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발. ⓒ은진슬

신생아와 처음 조우한 시각장애 엄마인 나.

다른 엄마들이야 눈이 누구 닮았네, 코가 누구 닮았네 등의 첫 인상과 같은 기억을 이야기 하겠지만, 아이에 대한 나의 가장 강한 첫 인상은 한없이 가녀린 촉감이었다.

특히 내 손가락만큼이나 가녀렸던 아이의 발목과 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한없이 가녀린 발과 발가락. 내가 특별히 발이라는 신체 기관을 좋아하거나, 그에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인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신생아의 발은 너무나도 가녀린 나머지, 나로 하여금 사람의 발이 아닌, 새의 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나, 나는 접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닭발이 떠오르기도 했다.

앞으로 이 아이가 자라면서 기고, 걷고 뛰면서 세상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발이기에, 수유를 하면서, 아이를 재우면서 아이의 한없이 가녀린 발을 만지며 아이의 성장을 그려보곤 했던 것 같다.

이 때의 강렬했던 느낌 때문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문득 잠든 아이의 발을 만져 보곤 한다. 그러면서 이 발의 촉감의 변화를 반추해 보면서 아이의 ‘자람’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기가 돌이 될 무렵까지 아이의 발은 한없이 작고 부드럽고 말랑하여 비현실적인 촉감이었다. 단단한 땅에 단 한번도 발을 디뎌본 적이 없는 완전 무결한 부드러움. 마치 사람의 그것이 아닌 듯한 무결점의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지 18개월쯤, 후기 이유식을 마치고 선선한 가을의 어느 날, 낮잠을 자는 아이의 발은 처음으로 내게 현실적인 촉감을 선사해 주었다. 발바닥의 엄지발가락 아래 동그런 뼈 주변에서 땅을 단단히 딛고 걷는 것을 반복함에 따라 생긴 조그만 굳은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는 촉감이었다.

‘아! 이제 우리 아가도 단단한 땅에 제 발로 굳건히 서서 걷고 뛰고 견디며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겠구나!’

지금껏 건강하게 자라 완전무결하게 부드럽고 말랑했던 아가의 발에 굳건히 땅을 딛는 흔적을 남겨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앞으로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만만치 않을 것을 알기에 밀려 오는 아이 삶에 대한 걱정도 공존하는 오묘한 감정의 물결이었다.

그 후로도 아이의 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점점 커지고, 길어졌으며, 발 뒤꿈치에도 굳은 살이 생기면서 그 영역을 넓혀 갔으며, 점점 나를 닮아 극단적인 칼발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한편, 시각장애 엄마로서 아이가 자라는 것을 느끼는 또 하나의 매력적인 매개체는 ‘소리’였다.

아이가 처음 엄마 아빠와 리액션을 시작하는 경이로운 옹알이는 음악적인 귀를 가진 내게 반주나 협연의 즐거움을 떠오르게 했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자 아이가 자라는 소리는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언어 발달이 빠른 편이었던 아이는, 돌 무렵부터 밖에 나가고 싶다며 문쪽으로 가면서 ‘나’라고 말했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 ‘비’라고 일관되게 말하며 언어적 의사 표현을 빨리 시작했다. 하지만, 두 음절 이상의 단어를 제법 유창하게(?^^) 말하고 있던 17개월 아기는 어찌된 영문인지 아빠는 부르면서도 엄마라는 말은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내 놓지 않았더랬다.

성격이 시크한 편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도, 남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슬쩍 왜 그런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10 월의 어느 멋진 밤, 아이와 함께 수면 의식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기가 엄마’라고 나를 불러 주었을 때…

김춘수 시인의 '꽃' 처럼,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자 비로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은진슬

김춘수 시인이 말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아기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러 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엄마가 되었다. 그 후로, 언어적 감수성과 인지력이 뛰어난 아이는 순간순간 주옥 같은 어록으로 자신의 성장을 입증하며 아이의 자라남에 귀 기울이는 내 귀와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내 이성에 달콤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다.

지난 3 주간 나는 심한 독감으로 그야말로 몸 져 누워 있었다. 며칠간 40도의 고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열이 떨어진 후에도 심한 탈수와 여러 가지 합병증들이 나를 괴롭히는 탓에 아이 때문에 입원만 하지 못했지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누워서 앓고만 있었다.

외동으로 자라고 있기도 하며, 기질적으로도 워낙 상호작용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인데, 평소와 달리 봄방학까지 했는데도 엄마는 아이 옆에서 이불을 깔고 누워 최소한의 언어적 소통만 할 뿐이었으니 아이의 심심함과 불만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생애 처음으로 엄마와 일본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었고, 몇 주 전부터 달력에 X표를 해 가며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여권도 만들고 여행 준비도 함께 해왔는데… 결국, 독감이 점점 더 심해지는 바람에 의사의 진단서를 받아 비행기 티켓을 환불 받고, 일정을 다음 달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큰 맘 먹고 가려던 여행의 설렘 때문에 어른도 실망스러울 판인데, 여섯 살 아이가 얼마나 실망했을지는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앓고 있는 기간이 점점 늘어 감에 따라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 마음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아이는 하루하루 오히려 나를 배려하고 위로하며 혼자 놀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우리 아이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아이가 혼자 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크나 큰 엄마에 대한 배려인지 잘 알 것이다. 혼자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아이를 누워서 바라보다가 너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일어나서 꼭 안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응아! 엄마가 너무 많이 아파서 여행도 못 가게 되고, 놀아 주지도 못해 너무 미안해! 엄마 다 나으면 다음 달에 꼭 일본 여행 가자.’

내 말에 아이는 그 간 많이 심심하고 실망하고 힘들었을 텐데도, 오히려 나를 꼭 안아 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괜찮아. 사과 안 해도 돼!’

지난 3 주간 몸은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아픈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돌보려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든든하고 위안이 되며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자라났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터닝포인트가 문득 찾아오곤 하는데, 요즘이 그런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면서, 지금껏 이 아이가 선사해 준 멋진 성장의 촉감들과 소리들을 떠올리니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또한 앞으로 이 아이가 자라면서 어떤 경이로운 소리와 촉감을 내게 선사해 줄지 진심으로 설레고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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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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