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할 수 있겠니?”

시각장애와 함께 36년여를 살아 온 내게 삶의 중요한 마일스톤(milestone)마다 상품에 붙은 가격태그처럼 늘 지리멸렬하게 따라 다녀 온 질문이다.

악보를 볼 수 없는 내가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대입 면접을 볼 때, 혼자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을 때, 결혼할 때도… 주변 친구들에게는 단지 선택의 문제였던 일들이 내게는 내가 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받아들여짐’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늘 치열하고 전투적일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의 내 인생의 결과물은 많은 사람들이 지겹도록 내게 던져 온 이 질문에 대한 치열한 답변이자 증명이었던 셈이다.

피아노를 전공할 때도,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을 때도,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사람들은 나에게 '할 수 있겠냐'는 물음을 던졌다. ⓒ은진슬

30대도 중반을 향해 가던 어느 날, 내가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은 네가 정말 할 수 있겠냐고,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솔직히 나 역시 다른 때와는 달리 마음 한 편에 정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의 그림자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기로 했다. 이제껏 많은 사람들이 너는 할 수 없다고 말한 것들을 해내며 살아왔던 나의 34년산 깡과 내공을 한 번 더 믿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 아기가 태어났을 땐, 아기가 젖을 제대로 못 빠는 것도, 산후조리원에서 처음 집으로 돌아와 혼자 아기를 돌보는 초보 맘의 기저귀 갈아주는 서툰 손길도 모두 시각장애를 가진 내 탓인 것만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정말 다른 사람들 말대로 눈 나쁜 엄마가 애 키우다가 굶겨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건 아닌가 조금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이 나를 덮칠 때마다 더욱더 열심히 아이를 돌보았다. 시간이 흘러 100일쯤 되니 아기를 먹이고 씻기는 일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내 아기가 눈 나쁜 엄마 때문에 다치거나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한 숨 돌릴 만하니 이유기가 되었고, 나 역시 여느 엄마들과 똑같이 확대경을 들고 이유식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어 가며 완료기 15개월간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주었다. 사실 만드는 것 보다 더 힘든 건 먹이는 일이었는데, CF속 아기처럼 이유식을 주는 대로 꿀떡꿀떡 잘도 받아먹는 아기란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 접해보는 숟가락과 이질적인 이유식, 게다가 눈 나쁜 엄마의 다소 서툰 숟가락질에 아이는 이유식을 잘 먹지 않으려 했다. 처음엔 아이 이유식 먹이다가 상황 제어가 너무 힘들어 내가 운적도 있었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이유식 먹일 때마다 큰 매트를 깔아 놓고는 아이가 흘리든 아이를 먹이다 실수로 내가 흘리든 개의치 않고 열심히 먹였다. 이번에도 시간의 여신은 시간을 견디며 노력하는 내 손을 들어 주었고, 어느새 우리 아이는 식사를 마칠 때까지 식탁을 떠나지 않는 많은 엄마들이 부러워하는 모범아기가 되어 있었다.

배를 든든히 채운 아기는 이제 머리도 채워 달라며 눈도 나쁜 내게 열심히도 책을 가져왔다. 확대경으로 책을 가까이에서 보아야 하는 내가 책을 읽어 주면 아이는 그림을 전혀 볼 수 없기에 아이가 잠들고 난 밤에 책들을 모두 외워서 읽어 주었다.

다른사람들에게는 몰라도 내 아이에게만은 무든 다 해 줄 수 있는 '슈퍼맘'이다. ⓒ은진슬

어느새 내 육아의 시계바늘은 뜨겁고 치열하게 1년을 새겨 갔고,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내 아이는 시각장애인 엄마가 키워서 굶어 죽지도, 다치지도 않았으며 인지 발달 역시 평균치를 훨씬 웃돌 만큼 잘 자라 주었다.

그간 나의 장애 때문에 해줄 수 없는 것들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까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키웠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내 아이는 서툰 내 숟가락질에도 배고프면 밥을 달라며 입을 벌렸고, 확대경을 들고 그림을 가리며 책을 읽어 주는 내게 항상 책을 가져왔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적어도 내 아이에게만큼은 시각장애를 가진 엄마가 자신을 잘 키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장애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내 가능성과 능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 작은 아이가 보여준 나를 향한 무조건적인 믿음에 그간 우리 사회에서 받았던 모든 상처를 한꺼번에 치유 받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어느덧 33개월이 된 내 아이는 어린이 집에 가기 싫은 날이면 내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공룡파워로 어린이 집 차 못 오게 부서트려 줘!”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간에 내 아이에게는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는 ‘슈퍼맘’ 인거다. 언젠가 이 아이도 나의 다름을 알고 힘겨워할 날이 올 테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엄마는 아닐지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노력하는 엄마 중의 한 사람이라는 걸 내 아이도 알아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나의 블로그를 통해 장애에 대해 함께 소통할 수 있어 좋다, 이런 관점을 가진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래본다. ⓒ은진슬

얼마 전, 내 개인 블로그에 한 선생님의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울맹학교 가정교사 ***이라고 합니다. 네이버 메인을 통해 선생님의 블로그를 보았고 글을 읽으며, 자녀출산과 양육 파트에서 선생님의 글을 학생들에게 읽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학생들에게 '엄마의 공룡파워'를 읽어주며 ‘장애로 어려움이 있기야 하겠지만 시간과 노력 앞에서는 그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하며 나중에 꼭 멋진 엄마, 아빠가 되어보자라고 수업을 했습니다.

정안인인 제가 아무리 할 수 있다고 해도 학생들 입장에서는 잘 와 닿지 않았을 텐데 선생님의 글을 읽어주고 수업을 하니 학생들이 더 공감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이 댓글을 본 순간, 나는 이 선생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닌, 남들도 다 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육아일기처럼 써 오고 있는 나의 보잘것없는 글을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미래의 부모 됨의 가능성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도록 가르치는 데에 쓰셨다는 사실이 무척 보람되고 감사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좋은 관점을 가진 선생님들과 어른들이 좀 더 많아진다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세상에서는 장애인의 부모 됨이 좀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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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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