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시 아이와 기내탈출이 가능하십니까? . ⓒ은진슬

지난 3월 말, 자료 조사 및 취재가 30%, 아이와의 여행이 70% 정도인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인 만큼, 항공사 선정에서부터 여행자보험 선택까지 여러 모로 꼼꼼하게 신경 쓰며 준비했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여행 준비 과정 중 나로 하여금 한 번 더 장애부모로서의 자괴감을 경험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첫 비행인 아이가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키즈밀도 예약하고, 시각장애를 가진 내 입장에서 승무원에게 도움을 받거나 아이를 돌보기 수월하게 통로 측 좌석쪽으로 자리도 배정받았다. 당연히 Blind escort 서비스도 요청했다.

그런데 이 요청이 들어간지 2, 3일 후 시간도 아주 어색한, 항공사 근무시간이 훨씬 지난 저녁 8시가 다 된 시각에 항공사 지상직원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직원: “안녕하십니까? J항공입니다. *월 *일 J***편 김포-하네다행 이용하시죠? Blind escort 서비스를 신청하셨기에 몇 가지 확인사항이 있어 연락 드렸습니다.”

나: “네, 말씀 하세요.”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질문들은 아래와 같았다.

‘정말 하나도 안 보이느냐, 기내식은 혼자 먹을 수 있느냐, 화장실은 혼자 갈 수 있느냐.’ 장애인 승객에 대한 각각의 장애 특성에 따른 이해나 구조적인 서비스 매뉴얼 같은 것이 거의 전무한 우리나라나 일본의 항공업계 실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미 여기까지 듣고도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나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이런 것부터 물어볼 수 밖에… 하지만, 압권은 바로 다음 질문이었으니…

“비상시, 아이와 기내 탈출이 가능하십니까?”

이미, 전에 받은 질문들 때문에 화가 난 상태에서 최대한의 사회성을 발휘하여 불쾌감을 참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질문이 이 정도 수위에 이르자 결국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책임소재에 대한 이슈도 있고,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지도 알겠는데요’.”

“비상시 아이와 기내 탈출이 가능할지, 아닐지의 문제는 닥쳐봐야 알 것 같은데요? 이 문제는, 부모가 장애가 있어서 탈출이 불가능하고, 장애가 없어서 탈출이 가능하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비상 상황에서 엄마가 이미 다쳤다거나, 너무 두려운 나머지 멘탈붕괴에 빠진다면 비장애 부모라고 해서 아이와 함께 탈출할 수 있다고 100% 장담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 비상상황 발생시 승무원들이 노약자나 장애인, 어린이 등의 탈출을 먼저 돕는 것이 우선수칙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이 부분이 저희의 탑승에 문제가 될까요?”

아마도 장애인이 유아와 함께 이 항공사의 비행기에 탑승한 사례가 전혀 없었던 모양인지, 그야말로 항공사가 긴장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죽하면 며칠 전에 티켓 예약과 발권을 진행했던 또 다른 J항공사 직원은 Blind escort를 요청하는 나에게 사정하듯 “설마, 아예 안 보이시는 건 아니죠?”라고 묻기까지 했으니까.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름 이해도 간다. 눈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엄마의 케어를 받아야 하는 유아까지 동반하고 국제 비행을 한단 말인가? 이런 부분을 나름 감안하여, 내가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한계 설정까지 해서 설명을 해 두었는데도 다시 이런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내게 전화한 직원은 분명히 티켓 발권을 진행한 직원으로부터 내 요청에 대한 메모를 받았을텐데, 내가 화장실 가는 걸 도와 달라거나 밥을 먹여달라고 한 적은 없다. 내 요청사항은 공항 체크인을 하고 나면 탑승 게이트 번호를 볼 수 없으니 탑승 게이트까지 안내해 달라는 것, 기내에서 비상구와 화장실의 위치를 언어적 방법으로 설명해 달라는 것, 기내식 등이 나오면 컨테이너에 담겨 있는 음식의 종류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어떤 음식이 제공되었는지를 알려 달라는 것 정도였다. 이 정도는 국제적으로 대부분 표준화되어 제공되고 있는 수준의 서비스이다.

사실 통화 당시에도 너무 불쾌하고 모멸감이 느껴져서 클레임을 걸고 다른 항공사 항공편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현실적으로 일정도 너무 촉박했고, 다른 항공편 좌석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대한민국 장애인 생활 40년으로 단련된 사회성 탁월한 포커페이스로 교양 있게 통화를 마무리 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갈등회피형에 이젠 아이까지 생긴 아줌마이니 좀 불합리해도 적당히 타협하며 둥글둥글하게 살자는 것이 인생철학이 되어 가고 있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자꾸 그 직원의 인권감수성 0에 가까운 질문과 당시에 느꼈던 불쾌함과 답답함과 모멸감의 잔재들이 밤마다 내 신경을 갉아먹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백 번 이해하며 생각을 해 봐도, 과연 비장애엄마가 항공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에 생각이 미치자 모멸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내 돈을 내고 비행기를 타는데, 이런 취급까지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에 내가 통화를 하면서 그들에게 전달 받은 간접적인 메시지는, ‘당신이 만약 완전히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라면, 아이까지 동반하고서는 이 비행기를 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직접적으로는 소송 등의 문제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들도 그것을 알기에, 내가 비상탈출 문제에 대해 냉정하고 차분하면서도 다소 날이 서서 답변하는 것을 듣고는 무언가 잘못될 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오해하지 말라며 상황을 얼렁뚱땅 정리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아이가 항공기 기내식을 먹고 있다. ⓒ은진슬

