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앙!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응아, 무섭지? 그래 무서울 수 있어. 무서워서 이렇게 우는 거 엄마도 알아. 그래, 무섭고 아마 조금 아플 지도 몰라. 하지만 금방 끝나고 다 괜찮아질 거야. …’

몇 주 전쯤 이응이를 데리고 안과에 갈 일이 있었다. 요 몇 주간 자꾸 눈을 비비기에 소아과 선생님께 여쭤보니 혹시 속눈썹이 찔려서 그럴지도 모른다며 안과에 가보기를 권하셨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병원에 대한 심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 병원 방향으로 가는 골목에 진입하면서부터 울기 시작해서 진료가 끝나 집에 돌아올 때까지 쉬지 않고 울어대는 이응이에게 안과 진료를 받는 일은 여간 공포스럽고 힘든 경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상한 기계에 강렬한 불빛이 번쩍이고, 거기에 몸의 움직임을 제약당한 채 눈을 바짝 들이대고 있어야 하는 자극적이기 그지없는 상황.

미숙아망막증으로 안과 검안기기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그 무엇인가였을 나에게 조차도, 그 강렬한 빛은 늘 불편했고, 그 무서운 검안기기의 렌즈가 내 눈 속으로 공격해 들어올 것만 같다는 어릴 때의 느낌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이렇듯, 누구보다도 안과 진료에 대해 잘 아는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아이에게는 그 일이 정말 자극적이고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이응이는 병원 같은 낌새가 느껴지자마자 커다란 울음소리로 자신의 입장 팡파르를 울려대기 시작했다. 나와 아이의 병원 방문은 늘 이런 상황이기에, 나는 늘 최대한 환자들이 없을 만한 때를 골라 이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데, 오늘도 다행히 대기 환자가 아무도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이응이의 이 거국적인 ‘입장 팡파르’는 다니고 있는 소아과에서는 매우 유명해서 환자가 많든 적든 관계없이 거의 하이패스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을 소아과에 데려가 본 부모들은 잘 알겠지만, 어떤 아기의 두려움에 찬 극한의 울음소리는 그야말로 겨우겨우 마음속의 두려움을 참아 가며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아가들에게 자신들의 억눌린 두려움을 표출할 수 있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응이와 같은 아이의 소아과 대기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은 많은 엄마들과 간호사, 의사선생님들의 웰빙과 직결되는 사안이기에 강력한 하이패스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 날도 낯선 안과병원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가자며 목 놓아 자지러질 것처럼 우는 이응이를 안고 늘 하던 말을 열심히 해가며 달래고 있었다.

대기자가 없었기에 곧 우리 차례가 되었고, 나는 ‘이응이 무서운 거 엄마 너무 잘 알지만 이응이 눈이 왜 아픈지 선생님이 보셔야 하니까 조금만 참으면 금방 끝날거야…’ 등의 말을 정신없이 읊조리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늘 하던 말들을 해주면서 울며 안과 검안대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이응이를 안고 자세를 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달래는 걸 지켜보던 선생님이 갑자기 나한테 이러시는 거다.

‘엄마가 무섭지라고 하니까 애가 더 무서워하죠.’

난 안과 의사선생님의 말에 좀 당황했지만, 그 말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할 수조차 없이 울고 있는 이응이를 달래가며 안과 검진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 속눈썹이 길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특별히 아플 이유가 있지는 않은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안과를 나오니 아이의 울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잦아들었고, 여유를 찾고 선생님의 비난 섞인 반응을 생각하니 여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마치 내가 매우 이상한 엄마가 된 듯한 생각에 입이 좀 썼던 것이다.

이 선생님은 내가 말하는 방식이 병원에서 늘 접하게 되는 평범한 우리네 엄마들의 그것과는 좀 다르기 때문에 낯설고 이치에 맞지 않다고 여기신 듯하다. 아마도 이런 경우에 선생님이 늘 듣는 말은 이런 식의 말들일 것이다.

‘이응아, 하나도 무섭지 않아. 우리 아기는 씩씩하니까 울지 않죠?’

‘선생님이 주사 하나도 안 아프게 놔주실거야….’

