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는 한국장애부모연합회 ‘심봉사임당’이라는 시각장애부모들의 육아카페 엄마들 여섯 명이 칼럼 작성을 위해 도움을 받고자 한 내 제안에 따라 한 달 전쯤 단체 카톡방에 모여 모유수유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칼럼은, 그 때 나누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가 보고자 한다.

진정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라면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고 엄마들이 굳게 믿는 그것. 출산 후 누구나 시도하지만,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그것. 남자들의 군대 무용담에 뒤쳐지지 않는 엄마들의 무용담인 그것. 엄마들을 몇 시간은 너끈히 핏대 세우며 수다 떨게 만들 수 있는 그것. 육아커뮤니티나 인터넷카페 등에서 언제나 핫한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그것.

그건 바로……

모.유.수.유.

한국장애부모연합회 '심봉사임당' 시각장애 엄마들, 모유수유를 논하다. ⓒ은진슬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 모유수유라던 어느 모유수유장려캠페인 문구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나라에서 모유수유는 출산 후 엄마들의 엄마자격 테스트의 첫 관문 같은 것이다.

출산 후, 소위 ‘완모’라고 불리우는 완전 모유수유에 성공한 엄마들은 엄마자격 첫 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엄마들은 아기에게 먹을 것도 제대로 제공해 주지 못하는 나는 아무래도 좋은 엄마가 아닌가보다 싶은 생각에 엄마로서의 첫 번째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 암수술 때문에 완모에 실패하고 혼합수유를 했었기에 아이에게 모유를 충분히 줄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지금도 너무도 뚜렷하고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날.

이응이 7개월 때의 어느 화창한 가을날 오후, 딸꾹질을 하는 이응이에게 젖을 물렸는데, 마치 단수된 수도꼭지처럼, 아기가 아무리 빨아도 모유가 나오지 않으면서 7개월간의 처절했던 나의 모유수유분투기는 결국 막을 내려야만 했다. 당시의 내 기분은, 최선을 다 해 노력했음에도 아이에게 좋은 식량의 원천을 제공해 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많이 서글펐다.

모유수유가 어려운 엄마들은 혼합수유나, 분유수유를 하게되는데 시각장애 엄마들은 분유의 양을 맞추는 것도, 젖병을 소독하는 것도 여간 힘들고 어려운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완모에 대한 노력은 더더욱 절박하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그렇다면, 시각장애 엄마들의 모유수유에 대한 생각은 어떠할까?

모든 엄마들이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완모 성공을 위해 너무나도 절박하게 노력하지만, 시각장애 엄마들에게는 그 절박함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먼저 말해야겠다.

아무래도 혼합수유나 분유수유를 하게 되면, 젖병에 표기된 눈금을 보며 따뜻한 물을 정량으로 붓고, 분유도 정해진 용량만큼 넣어 타주어야 하고, 젖병도 열탕 소독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시각장애엄마들로서는 그게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완모에 성공하려는 시각장애엄마들의 노력은 더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처럼 혼합수유나 분유수유를 하는 시각장애 엄마들은 나름의 잔머리를 굴려가며 다양한 팁들로 분유를 타 먹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완모에 성공하여 이런 불편함도 피하고 짐도 줄이고 싶은 것이 엄마들의 인지상정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시각장애 엄마들의 분유타기 팁을 살펴보자.

일단 젖병의 눈금을 보는 건, 경도 저시력이 아닌 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꽉 채우면 분유 타기에 꼭 맞는 물의 양에 해당하는 대체용기 하나를 정해 놓고 그 곳에 먼저 따뜻한 물을 부어서 젖병에 다시 옮겨 타는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다행히 분유를 넣는 것은, 분말이라 분유 개량용 스푼으로 정량을 넣으면 되니 크게 번거롭지도 않을 뿐더러, 요즘은 스틱분유처럼 일회용으로 포장되어 나오는 분유도 있기 때문에 물을 핸들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졌다는 게 중론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비장애엄마들보다 훨씬 절박한 심정으로 완모에 도전하지만, 시각장애엄마들이 처음 모유수유를 시도하다 보면, 시각적 제한성으로 인한 커다란 애로점에 봉착하게 된다.

아무래도, 목도 못 가누는 신생아는 엄마가 어느 정도 제대로 젖꼭지를 보고 입을 맞춰 주어야 하는데, 시각장애 엄마들은 제대로 보이지 않다 보니 포커스를 맞추어줄 수가 없어 아기가 젖꼭지를 제대로 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가 어렵다는 것이 엄마들의 공통된 하소연이었다.

