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한 해 한 해 자라면서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워 간다. 갓 태어난 신생아는 엄마가 천장에 달아 놓은 흑백모빌을 보면서 ‘보는 법’을 배운다.

두 살이 된 아기는 빅블럭을 가지고 놀면서 세상의 고운 색들에 대해 알아 가며 공간지각능력을 넓혀 간다. 세 살이 된 아이는 요리놀이, 마트놀이 등을 하면서 상호작용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개념을 배우고, 수 개념과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물건들에 대해 알아 간다.

이처럼 놀이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인 것이다. 그런데, 시각장애엄마로 유아를 키우다 보니, 이렇게 중요한 아이와의 놀이에 있어 나의 시각적 제한성으로 인해 불가능하거나, 함께 해 주기 어려운 놀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아이의 성장과 아이와의 놀이에 있어서의 제한성은 급격한 정비례 관계의 그래프를 그려 갔다. 그래도 아이가 만 3세때까지는 어느 정도 큰 무리 없이 놀이가 가능했지만, 아이의 인지능력과 운동능력 등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는 만 4세가 되니 좀 더 근본적인 고민과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보드게임처럼 장애인의 놀이도 생각해주는 보드게임들이 우리나라에는 언제 나올까. ⓒ은진슬

지난 해 하반기 무렵부터 아이는 보드게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느 엄마라면 우리 아이가 인지적으로 이만큼이나 성장했구나 싶어 관심을 보이자마자 기쁜 마음에 당장 달려가 보드게임을 사주었겠지만, 시각장애 엄마로서는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려하고 준비해야 할 점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 내가 이 보드게임을 아이와 함께 해 줄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놀잇감의 접근성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2.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어떤 추가 조치를 통해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까? (여기서의 추가조치란 보드게임판을 읽을 수 없다면 세*펜 음성녹음 스티커에 게임판의 요소 요소의 텍스트를 녹음하여 보드게임판에 붙인다든지, 세계 국기카드에 점자로 나라 이름을 적어 붙인다든지 등의 조치를 말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고민과 고려 끝에 뱀주사위놀이 수준보다 약간 난이도가 높은 보드게임이 우리 집에 입성했다. 그런데, 휴대용 독서확대기로 보드게임판을 보면서 아이와 게임을 시도해 보았으나,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너무 좁아 그래픽이 현란한 게임판을 조망하는 것도 어려웠을 뿐더러, 빨리 빨리 내가 가야 하는 수만큼 정확하게 말을 옮기는 것도 되지 않아서 내 속이 터지고 답답해 도저히 게임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시각장애 엄마의 아들로 5 년을 살아서인지 막상 아이는 잘 기다려 주는데도 말이다. 결국, 그 날 아이에게 이해를 구했다.

‘이응아! 엄마는 아무래도 이 게임을 너와 함께 하기는 힘든 것 같아. 그러니 미안하지만, 이 게임은 아빠가 퇴근하면 아빠와 하거나 이모가 오실 때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떨까?’

워낙 보드게임을 좋아하고, 기대도 많았던 탓에 처음에는 아이가 못내 아쉬워하며 흔쾌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 더 설명을 하니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오델로'는 돌의 촉감과, 보드의 양각으로 시각장애인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은진슬

그날 이후, 아이가 보드게임이 하고 싶다고 하면 나는 대체 놀이로 ‘오델로’를 제안했다.

오델로는, 흰 돌과 검은 돌의 촉감을 달리 만들고, 보드의 각 칸 역시 양각으로 제작하였으며, 돌들과 보드판에 자력이 있어 서로 붙게 만들어서 시각장애인들도 촉지를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다. 물론, 아이는 오델로를 지난 여름방학부터 조금씩 해 오고 있던 터라 약간의 핸디캡만 부여해 주면 이제 제법 나랑 재미있게 즐길 정도는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드게임을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아이가 음각으로 표시된 왕주사위 하나를 들고 와서는 나에게 매우 특이하고 기발한 제안을 했다.

