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소처럼 이응이 등원 준비를 마치고 아파트 현관에서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후 차가 도착했고, 이응이는 승차를 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쉬가 너무 급한 나머지 선생님과 내려서 아파트 화단에서 쉬를 해야만 했다. 선생님은 안전을 위해 차량 문을 닫고 원장 선생님이 나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2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응이보다 두어 살쯤 많아 보이는 누나가 차 창문을 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얘가 안녕 해요.’
차량을 등지고 나와 마주 서서 얘기를 나누던 원장 선생님이 얼른 뒤돌아 차문을 열고 이응이를 보니 안쪽에서 나를 바라보며 계속 안녕을 해도 내가 반응이 없자 서운해서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있더란다.
나는 얼른 ‘엄마가 선생님과 얘기 하다가 못 봤어. 미안해!’ 라고 말했고, 이응이는 다시 큰 소리로 ’엄마 안녕!’ 을 외쳤다. 어린이집 차는 쉬를 다 한 아이를 태우고 곧 출발했다.
슬펐다. 미안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오픈하고 가르쳐 주었다 해도 아직은 엄마가 눈이 나빠 특정 상황에서는 잘 볼 수 없다는 복잡한 인과관계까지 헤아리는 건 쉽지 않은 다섯 살 이응이. 얼마나 서운했으면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을까?
어린이집 차는 얼른 떠나야 했고, 아이들 앞에서 조곤조곤 평소처럼 설명해 줄 여유도, 상황도 못 되어 그렇게 보내 놓고는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나도, 아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그저 아이가 자연스럽고 덜 아프게 엄마의 장애로 인한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무던히도 애를 쓰고는 있지만, 이런 상황에 마음 아프고 미안한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감정에 몰입하는 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기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의 타고난 이성과 실용주의적 사고에 나의 아프고 미안한 마음들을 희석시켜 아이와 나를 위한 멋진 마법의 묘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하원해 돌아오면 나는 아이와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응이가 엄마에게 그렇게 열심히 안녕이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는데, 엄마가 바라봐 주지 않아서 많이 속상했지? 엄마가 이응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것 같아 미안해!’
‘그런데, 엄마 눈이 너무 나빠서 동화책의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점자 동화책을 읽어 주는 거 이응이도 알지? 아침에도 이응이가 차 안에서 엄마에게 열심히 인사를 했지만, 엄마 눈에는 그게 이응이 동화책 속의 작은 글씨들처럼 보이지 않았던 거야. 엄마랑 밖에 나갔을 때, 이응이 눈에는 보이는 버스 번호를 엄마가 못 봐서 우리가 타려던 버스가 그냥 가 버려서 이응이가 말해 줬잖아? 그 때와 똑 같은 거거든. 어린이집 차 문도 모두 닫혀 있어서 이응이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응이가 엄마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어.’
아무리 연습하고 또 연습을 해도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인줄 아는 3, 4세 아이에게 나의 부족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며 이해를 구하는 일은 결코 쉬워지지도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이 쓴 잔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3, 4세 유아인데 아직은 눈 가리고 아웅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불편함과 아픔을 나중으로 미루어 그것을 더 키우거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뿐이라는 걸 알기에 오늘도 나는 묵묵히 피아니스트가 매일 매일 끊임없이 고난도의 연습곡을 연습하는 심정으로 나의 가장 아프고 연약한 속살을 드러낸 채 아이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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