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참회록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부끄럽지만 반성을 하고 또 반성한다.

2014년 12월, 인천 해바라기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이 의문사한 사건이 발생하자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모여 의문사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먼저 장례를 치르며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나는 장애인이 의문사한 것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조문을 했지만, 어떠한 힘도 되어주지 못했다. 시설 이용자 장애인이 이렇게 자주 죽음을 맞이하여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장애인으로 시설에서 생활하지 않았다면 다른 운명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대로 사실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시설의 운영자와 직원들을 면담하고,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였다. 시설측의 답변은 어떠한 인권침해 사실도 없으며, 자신들이 의혹의 대상이 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했다. 설명은 매우 그럴 듯하였고, 나는 순진하게도 그들의 설득에 넘어갔다.

사망자는 희소성질환을 앓고 있어 갑자기 졸도를 하였고, 병원으로 즉시 옮겨 방치를 한 것도 아니고 신체에 난 피멍의 상처는 폭력이나 가혹행위가 아니라 당시 쓰러지거나 생활하면서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여 시설물에 부딪힌 작은 상처가 몇 달 동안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있는 동안 희소성 질환에 의해 치료되지 못하고 상처가 더욱 악화된 결과라고 했다.

나는 의무기록이나 생활기록 등 그들의 주장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시설 종사자가 인권침해를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희소성 질환으로 특이한 원인불명의 증상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권침해를 하였다는 정확한 증거가 없는 한 혐의를 가지고 언론이나 대중을 통한 성토나 비방은 시설 종사자들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인권 활동가가 의혹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장기 집회를 하고, 시설 폐쇄를 주장한다면 종사자들은 사기도 저하되고 의욕도 없어져 정확한 근거도 없이 공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해바라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경찰에 고발을 하고, 민간합동 조사를 하여 철저히 규명하여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시설의 인권조사도 요구하고, 인천시청에서 시위를 하며 처벌도 요구하였다.

보통 사법부의 처벌은 확실한 증거가 있을 경우에 하는 것으로, 의혹만으로는 처벌이 어려우며, 또 다른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아니 되기에 피해자로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 왔다.

만약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행정이나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니 진상규명을 공동으로 참여시켜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해바라기 시설의 인권침해는 영원히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했을지 모른다.

대책위원회는 지워진 비디오를 복원하여 몇 달 간의 영상을 일일이 확인하였고, 그 안에서 폭행 장면들을 찾아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설 종사자들은 장애인들의 몸이 경직되어 다리를 스스로 굽히지 못하여 다리를 접도록 하려고 종아리를 누르는 것을 비디오만 보면 마치 폭력을 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억울하다고 했다.

경찰 조사 후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며, 5월 19일 1심 선고가 날 예정이다. 재판 과정에서 ‘안전방’이라는 감금방이 운영되고 있었으며, 그 방에서 나오려는 장애인을 강제로 끌어서 다시 가두는 장면, 벽에 밀치고 목을 잡고 끄는 장면, 물티슈를 입에 물고 있다고 발로 머리를 차는 장면, 팔을 잡아 넘어뜨리고 얼굴을 가격하는 장면들이 증거로 제출되었다고 대책위원회는 전해 주었다.

이런 전쟁터와 같은 잔혹사가 낱낱이 드러났으며, 무려 6명이나 기소되어 1년 6개월이나 1년 등의 구형을 받았다고 했다.

시설에서 일어난 일은 모든 자료를 시설에서 가지고 있어 조작도 가능하고, 자료를 숨기고 서로 입을 맞추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오해나 협의로 불이익이 되어 시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왔던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정말 시설 종사자들이 직업적 윤리도 망각한 채 그러한 일을 감히 했을까 하는 나의 생각은 ‘시설을 전혀 모르는 엉터리 인권주의자’였음이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직 인권도 잘 모르는 감각이 떨어지는 햇병아리에 불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정확한 증거가 없이 함부로 남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치였음을 느꼈다.

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너무나 고맙기도 했다. 수고도 고맙고, 나의 부끄러움을 일깨워 준 것도 고마웠다.

의혹이 있으면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규명을 위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밝히기 어려운데,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원망을 듣거나 불이익이나 귀찮은 일을 염려하여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기 때문에 인권침해는 은폐되는 것이며, 그러한 결과로 장애인들은 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함을 알았다.

의혹이 완전히 풀리기까지 치열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배웠다. 의혹이 있는 곳이면 뒤탈을 걱정하지 말고 맹렬하게 나서야 명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믿게 되었다. 투쟁은 의혹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해야 함을 배웠다.

이러한 잘 포장된 썩은 시설은 퇴출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 시설 이용자가 누리는 서비스가 너무나 고마운 것이고, 시설의 사회적 기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이러한 인권침해는 티끌만큼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설들이 마치 큰 은혜를 장애인에게 베푸는 것처럼 동상세우기를 하고 있는 장애인 시설의 현실에서 나는 먼저 나부터 변해야 함을 통찰한다. 그리고 피해자와 그 가족,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설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장애인 활동가들을 더욱 지지하고 힘을 보태고자 한다.

인천 해바라기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를 밝히기 위해 활동가들의 엄청난 노력이 없었더라면 사건은 묻혔을 것이고, 정의는 빛을 바랬을 것을 생각하면 나는 너무나 끔찍하고 몸서리가 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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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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