‘엄마! 우리 이 주사위를 던져서 숫자가 나오면 우리가 그 숫자만큼 걸어가서 우리 집 끝까지 누가 먼저 가는지 해보자요.’

그렇다. 이 아이의 말인 즉슨, 우리가 인간 말이 되어 우리 집을 보드게임판 삼아 몸으로 하는 보드게임을 해 보자는 것이었다.

엄마가 실제 보드게임에서는 말과 게임판의 글씨도 못 봐서 게임이 안되지만, 이렇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세 살 때 큰 도형 주사위를 가지고 삼각형이 나오면 세 발, 사각형이 나오면 네 발씩 뛰어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면 이기는 놀이를 해 주곤 했었는데, 그걸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확히는 그 작은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의 말대로 해 보니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물론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이와 나와의 신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핸디캡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던진 주사위의 수에서 1, 2 정도를 빼면서 게임을 진행했다. 늘 그랬듯이, 아이는 엄마의 결핍 때문에 생긴 문제를 나름의 자생력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해결하고 있었다.

대학 후배이자, 육아 대선배인 친구가 물려준 점자국기카드로 인해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게 되었다. ⓒ은진슬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우리 아이가 꽂혀 있는 또 하나의 놀이는 세계 국기카드를 가지고 어느 나라 국기인지, 그 나라 수도는 어디인지, 면적은 얼마인지 등을 맞히는 놀이이다.

내가 아예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 1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색깔과 형태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것도 결코 쉬운 놀이는 아니다.

이런 게임은 눈으로 보고 스피디하게 맞히며 진행하는 것이 게임의 묘미인데, 그게 안 되는 건 마찬가지. 게다가 유럽에 많이 있는 삼색기들이나 영국령의 나라들의 국기 등은 그게 그거 같아 구분도 어렵다.

그래서 아이와 국기 맞히기 놀이를 할 때, 나는 어차피 점자로 쓰여 있는 국가 이름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는 눈으로 보고 국가를 맞히고, 나는 점자로 국가 이름을 확인한 다음에 수도를 맞히는 걸로 규칙을 변형해서 놀곤 한다.

그 덕분에 아이는 전 세계 국기에 해당하는 나라뿐만 아니라 수도까지도 거의 다 알게 되었다. 전 세계 국기카드가 200 장 가까이 되니 거기에 점자를 다 찍으려면 엄청 힘들었을텐데, 다행히 우리 아이가 국기에 관심을 보인다는 말에, 대학 후배이지만 세 아이를 키우는 육아 대선배인 친구가 먼저 점자를 찍어 놓은 국기카드를 내게 흔쾌히 물려주어 재미있게 가지고 놀고 있다.

그 카드를 보고는 그 친구도 어지간히 열심히 노력하는 열혈 장애아빠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면을 빌어 내 노력을 경감시켜 준 후배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장애부모의 장애 영역 및 특성에 따라 유아와의 놀이에 있어 느끼는 제한성과 불편함은 다를 것이다. 지체장애 부모에게는 몸놀이나 바깥놀이에 대한 제한성이, 청각장애 부모에게는 끝말잇기나 노래하기 등의 언어 및 음악 놀이에 제약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대처 방법도 천차만별일 것이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이와의 놀이상황에서 장애로 인한 장애물에 봉착했을 때, 그 상황에 대처하는 장애부모의 자세와 방법론이 아이가 장애부모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전술했던 보드게임 상황에서 ‘엄마는 이 놀이를 할 수 없으니 이모나 아빠랑만 하자.’라고 말하고는 내가 하기 어려운 놀이들에 대한 대체놀이나 대안 모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이는 엄마를 무능력한 존재, 혹은 나와 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등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엄마와의 친밀도도 약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엄마인 나 역시 아이와의 놀이를 함께 하지 못하면서 엄마로서의 유능감과 자기 효능감에 회의를 갖게 되고, 결국에는 전반적인 육아에서 늘 2인자나 주변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하기에 우리 장애 부모들은 각자의 장애 특성에 따른 ‘대체놀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체장애로 신체 놀이가 어렵다면, 아이와 보드게임이나 적절한 E-sports 같은 대안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청각장애로 소리를 매개로 하는 놀이가 어렵다면, 종이접기나 그림 그리기 등의 미술 놀이를 통해 아이와 즐겁게 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장애로 미술놀이나 신체놀이가 어렵다면, 촉감을 활용한 요리놀이나 클레이 놀이, 눈 감고 손으로 만져보고 물건 알아맞히기 놀이 같은 걸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유아 대상 장애의 이해 교육 체험 모듈을 만들려고 별 생각 없이 우리 아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촉감만으로 물건 알아맞히기 놀이를 진행해 보았는데, 의외로 아이가 무척이나 재미있어 해서 지금까지 좋은 놀이 아이템이 되어 주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끊임 없는 노력과 함께, 장애부모라면, 아이가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최고로 잘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나름의 필살기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이와의 특정한 놀이이건, 요리이건, 종이접기와 같은 취미 활동이건, 어떤 것이든 괜찮다.

