 모든 지하철 에티켓을 엄마와 숱하게 지하철을 타면서 직접 배울 수 있었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안내방송을 듣고, 엄마가 말해주는 목적지 역이름을 들으며, 이응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재미있게 한글을 깨쳤을지 모를 일이다.

지하철에서 예쁘다고, 귀엽다고 말 걸어 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쁘고 바르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법도 배우고, 어른께 공손히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때때로 너무 어린 나이부터 멀리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닌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멀리 갔다 집으로 돌아올 때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타고 다닌 지하철은 이응이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고마운 존재이다.

특히, 요즘 엄청나게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노키즈존 문제’ 역시, 이런 방식으로 아이에게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그 곳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들을 부모가 끊임없이 가르치고 함께 도와준다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룰루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게 놀러 나갈 것이다.

엄마랑 지하철로 어디든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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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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