심지어 이응이 같이 너무 심하게 우는 아기를 달래다 지친 어떤 엄마는 너무 힘들고 주변 사람들 보기도 민망하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이렇게 핀잔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무섭긴 뭐가 무섭냐, 주사도 안 맞는데 뭐가 아프다고 이렇게 우느냐, 세 살 형아가 창피하게 왜 우느냐, 어서 뚝 그쳐라….’ 나도 이런 말들이 입 속에서 뱅뱅 돌 때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한 번 완벽하게 아기들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자.

태어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아기들에게 있어 병원에서 주는 물리적인 아픔과 정서적인 두려움보다 더 아프고 무서울 일이 뭐가 있을까? 세상에 ‘안 아픈 주사’가 어디 있는 거냔 말이다.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나도 한 번 맞아 보고 싶다.

기근이나 기아, 전쟁 등의 특별히 더 비참하고 힘든 환경에 처해있는 아기들이 아니고서는 아마도 병원에서 주는 아픔과 두려움보다 더 큰 고통을 겪어 본 아기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아기들에게 있어 지상 최대의 두려움과 고통이 몰려오고 있는 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엄마들은 말한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다가오고 있는 이 일은 네가 아는 그 고통도, 그 두려움도 아니라고. 이건 명백한 거짓말 아닐까?

아마도 아기들이 앞으로 자라면서 어른들에게 숱하게 듣게 될 많은 거짓말들 중 제일 첫 번째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아기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숱하게 콕콕 찔러대며 아프게 한 예방주사들과 감기 때문에 해 본 무서운 윙윙거리는 기계가 콧속에 들어가는 석션 경험들 때문에 엄마가 하는 말이 다 거짓말임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나는 그저 아기의 두려움과 고통스러운 감정을 외면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위로를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 역시 괴롭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가 ‘그래, 너 많이 힘들지?’라고 말하며 내 괴로움과 고통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업가가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로 평생을 바쳐 일구어 온 기업체를 부도로 송두리째 잃게 되었는데, 누군가가 그에게 부도 따윈 별게 아니라고, 그건 괴로운 일이 아니라고, 그런 일로 그렇게 술을 잔뜩 퍼마시며 괴로워하느냐고 하면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떨까?

우리 문화가 고통이나 괴로움, 아픔 등의 부정적이고 아름답지 않은 감정들을 표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고, 심지어는 터부시하기 때문에 아기들을 달랠 때조차도 어른들이 이런 식으로 밖에 말할 수 없는 건 아닐까?

나는, 이응이에게 세상에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달콤한 일들도 있지만, 아픈 일도, 고통도, 슬픔도 분명히 존재하며, 너에게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또한, 그 ‘아픔’이나 ‘고통’도 생각하는 것처럼 감당치 못할 일만은 아니며, 네 안에 이미 존재하는 힘으로, 때로는 부모의 도움으로 얼마든지 겪어낼 수 있는 일들이라고 가르쳐주고 싶다.

그래야만 앞으로 우리 이응이가 자라나면서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닥쳤을 때 그것이 감당하고 견뎌내고 이겨낼 만한 일이라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의연하게 대처하며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세상은 네버랜드도, 원더랜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응이의 병원공포는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이응이는 생후 9개월경부터 두 돌이 될 무렵까지 병원에 대한 엄청난 공포심을 갖고 있던 아기였다. 돌도 되지 않은 아기가 병원도 아닌, 병원 쪽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만 보아도 자기를 병원에 데려갈까 봐 자지러지게 울어댔으니, 병원 갈 일도, 병원 근처 마트에 갈 일도 참 많았던 그 시절 나는 참 힘들었더랬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을 겪으면서,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직면하는 첫 번째 두려움과 고통, 아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부모들은, 내 아이의 앞날에 아름다운 꽃길만 펼쳐져 있기를, 내 아이가 사는 동안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30여 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알고 있다. 세상에는 엄연히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도 조금은 아프고 슬프더라도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네 마음속에도, 이 세상 속에도 ‘슬픔이’와 ‘아픔이’가 살고 있다고.

그래서 나는 이응이의 첫 번째 두려움과 아픔을 함께 직면하며 끊임없이 알려주고 공감하며 도와주었다. 그렇게 두 돌이 되자, 이응이는 링거바늘이 자신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는 것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강철 멘탈(이응이 신생아 때부터 이 과정을 다 지켜보신 소아과선생님이 지어주신 별명)의 소유자가 되었다.

이응이가 병원과 주사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 갔던 것과 우리가 세상 속에서 슬픔과 아픔을 겪어 가는 것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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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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