나의 필살기는 요리이다. 아이는 나의 요리에 “우리 엄마는 집에서 쿠키도 구워 주고, 칠리새우도 만들어 준다.” 라면서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은진슬

나의 경우 요리가 이러한 필살기인데, 우리 아이는 활동보조 이모는 물론, 웬만한 친구들의 비장애인 엄마들, 심지어는 70 세가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법을 공부하고, 새로운 식자재를 사용할 정도로 요리를 정말 잘 하시는 친정엄마보다도 내가 요리를 잘 한다고 굳게 믿고 우기며 자랑스러워 한다.

가끔 친구들 집에 놀러 가 보아도, 활동보조 이모를 보아도 쿠키를 굽거나 칠리새우를 만들고, 수제 돈까스를 만들어 주는 것이 일상적인 것 같지는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듯 하다.

며칠 전, 3주 넘게 독감으로 몸져 누워 있었던 탓에 가족들에게 식사를 잘 못 챙겨 준 것이 못내 미안해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부랴부랴 새우를 튀기고 소스를 만들어 칠리새우를 해 준 적이 있다.

아이가 새우튀김을 엄청 좋아하지만, 가끔 전문점에서 사먹거나 냉동새우튀김 정도 튀겨 주었지 아무래도 직접 만들어 튀기는 건 번거롭고 저시력인 나한테 위험한 부분도 있어 할 줄 알면서도 한 번도 안 해 주었는데, 옆에서 튀긴 새우를 받아 먹어 보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압권이었다.

‘우아! 엄마 새우튀김도 할 수 있었구나! 엄마는 눈도 나쁜데, 어떻게 요리를 이렇게 잘 해?’

‘그건, 요리는 엄마가 좋아하는 일이고, 아빠랑 이응이한테 맛있는 거 먹여 주고 싶으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력하기 때문이야.’

나름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아이로, 균형감각 있는 아이로 잘 조련(?^^)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내 아이조차도 ‘장애’와 ‘할 수 없음’ 내지는 ‘결핍’을 자연스레 연관지어 말하다니… 이건 본능적인 사고 반응인가 싶기도 했다.

이 대화를 계기로 우리 장애부모에게는 필살기 하나는 꼭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좀 더 강화되었다. 이러한 필살기는 아이에게 엄마 또는 아빠가 비록 장애로 다소 느리고 불편한 점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곧바로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몸소 알려 주는 일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나를 잘 돌봐주고 보호해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씨앗을 확실히 제거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런 불안의 씨앗이 있다면 말이다.

결국, 아이들에게 우리의 ‘다름’을 유아기 때부터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면서, 그 ‘다름’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은 놀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유아를 대상으로 한 장애 이해 수업을 진행할 때, 내 아이에게 적용해 가며 만들었던 다양한 놀이 형식의 장애체험 모듈을 적용해 보면서 내가 몸으로 느낀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끊임 없이 아이와 무슨 놀이를 하며 놀까 고민하고, 궁리하는 것이다.

‘이응아! 엄마 글 다 썼다. 이제 같이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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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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