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안녕, 제발 나 좀 봐 주세요! ⓒ은진슬

오늘도 평소처럼 이응이 등원 준비를 마치고 아파트 현관에서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후 차가 도착했고, 이응이는 승차를 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쉬가 너무 급한 나머지 선생님과 내려서 아파트 화단에서 쉬를 해야만 했다. 선생님은 안전을 위해 차량 문을 닫고 원장 선생님이 나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2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응이보다 두어 살쯤 많아 보이는 누나가 차 창문을 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얘가 안녕 해요.’

차량을 등지고 나와 마주 서서 얘기를 나누던 원장 선생님이 얼른 뒤돌아 차문을 열고 이응이를 보니 안쪽에서 나를 바라보며 계속 안녕을 해도 내가 반응이 없자 서운해서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있더란다.

나는 얼른 ‘엄마가 선생님과 얘기 하다가 못 봤어. 미안해!’ 라고 말했고, 이응이는 다시 큰 소리로 ’엄마 안녕!’ 을 외쳤다. 어린이집 차는 쉬를 다 한 아이를 태우고 곧 출발했다.

슬펐다. 미안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오픈하고 가르쳐 주었다 해도 아직은 엄마가 눈이 나빠 특정 상황에서는 잘 볼 수 없다는 복잡한 인과관계까지 헤아리는 건 쉽지 않은 다섯 살 이응이. 얼마나 서운했으면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을까?

어린이집 차는 얼른 떠나야 했고, 아이들 앞에서 조곤조곤 평소처럼 설명해 줄 여유도, 상황도 못 되어 그렇게 보내 놓고는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나도, 아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그저 아이가 자연스럽고 덜 아프게 엄마의 장애로 인한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무던히도 애를 쓰고는 있지만, 이런 상황에 마음 아프고 미안한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감정에 몰입하는 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기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의 타고난 이성과 실용주의적 사고에 나의 아프고 미안한 마음들을 희석시켜 아이와 나를 위한 멋진 마법의 묘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묵묵히 나의 가장 아프고 연약한 속살을 드러낸 채 아이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은진슬

아이가 하원해 돌아오면 나는 아이와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응이가 엄마에게 그렇게 열심히 안녕이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는데, 엄마가 바라봐 주지 않아서 많이 속상했지? 엄마가 이응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것 같아 미안해!’

‘그런데, 엄마 눈이 너무 나빠서 동화책의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점자 동화책을 읽어 주는 거 이응이도 알지? 아침에도 이응이가 차 안에서 엄마에게 열심히 인사를 했지만, 엄마 눈에는 그게 이응이 동화책 속의 작은 글씨들처럼 보이지 않았던 거야. 엄마랑 밖에 나갔을 때, 이응이 눈에는 보이는 버스 번호를 엄마가 못 봐서 우리가 타려던 버스가 그냥 가 버려서 이응이가 말해 줬잖아? 그 때와 똑 같은 거거든. 어린이집 차 문도 모두 닫혀 있어서 이응이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응이가 엄마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어.’

아무리 연습하고 또 연습을 해도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인줄 아는 3, 4세 아이에게 나의 부족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며 이해를 구하는 일은 결코 쉬워지지도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이 쓴 잔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3, 4세 유아인데 아직은 눈 가리고 아웅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불편함과 아픔을 나중으로 미루어 그것을 더 키우거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뿐이라는 걸 알기에 오늘도 나는 묵묵히 피아니스트가 매일 매일 끊임없이 고난도의 연습곡을 연습하는 심정으로 나의 가장 아프고 연약한 속살을 드러낸 채 아이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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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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