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먼치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책 내용에 삽입된 그림. ⓒ박신영

산문과 시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음악이 전해줄 수 있다. 또, 그림으로 더욱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2001년, 우리 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이미 100만부가 넘게 팔렸던 캐나다 작가 로버트 먼치의 ‘Love you forever’.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짧은 동화는, 글과 시와 음악과 그림이 곁들여진. 너무 당연하지만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이 짧은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의 그림도 있고, 저자가 직접 읽어주는 오디오북도 유튜브를 통해 나와 있다.

Love you forever,

Like you for always,

As long as I'm living,

My baby, you'll be.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엄마가 아이에게 불러주는 이 짧은 운율의 노래, ‘내가 살아있는 한, 죽는 날까지,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아기,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늙어지며 할머니의 목소리로 변해간다.

갓 태어난 아이를 사랑스럽게 안아 바라보는 어머니의 젊은 모습은, 미운 네살, 미치게 만드는 사춘기를 거쳐 어느 새 대학을 가 집을 떠나, 가정을 꾸려 독립하게 된 아들이 자라는 만큼 할머니로 변해간다.

아들이 멀리 떠나도 늘 아들이 자는 밤이 되면 아들에게 달려가 품에 안고 이 노래를 불러주던 어머니는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간다.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어머니의 늙은 목소리에 이번에는 아들이 어머니에게로 달려가 자기품 안에 쏘옥 들어올 정도로 작아진 어머니를 품에 안고, ‘나의사랑, 나의 어머니,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노래불러준다.

마지막 장면은 갓 태어난 딸의 방으로 가 딸을 안고 부드럽게 흔들어주며 이 노래를 부르는 아들의 모습이다.

책에는 갓 태어난 상우를 사랑스럽게 안아 재우던 행복한 내 모습도 그려져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진즉부터 자기방에서 혼자 자기 시작한 상우에게로, 아이가 깰까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하염없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는 내 모습도 그려져있다.

상우가 아기 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뒷부분은 실감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벌써 15년이 훌쩍 지나 책 속의 여러 장면을 그대로 거쳐왔던 걸 느끼니, 앞으로도 이와 같겠지 생각한다. 특히, 잠 깨우지 않으려, 방문을 빼꼼히 열고 살금살금 들어가는 어머니 모습은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아이는 ‘잠잘 때가 제일 예쁘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라는 생각도 한다.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보며 살며시 이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른다.

앞으로도 이와 같겠지…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앞서 수고롭게 애써주신 수많은 우리 어머니들의 노력으로,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교육혜택을 받으며 잘 지내왔고 앞으로 수년은 학교의 수업을 받으며 스무살까지 내 품에서 잘 자라리라고 믿는다. 그 이후 이 책에서 아들은 이삿짐을 들고 부모 품을 떠나 독립한다. 가정도 꾸리고 예쁜 딸도 낳는다.

우리 상우는 어떻게 지내는게 좋을까?

이 질문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에 내 현실을 빗대어 스스로 감동을 깨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다. 한 번 쯤, 나는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 로버트 먼치 씨가 우리 아이들을 안다면, 가장 이상적인 우리 아이들의 성인기의 생활은 어떻게 그리셨을까? 라고.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서울시청 앞에서는 발달장애아부모님들의 집회가 있었다. 점점 따가워지는 햇볕 아래 1인 시위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동영상과 기사를 통해 그 날의 일들을 전해들은, 집회에 못 갔던 어머니들도 마음 아파하고 먹먹해했다.

우리 아이들은 만 19세가 되면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 주간보호센터의 보호가 마감된다. 그 이후의 아이들의 생활은 막막하다. 스스로 독립할 수도 없을 것이고, 직장을 갖기도 쉽지 않다.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는 일도 없을 것이고, 많은 성인 발달장애인들의 생활은, 많지 않은 센터의 혜택을 받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점점 늙어지는 부모와 함께 종일 집에서 보낸다고 한다.

대학 때, 구청에서 하는 자원봉사 교육을 들은 적이 있다. 교육내용 중 아직도 생각나는 이야기 하나. 나즈막한 산을 오르던 한 귀부인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안타까워 입고 있던 모피코트를 어깨에 걸쳐주었다고 한다. 강사는 우리에게 질문했다. “이 귀부인이 해준 일,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백만원이나 하는 모피코트를 그 자리에서 벗어주고 간 그 분의 선행에 칭찬해야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강사의 다음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귀부인은 자신의 비싼 옷을 벗어주고 흡족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휠체어를 타고 계신 분 입장에서 생각해볼께요. 그 분은 사지가 모두 불편하셨습니다. 손목 아래가 없던 이 분에게 당시 가장 필요했던 것은, 가스레인지였습니다. 그런데 불을 켤 때 손잡이를 잡고 원으로 돌려야하는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손가락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는 버튼식으로 된 가스레인지였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자 할 때는,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알아서, 제대로 된 도움을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 모피코트를 선물 받았으니, 그 장애인은 모피코트가 마음에 들어 직접 입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모피코트를 팔아서 돈으로 만들어 가스레인지를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가스레인지 하나보다는 모피코트를 받는게 가격적으로는 훨씬 이익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옷을 팔기로 하고 가스레인지를 사기로 했다면, 그 옷을 현금화하여 돈으로 만들기 위해, 절차가 꽤 복잡해질 것이다. 어디에 팔아야할지도 알아보아야할 것이고, 새로 드라이도 해야할 것이고, 매수자가 생겼다 해도 직거래를 할지, 택배로 보낼지, 택배라면 물건을 보내고 돈을 송금받을지, 송금을 받고 물건을 보낼지, 제대로 다 팔았다 하더라도, 이제는 은행에 가서 송금된 돈을 찾아 가스레인지를 사서 집에 설치해야할 일이 남는다. 이 모든 절차는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도 하나 하나가 쉽지만은 않은 과정들이다.