하루하루 더 나빠져 가는 내 감정을 추스르며 칼럼을 쓰기 위해 냉정함을 잃지 않고 균형감을 찾고자 일본인 친구와 이 문제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에 따르면 일본인의 꼼꼼한 성향과 기업문화 특성상, 질문의 방식은 잘못되었지만 잘 모르는 사항에 대해 서비스를 잘 하기 위해 화장실은 혼자 갈 수 있느냐, 기내식은 혼자 먹을 수 있느냐 등은 물어볼 수 있을 법도 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고객의 입장이었다면, 나한테 신경을 많이 써 주는구나, 서비스를 잘 해 주는구나 라는 식으로 생각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다는 의견도 주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편치 않고 불쾌했다는 건, 자기도 잘 몰랐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다고… 그런데 비상시 아이와 기내 탈출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도 웃음 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그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역시 이런 문제들은 문화적 차이, 국민성, 시스템의 차이 등으로 관점이 다소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를 잘 한 것 같다고, 이 문제에 대해 니가 원하는 대로 영문으로 편지를 써도 좋고, 만약 일본어로 하고 싶다면 자신이 번역을 도와주겠다고 훈훈하게 우리의 심도 깊은 토론을 마무리 했다.

그렇다면, J항공사 직원이 나에게 어떻게 질문하고 응대했어야 했을까?

사내 매뉴얼도 없고, 시각장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거든, “고객님의 Blind escort 요청을 확인하고 전화 드리는데, 어떤 부분을 도와 드리면 될까요?”라고 열린 질문을 던지는 정도면 충분하다.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 멀쩡하지도 않은 사람이 아이와 함께 탑승하겠다고 하니, 이에 따른 Liability issue가 걱정되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인권감수성이 0에 가까운 모멸감이 느껴지는 질문을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건 정말 아니다.

나도 좀 비열하게 딴죽을 걸어 볼까?

내가 유학시절부터 숱하게 혼자 비행을 했어도, 라이프 제킷은 어디에 있는지, 가장 가까운 비상구의 위치는 어디인지, 산소마스크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등의 탈출방법에 대해 비상시 탈출요령에 관한 영상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직접 대면으로 설명해 준 항공사는 미국계 항공사 한 곳 밖에 없었다.

그 어떤 항공사도 내게 그런 걸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았으면서 나한테 책임만 지라고 한다. 확실히 늘 부르짖고 다니지만 항공사, 호텔, 마트, 은행 등의 서비스업계의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Daily-base로 이용하는 서비스업계나 공공기관 등의 직원들은 이러한 장애고객 응대 서비스 및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을 CS연수의 일환으로 의무적으로 이수하게끔 하는 법안 발의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10년 전쯤, 싱가포르로 자유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산토사섬에 무작정 혼자 가서는 머라이언파크 안에서 어디부터 어떻게 돌아다녀야 할지 잘 몰라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그 직원은 무전기로 지금 시각장애 관광객이 와서 그런데, 자신이 지금부터 업무에서 잠시 이탈하여 이 관광객을 안내하여 투어를 마치게 한 후 복귀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다.

솔직히 내가 그렇게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사람이 특별히 ‘Born to be kind’가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사람은 내가 머라이언파크를 관광하기 위해 일정 금액을 지불했기에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정말 머라이언의 박물관과 전망대를 다 돌 때까지 안내를 해 주고, 만져볼 수 있는 건 만져 보게도 해 주고 사진까지 찍어 주었다.

이 싱가포르인과 J항공사 직원의 차이가 뭘까?

그건 바로 지금 자신 앞의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관계없이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럴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이 사람이 돈을 내고 왔어도 장애가 있으면 그럴 권리가 제한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의 차이인 것이다.

결국 내가 J항공사로부터 받은 어처구니없는 질문의 본질은 과연 장애부모에게 부모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 더 나아가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던지는 ‘부모의 자격’, ‘부모의 조건’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나는 시각장애로 인해 또 다시 나의 부모로서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 당한 것이고, 이 인권감수성이 0에 가까운 한국 땅에서 아이와 함께 질시 당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그들이 원하고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몸소 부모 자격을 입증하는 길 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악보도 못 보는 네가 어떻게 피아노를 치느냐, 공부를 할 수 있느냐, 내 수업 말고 다른 수업을 들으라고 말하는 교수님들에게 늘 All A의 아름다운 성적표로 그들의 회의를 잠재우며 살아야 했던 나였다. 내 능력에 대한 그들의 회의를 불식시키는 ‘입증책임’은 늘 나에게 있었으니까.

앞으로 비행기를 타고자 할 때에는 Blind escort 서비스를 요청하기 전에 아이와 함께 탈출 시연이라도 보여 주어야 할 판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눈이 나빠 아이가 비상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기에, 얼마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재난안전체험관에 아이를 데려가 실제와 유사한 태풍, 화제, 지진 상황 등에 자주 노출 시키고 있기는 하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긴 글을 마무리하며,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엄마, 아빠들께 묻고 싶다.

‘비상시 아이와 기내 탈출이 가능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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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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