나 역시 건강상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 후, 신생아실에 처음 가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데, 이 부분이 너무 어려운 데다가, 종합병원 간호사들은 너무 바빠서인지 내 특성을 살펴 도와주려는 사람도 없어서 너무나도 좌절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이 문제는, 친정엄마가 이런 문제를 미리 간파하시고는 나와 함께 가서 미리 내 불편함과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리고 예약해 두었던 산후조리원 선생님들의 각별한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내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시도 때도 없이 밤이건 새벽이건 모유수유를 할 때마다 직접 내 방으로 아이를 데려와서 내 상황에 맞는 모유수유법을 가르쳐 주신 신생아실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마, 그 분들의 깊은 공감과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응이에게 짧은 기간이나마 모유를 제대로 먹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이런 어려움은 나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어서, 카톡방의 모든 엄마들이 전적으로 공감했으며, 각각의 장애 특성에 따라 상황에 맞게 엄마의 신생아 케어를 잘 돕고 교육도 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인식 변화 및 병원 내의 시스템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지난 2012년 뉴욕에서 진행한 '뉴욕 젖 물리기 (Latch on NYC)' 캠페인은 큰 인기를 끔과 동시에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모유수유에 대한 상황과 입장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뉴욕타임즈

많은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거의 채식주의에 가까운 식단을 고수하던 내가, 비위가 약해 소고기나 돼지고기 베이스의 육수는 거의 먹지도 못하던 내가, 젖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민간요법에 나오는 돼지족을 고아달라고 했을 때 우리 엄마가 기절할 뻔했듯이, 엄마들의 완모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다. 모유가 많이 돌게 해 준다는 두유를 몇 박스씩 사다 놓고는 좋아하지도 않는 두유를 하루에 네, 다섯 개씩 먹는 건 기본이다.

내가 암 수술을 했던 병원에는 모유수유 전문 간호사가 있었는데, 솔직히 나는 모유수유전문 간호사라는 존재를 이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수술 후에도 어떻게 해서든 아이에게 모유를 조금이라도 더 먹여 보겠다는 내 노력에 암센터에서 컨설팅을 내 주어서 도움을 받았는데, 이 부분은 건강보험 비급여였던 생각도 난다.

이렇게 엄마들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완모의 고지에 오르려고 너무나도 처절하게, 악착같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힘든 난관을 뚫고 완모에 성공하는 엄마들도 있지만, 갖은 노력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유수유에 실패하는 엄마들도 있게 마련이다.

어찌 보면, 모유수유는 엄마의 기본적인 체질도 따라 주어야 하고, 아기도 젖을 잘 물고 힘차게 빨아 주어야 하며, 그 무엇보다도 하늘의 뜻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런데, 모유수유에 성공하지 못한 엄마들은 엄마자격미달에 좋은 엄마가 아닌 걸까?

사실,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들은 최소 1년 동안은 늘 대내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엄마들 스스로도 모유수유에 대한 강박관념이 너무 크며, 모유수유에 실패한 데 대한 자책감과 자괴감을 토로하는 글도 육아카페나 블로그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시댁이나 친정 어른들의 압박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려니와, 엄마들 간에도 엄마라면 모유수유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나름의 동료압박(?)도 부지불식간에 엄연히 존재한다.

아마도 모유라는 것이 갓 태어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에 직결되는 욕구인 식욕에 관련된 것이다 보니, 이제 막 엄마가 된 초보엄마 입장에서 그것을 제대로 제공해 주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크나 큰 미안함과 자괴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인 듯 하다.

하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엄마의 몸이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컨디션일 수도 있고, 아이를 두고 일찍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유축과 수유가 자유롭지 못한 공간이나 직종에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방사선을 조사할 일이 많았던 나는,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가 없기 때문에 유축기로 멀쩡하게 차오르는 젖을 짜서 이틀 동안은 모두 버려야만 하는 일이 많았는데, 제때 짜서 버리는 것만으로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휴대용 유축기를 가지고 회사에 가서 그것을 짜서 고이고이 팩에 잘 담아 냉장/냉동하여 잘 보관했다가 집으로 가져오는 건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엄마들의 성향이나 외모, 상황이 제각기 다르듯, 모유수유에 대한 상황과 입장도 그만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어른들의 사고야 우리가 쉽게 바꾸기 어렵다 치더라도, 적어도 우리 같은 엄마들끼리는 모유수유 여부에 따라 엄마자격이나 서로의 엄마로서의 아이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함부로 비교하거나 판단하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각고의 노력으로 모유수유에 성공한 엄마들의 인내와 노력은 백 번 존중 받아야 마땅함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모유수유에 실패했거나, 모유수유에 따르는 고통이 너무 견디기 어려워 분유수유를 선택했다면, 소신을 가지고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미안하고 안타깝다면, 내가 줄 수 있는 다른 사랑(예를 들면 이유식에 공을 좀 더 들인다거나)을 더 주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닐까?

지금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나 또한 있는 그대로의 나이며, 이 세상에 엄마 자신의 존재 자체로 아이에게 미안해하는 엄마는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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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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