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1년 전, 내가 다녔던 연구소에서 발달장애인법 제정 당사자 토론회 ‘발달장애인! 우리가 말한다’를 개최했었다. 연구소의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제작위원회에서 2년 넘게 권리를 공부했던 제작위원들이 발달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자리였다.

제작위원들인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그 토론회에서 일할 권리, 자립생활을 할 권리 등 발달장애인이 누려야 하는 13가지 권리 각각에 대해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말했다. 아울러 권리를 누리기 위해 발달장애인이 준비해야 하는 것,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선 각 권리마다 하나로 합친 의견들을 제작위원들이 발표하며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당시 토론회 사회를 맡고 진행을 보조하느라 발표내용을 잘 듣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토론회 전 토론을 직원들, 발달장애인들과 같이 준비하며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한 제작위원이 결혼할 권리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할 때였다. ‘내가 결혼을 할지 말지 내가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내용과 관련해 발달장애인이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는 ‘결혼을 할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예. 가사일을 함께 나누기 등)을 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국가가 지원할 부분으로는 결혼한 발달장애인 가정에 필요한 것을 도와주고 그 가정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토론회 때 의견을 발표했다.

예전에 가족이 ‘나이가 들어가는데 결혼하지 않으면 외롭지 않겠냐?’는 얘기를 나에게 했었다. 물론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과 외로움에 대한 세미나를 듣고 난 후, 나는 다음과 같은 결혼관이 확실히 생기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고, 외롭다고 그냥 무턱대고 결혼하면 불행해진다. 그러기에 내가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상대방에게 헌신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결혼하겠다. 결혼할지 말지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겠다.’

나에게 그런 결혼관이 생겼기 때문에, 내가 결혼을 할지 말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한 제작위원의 경험은 나로서는 정말로 공감되었다.

2013년 3월, 연구소에서 주최한 발달장애인법 제정 당사자 토론회 '발달장애인! 우리가 말한다'가 열린 모습. 그 당시 동문장애인복지관 Our voice에서 활동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한빛나씨의 축사 장면(왼쪽 위 사진), 한국장애인부모회 노익상 회장의 축사 장면(왼쪽 아래), 발달장애인법 당사자 토론회 전경(우측)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토론회가 3시간 동안 진행되며 약간은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토론회가 남긴 하나의 메시지가 있었다. 바로 ‘권리와 책임의 동행’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보통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 하면 ‘잘 하는 것이 없고 무조건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 ‘불쌍한 사람’등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편견들로 인해 사람대접을 못 받고 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가지 못하며 차별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권리를 공부한 제작위원들은 그런 편견을 거부했다. 오히려 나라가 지원해야 되는 부분뿐만 아니라 자신이 노력하고 꼭 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는 기본에 충실할 때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이다. 즉 권리와 책임은 같이 가야 한다는, 아까 말한 ‘권리와 책임의 동행’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차별을 거부하고 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겠다는 제작위원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 토론회 이후, 나는 ‘권리와 책임의 동행’이라는 기본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발달장애인법 제정 당사자 토론회의 메시지가 다시금 떠올려지게 된 순간이 있었다.

약 50일 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 시 비례대표 제도가 있는데, 비례대표란 정당에 대한 지지율로 국회의원 의석을 확보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정당의 이념이나 공약으로 정당을 평가하게 되고, 사회적 약자, 소수자 등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장애인 비례대표 제도가 생겼고, 2004년 17대 선거부터는 장애인이 비례대표로 꾸준히 국회에 진출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장애계는 장애인 비례대표 배정을 바라며 정치권에 요구했었다.

하지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 당시,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여야 3대 주요정당들은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결과를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당선 안정권 장애인 비례대표 0명!’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장애계는 충격에 빠지며, 3대 주요정당에 성명서를 내는 등 공천결과에 대해 경고했었다. 나도 분노가 올라왔다. 왜냐하면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나 여기 있어!’ 제29조 가호 2번에 다음 내용이 있어서다.

‘장애인도 후보자로 참여할 수 있으며, 투표에서 뽑힌 장애인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일을 잘 할 수 있게 그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나 여기 있어!' 제29조의 투표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이른바 장애인의 피선거권을 이야기한 것이고 말 그대로 권리이다! 등록장애인 비율이 5%이므로 국회의원 총 의석 수 300석에서 장애인 비례대표는 15석을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필자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애인 비례대표 후보가 당선권 내에 없는 것을 보며 장애인 피선거권이 침해되었다는 생각에 화가 난 것이다.

그러면 왜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 의문이 생겼는데, 지난 5월 10일 한국장총에서 주최한 제1회 장애인 아고라 ‘우리의 정치참여를 위한 대안은?’이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장애인 비례대표 전무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 데서 그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 때 토론자들이 말했던 여러 의견들 중 두 의견만 인용하겠다.

“장애인 비례대표는 장애당사자로서 정치적으로 장애계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그 취지를 잃은 채 개인의 역량을 뽐내기에 바빠 장애계가 결국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세 번 연속 비례대표를 주었으니 비례대표에서 장애인이 한 자리는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안일함과 오만함에 빠져 있었다.”

지난 5월 10일 한국장총에서 개최한 제1회 장애인 아고라 ‘우리의 정치참여를 위한 대안은?’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의 모습 ⓒ에이블뉴스DB

지난 5월 10일 한국장총에서 개최한 제1회 장애인 아고라 ‘우리의 정치참여를 위한 대안은?’ 토론회를 경청하는 청중들의 모습 ⓒ에이블뉴스DB

장애인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뽑힌다는 것은 장애인의 피선거권을 실현하는 의미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모든 장애인들을 대변해 장애인의 뜻을 반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을 국민들이 장애인 비례대표에게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애인 비례대표들이 개인역량을 뽐내는 등의 각개전투를 하지 않고 모든 장애인, 장애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장애인 문제를 전력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즉 장애인 피선거권에 걸 맞는 책임을 다했다면 정치권에서 장애계, 장애인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 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제20대 국회의 장애인 비례대표 전무는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같이 들어왔다.

그래서 장애인 피선거권 등과 같은 권리를 누리려면 그에 걸 맞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즉 ‘권리와 책임의 동행’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나에게 다시 떠올려지게 된 것이다. 또한 그 메시지는 제20대 국회 장애인 비례대표 결과와 관련된 교훈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 속에서 장애인들과 장애계가 이 교훈을 꾸준히 실천·노력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장애인이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나라와 지자체 등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본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지원자들이 권리와 책임이 같이 가야 함을 발달장애인에게 알기 쉽게 수시로 알려주고 이를 생활에서 자발적으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의 당사자성을 인정하는 자세와 노력도 필요하다.

그럴 때 아까 언급했던 장애인이 당당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사는 사회가 우리나라에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역량 있는 장애인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등의 정치참여를 통해 진짜로 국민의 뜻을 반영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책임을 다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런 모습들이 발달장애인에게도 적용되는 현실이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기쁘고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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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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