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잘 보지 않는 이응이가 그야말로 TV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모습으로 격한 공감을 표시하며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건 바로 ‘슈퍼맨이 돌아왔다’이다.

이응이가 흠뻑 빠져있는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 ⓒKBS2

작년 어느시점엔가 외가에서 보고는 흠뻑 빠져서 밖에 나가 놀지 않는 일요일에는 거의 매주 시청하고 있다. 아이가 TV와 물아일체가 되어 이건 뭐, 거의 막장드라마를 보는 50대 아줌마가 빙의한 건 아닌가 싶은 모습으로 시청하는 모양새가 영 탐탁치는 않지만, 상호작용 욕구가 매우 높은 아이의 성향상, 우리 부부의 거의 유일한 금쪽같은 휴식시간을 제공해준다는 것만으로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이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 같은 것들에 대해 더 이상 불만을 갖지 않기로 마음은 정리한지 오래다.

그리고 기왕에 아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고, 내 취향이나 신념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게 해 주기로 마음먹었으니, 까칠한 시선을 한껏 누그러뜨리며 아이와 함께 있는 그대로 즐겨 보려 노력도 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아이와 시청을 하다 보니, 아이가 왜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지, 프로그램 속의 어떤 점이 아이로 하여금 이 프로그램에 열광하게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아이와 함께 EBS 등의 유아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는데, 대부분의 유아 대상 TV프로그램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쩔 수 없이 작위적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올바른 기본생활습관 길러주기나 인성교육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보니, 아무리 재미있는 소재나 에피소드들을 현실적으로 차용한다 해도 결론은 늘 암묵적으로라도 무언가를 가르치고 강요하는 결론으로 귀결되기 마련인 것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또래의 친구들이 나오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력적인 요소인 것 같다. ⓒKBS2

반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경우, 자기 또래의 친구들이 나와서 자기가 노는 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놀면서, 자기가 속상하겠다 싶은 일에 이 친구들도 속상해서 울고, 자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장난을 이 친구들도 똑같이 치면서 깔깔거린다. 소위, 내 얘기인 것 같은 공감대를 흠뻑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아이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방송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숨겨져 있는 갖은 설정과 상황 유도 및 간접광고 같은걸 아이가 아직 알 리 없으니 적어도 아이의 눈높이에서는 가장 자연스럽고 리얼하게 또래들의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여겨지는 것이리라.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인 만큼, 대중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하며,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육아에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이, 아빠 육아가 보편화 되어 있지 않았던 우리 사회에 아빠의 육아 참여를 압박하고 독려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지나친 간접광고로 등장하는 고가의 상품들 때문에, 아이들이 먹는 것, 입는 것, 여행하는 수준이 우리네 평범한 엄마, 아빠들이 해줄 수 있는 그것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도 한다.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우리네 평범한 아빠들은 육아휴직에 육자라도 꺼내려면 승진에서 영영 도태되거나 심지어는 회사를 나올 각오를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프리랜서인 연예인들이 제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공된 환경에서 자신의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대가로 돈까지 번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고도 한다.

나도 이런 부분들에 대해 굳이 말하라면 할 말이 많지만, 이런류의 문제는 나 아니더라도 다른 기자들이나 칼럼니스트들도 많이 논하고 있기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려고 한다.

내가 이 지면을 빌어 정말 논하고 싶은 부분은, 내 아이의 문제 제기를 통해 깨닫게 된, 철저히 여섯 살 아이 시각에서 바라본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부조화 내지는 불편한 점이라고 해야 적당할 것 같다.

아이와의 짧은 대화는 뜻밖의 깊은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KBS2

올해 초, 겨울이 한창이었던 어느 일요일, 그 날도 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었고, 나는 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엄마! 다섯 살이 혼자 마트에 가서 심부름 할 수 있어?’

‘글쎄, 아무래도 아직 다섯 살은 어려서 혼자 마트 심부름을 가기에는 좀 위험하지. 근데 왜?’

‘나는 여섯 살인데도 아직 마트 심부름 한 번도 못해봤는데, 나보다 어린 대한, 민국, 만세는 어떻게 혼자 마트에 가서 간장을 사와?’

아이의 질문을 받고, 하던 일을 멈추고는 TV로 시선을 돌려 상황부터 파악해 보았다. 삼둥이들은, 스키장 리조트 내의 마트에서 간장 사오기 미션 수행에 한창이었다.

나는 바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다섯 살 삼둥이의 간장 사오기 미션이 매우 독립적이며, 뭐든지 잘 하고 싶고, 언제나 1등이 되고 싶은 성향을 가진 여섯 살 이응이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동시에 건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심각해 보이는 아이 곁으로 다가가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여섯 살 이응이는 아직 엄마 마트 심부름을 한 번도 못해봤는데, 이응이보다 어린 다섯 살 삼둥이들이 어른 없이 마트에 가서 간장을 사 오는 걸 보니까 이해도 잘 안 되고, 이응이 마음이 좀 속상했나 보구나?’

‘응!’

‘이응아! 그런데 말이야, 삼둥이들이 마트에 가서 간장을 사는 모습을 우리가 방송으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카메라로 찍어야 돼!’

‘맞아. 그럼, 저 친구들이 마트에 갈 때 누가 따라가게 될까?’

‘카메라 아저씨.’

‘맞아. 저 방송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화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많은 이모, 삼촌들이 저 친구들을 따라 다녀야 해. 그러니까 삼둥이들이 뭔가 실수를 하거나, 길을 잃거나 하면 촬영을 돕는 스텝들이 도와주게 되거든. 냉정하게 이야기 하자면, 삼둥이들은 혼자 심부름을 하고 있는 건 아닌 거지.’

‘아! 그렇구나!’

아이와의 이 짧은 대화는 내 마음에 뜻밖의 깊은 울림과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흔히, 전술했듯이, 어른들은 ‘슈퍼맨이 돌아왔다’ 속에 등장하는 고가의 간접광고용 육아 관련 상품들을 보며 내 아이에게 저런걸 해 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이응이와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이응이가 삼둥이가 가지고 다니는 가방이나 옷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 값 비싸고 좋은 장난감이나 육아용품을 가질 수 없어서 아쉬운 건, 아이들의 마음이 아닌 어른들의 마음이었다. 오히려 여섯 살 이응이의 작은 정신세계에 부조화를 야기한 것은, 현실 세계에서의 다섯 살 아이들이라면 여간해서는 아직은 혼자 하지 못하는 마트 심부름을 하고 있는 삼둥이들의 더없이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방송을 만드는 제작진들이 귀하고 소중한 아이들의 마음을 고려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KBS2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그 존재 자체로 너무나도 경의롭고 아름다운 소우주다.

내가 엄마라는 이름을 얻고, 이 경의로운 작은 우주를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다양한 생각, 다양한 통찰을 경험할 수나 있었을까? 이응이라는 멋진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나에게 어떤 사실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 주는 귀한 열쇠가 되어 주고 있다.

아직 너무도 여리고 말랑말랑하여 그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는 신선한 빵 반죽과도 같은 내 아이의 시선, 내 아이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이제는 굳어 버려 쓸 모 없는 빵 반죽과도 같은 경직된 내 생각주머니에 다시금 발상의 전환, 아이의 마음, 신선한 아이디어를 불어 넣어 주고 있으니, 어찌 육아가 힘들다고 불평할 수 있으랴.

‘슈퍼맨이 돌아왔다’ 제작진들에게, 이렇듯 귀하고 소중한 아이들의 마음까지 사려 깊게 고려하여, 아이들이 진정으로 즐겁게 공감하며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건 너무 비현실적인 요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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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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