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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약하고, 소외되고, 아픈 아이들을 만나다

음악치료사 8년, 아이들에게서 삶의 이유 배워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6-04-14 14:37:02
내가 음악치료사로 일한 지는 팔 년이 조금 넘는다. 말에 귀 기울이지 않던 아들이 노래만 불러주면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단지 아들을 직접 가르쳐보려는 목적으로 치료사 과정을 공부하였었다. 그러다 지인의 추천으로 일을 시작하였고, 복지관이나 일반학교 특수학급 등에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아들이 아홉 살 때까지도 자발어를 표현하지 못했던 중증발달장애였고 온종일 일상의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습하고 공부했기에, 여러 장애학생들을 대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치료실 안은 교육적 과정과 도구가 갖추어져 있고, 초기 몇 회기 동안 관계만 잘 형성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안정되게 발전되므로,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일상생활보다 더 쉬울 수도 있었다.

그래서 40분 수업 후 10분 상담으로 부모님들을 만날 때도, 그들의 현실적 어려움들을 더 가까이 파악하고 조언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들과 신뢰가 형성되면 아이에게 함께 집중할 수 있으므로, 생활 속의 치료로 이어져 발달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가족들이 아이 한 명에게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들이 있다. 조부모 가정 또는 부모도 발달장애이거나 만성질환 상태인 가정, 그리고 생활시설에 의탁된 아이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전까지는 언론매체에 보도되는 정보를 통해서만 막연히 시설이 열악하다거나 혹은 천사 같은 아이들과 선생님들만 있을 거라고 단순히 여기다가, 직접 복지현장을 왕래하면서 내가 가졌던 선입견을 해소하고, 현실적인 상황들을 알아가게 되었다.

생활시설에 들어온 아이들의 사연은 여러 가지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영양이나 위생, 그리고 생활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아이가 시설에 입소한 후, 처음엔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낯을 가리고 예민했으나 일 년 정도 지나서는 볼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표정과 행동도 밝아진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만성질환 상태의 아버지와 살면서 치료나 교육이 되지 않아 떼쓰고 우는 것으로만 해결하려던 아이가 안정된 태도와 표현이 가능해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명절이나 방학 때는 원가족에게 돌아가는 긴 외출도 가능하므로 아이들은 드라마처럼 따뜻한 가정을 꿈꾸며 그 날들을 기다리는데, 막상 며칠 간 다녀와서는 얼굴이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깔끔한 새 옷에 고급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갔었는데 돌아올 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오는 경우도 있고, 언어표현이 가능한 아이들은 실망감을 말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집에 가니까 기분이 어땠어?”
“그냥 그랬어요. 하루 종일 집에 있었어요. TV 보고 ...”
“음식은 뭐 먹었어?”
“라면 먹었어요. 엄마는 술 마시고요.”

경계선급의 지능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이들은 혼란스런 가정 속에서 상처가 더 깊게 각인되고, 해결하기 어려운 자존감의 문제로 갈등하게 된다. 그나마 차선으로 시설에 입소하게 되면 적어도 폭언이나 방치 등 불안정한 환경을 벗어나 적절한 영양식단과 의복관리, 규칙적인 생활의 안정 등을 얻을 수 있다. 일 년, 이 년, 그리고 성인기까지 심리적 안정과 적절한 교육을 받은 후 취업이나 결혼 등으로 독립하는 사례들도 있다.

물론 복지시설이 최상의 환경은 아니다. 위기 가정에 방치되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차선으로서의 대안이며, 위기 가정이 아니더라도 장애아를 키우면서 심리적 수용이나 교육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불안정한 가정보다는 현실적으로 나은 환경이라 볼 수 있다. TV 뉴스에서 간혹 보도되는 극단의 사건들은 지극히 소수이며, 대부분의 시설들은 안정되고 인격적인 관계들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영양사, 간호사, 언어치료나 물리치료사 등이 배치되어 규칙적인 건강관리도 병행된다.

다만 보육사 한 명이 동시에 여러 명의 중증장애인을 돌봐야하기에, 종일 대소변 묻은 빨래를 처치하고, 학교과제와 준비물을 챙기고, 바깥놀이와 식사지도와 함께 아이들 간의 다툼을 해결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에 지치기 쉽다.

기초생활비는 정부에서 지원되지만, 개별적 재능과 욕구를 채워주려면 후원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의지하여야 하므로, 시설마다의 차이도 크고 불안정한 복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권적 측면에서 단체생활의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자유와 선택, 취향 등이 배제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근래에는 그룹홈 등 일반주거 형태로 복지의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스스로 의사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여 적절한 보호와 재활이 병행되는 주거환경이 점차적으로 마련된다면 가장 바람직한 형태가 될 것이다.

나는 치료사로서의 일을 통해 위기 가정의 문제와 복지시설의 현실 그리고 자립형태의 대안까지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단지 내 아들 하나 잘 키워서 장애극복을 이루려던 좁은 시각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마라톤과 수영, 음악과 미술 등의 각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으로 발달장애인의 가능성을 대중에게 알렸던 선배부모님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또한 최근에 아들과 둘이서 수차례의 전국도보로 중증발달장애인의 실상을 알렸던 아버님께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며칠 전 경찰공무원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죽음을 택한 사건, 그러한 일들이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드물지 않다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자녀 나이 스무 살 정도까지는 대부분의 부모가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교육하고 책임질 수 있다고 하나, 이후 60, 70세까지 이르는 긴 성인기는 늙어가는 부모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즉, 위기 가정의 범위는 장애자녀를 가진 모든 가정으로 자연히 확대된다.

그렇기에 이제는 ‘내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라는 절망으로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움켜잡게 해서는 안된다. ‘넌 나보다 오래, 행복하게 살 것이다.’를 외치며,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놓고 떠나야 한다.

나는 내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약한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약하고, 더 소외되고, 더 아픈 아이들이 매일 내게 다가와 해맑은 미소로 삶의 이유를 가르쳐주었다.

‘그래, 너희들이 행복한 세상에서는 아무도 불행한 이가 없겠구나. 너희는 말하지 못하고, 글도 모르고, 남들 위에 설 줄도 모르지만, 존재 그대로 최고의 가치를 가르쳐주는구나. 너희들, 나의 가장 약한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가 곧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사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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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석주 (nadanas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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