내 감정에 취해,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주는 도움은 제대로 된 도움이 아니라는 것, 상대방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적합한 도움을 주는 것이 사회봉사의 기본이라는 것을 그 시간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부모님들의 요구는 단순하였다. 모피코트 대신, 가스레인지를 주십사고 읍소하는 것.

이렇게 맞추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데, 그 기준에 맞추어봐라 라는 말씀에, 우리는 이렇게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다. 귀기울여 들어주십사고, 우리는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늘 속으로만 부르던 나만의 노래가 있다. 사실, 밝히고 나면 나만의 노래가 아니게 될 것이고, 말하지 않던 속마음도 드러나게 될 것이지만... 아들의 장애를 알고 힘겨울 때마다,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 하나는, 김경호 씨의 ‘금지된 사랑’이다.

우리 엄마들에게,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말은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로버트 먼치의 동화속 세상에서 책 속의 아기는 자라서 독립하여 가정을 이루고 딸을 낳았다.

우리 아이의 미래도 암울한 걱정 없이 한 번 그려보고 싶다. 의무교육기간이 끝나 성인이 되어도 집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나의 사후에도 돌보아줄 수 있는 시스템을, 내가 살던 동네에서 멀리 떠나 격리되지 않고, 태어나고 자란 지역사회 속에서 계속 살며 성장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려본다.

자꾸만, 스스로 작아지려는 내 자신에게,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 ‘눈먼 소년이 어떻게 돕는가?’에서 진기의 말을 떠올리려 애쓴다. 그리고 딸 캐롤의 지적장애를 용감히 밝혀 미국사회의 발달장애인의 삶을 크게 바꾼 펄 벅 여사가 그녀의 책 ‘그들이 가져다 준 선물’에서 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지적장애아’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우리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지적장애아를 다른 아이들과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장애 아이들도 누구나 다 자기만큼 운 좋은 것은 아님을 배워야 하고, 그만큼 운이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녀는 장애아들이 ‘사랑이라는 무형의 재산’을 포함한 위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선물은 널리 고루 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펄 벅은 미래를 그리며 튼튼하고 능력있는 사람뿐 아니라 가장 약하고 가장 무력한 사람까지도 감싸는 ‘확장된 가족’으로서의 공동체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평생 정신적 장애나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인종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일했고, 아시아 10여개 나라에서 2만5천명이 넘는 미국인과 동양인의 혼혈 아이들에게 의료혜택과 교육기회를 제공했다.

그녀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요즘 내가 느끼는 생각에, 왠지 세상은 ‘진정한 슬픔을 아는 사람에 의해서, 좋은 쪽으로 변화해가는’게 아닌가 싶다.

그녀는 또 부모들에게 들려준다.

“내가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여러 해에 걸쳐서, 오랜 세월 동안 배워 온 것이고 아직도 배우고 있는 사실이다. 당신의 아이가 당신이 바란 대로 건강하고 멀쩡하게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몸이나 정신이, 아니면 둘 다 부족하고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더라도, 이 아이는 그래도 당신의 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아이에게도 그것이 어떤 삶이든지 간에 삶의 권리가 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서 부모가 그 행복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이 아이는 당신 자신과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이다. 아이를 위해, 아이와 함께 아이의 삶을 완성해주는 데에서 틀림없이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알기 때문이다.” <펄 벅/자라지 않는 아이/양철북에서 발췌>

우리 아이들이 우리가 사는 지역 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가고 성장해가는 미래를 꿈꾸며, 엄마들은 작은 발걸음을 하나씩 하나씩 떼어가본다. 쉽지 않지만 조금씩 만들어가며 펄 벅 여사가 해왔던 일을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해 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우리처럼 아이의 장애를 발견하게 될 젊은 엄마들은, 그 고통과 절망감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희망을 갖고 미래를 그려볼 수는 있게 될 것이다.

펄 벅 여사는 그녀가 안다고 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슬픔에 침잠하지 않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인류에게 ‘사랑’이라는 무형의 재산을 선사할 용기와 당당함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면, 분명 이 슬픔의 의미도, 우리 아이들의 의미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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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맘이자 새로운 세계, 장애아동을 키우는 삶에 들어선지 10년째다. 아들이 네 살 때 발달장애인 것을 인지하고 1년 휴직하며 아이 교육에 힘쓰는 한편 아이의 장애등록에 따른 고심과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 등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장애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오래 가는 “길 장(長), 사랑 애(愛)” 임을 깨닫게 된다.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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