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학교, 도서관, 주민 센터 등 공공시설물의 입구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지안내도가 비치되어 시각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도모하고 있으나, 실상은 눈에 잘 띄지 않거나, 혹은 대상 시설물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될 때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 것은 촉각안내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간과(看過)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법에 규정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은 “시(視)기능의 현저한 저하 또는 손실에 의해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제약이 있는 자”로 장애인복지법 장애등급 판정지침에서는 시력감퇴에 의한 시력장애와 시야 결손에 의한 시야 결손장애로 세분(細分)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시각장애인은 두 눈의 시력이 각각 0.1이하인자, 한 눈의 시력이 0.02이하 다른 눈의 시력이 0.6이하인 자, 두 눈의 시야가 10도 이내인자, 두 눈의 시야가 1/2이상을 상실한 자로 정의하고 있다.

잔존(殘存)시력의 활용여부, 시 기능, 시 효율성 등에 의해 전맹(Blindness)과 저시력(Low Vision)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하면 전맹 시각장애인을 떠올리기 쉬우나, 등록 시각장애인의 90% 정도가 잔존 시력이 있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임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 이란 옛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인체의 오감 중에서 인간이 학습을 하고 여러 가지 환경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기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시각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시각은 어떤 감각기관보다도 발달되어 있어 정상적인 상태에서 사물을 인지하는 작용 중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뮈르(Robert Muir)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가 외부로부터 인지하는 85% 정도는 시각을 통해서고, 10%가 청각, 4%가 후각, 2%가 촉각, 1%가 미각에 의해 인지된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의 지각기능에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며 시각을 상실한 경우에 지각행동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매우 커서 경험의 제약, 보행의 불편, 상황파악의 곤란 등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들 문제점들은 단독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서 밀접하게 상호보완적으로 동시 발생하곤 하는데, 이를테면 보행의 불편은 경험의 기회를 제한하고, 또 왕래해 본 경험이 없는 지역의 보행은 자주 왕래한 지역보다 어렵다.

그런가 하면 주변 상황의 정확한 판단은 보행의 안전과 효율에 매우 중요하며 경험은 상황판단에 요긴한 밑거름이 된다.

시각장애인에게 보행은 단순히 걷는다는 개념과 달리, 환경인지와 신체활동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합쳐진 행동 양상인데, 시각장애인들에게 보행이 어려운 것은 경로의 원활한 파악과 이동경로상의 안전여부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이동 목표로 향하는 경로를 과거의 경험이나 구두(口頭)설명에 의해 이전의 기억과 결합하여 결정하며, 이동경로의 안전은 지팡이나 활동보조인 또는 안내견 등을 활용하여 이동상의 안전을 도모한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수차례 반복에 의한 경험에 익숙해진 경우에는 독립보행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처음 접하는 환경에서는 환경인지와 거리 측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독립적인 보행이 어렵다.

따라서 보행을 위해서는 단순히 이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신체적인 이동 이전에 방향정위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될 때 효율적인 보행이 가능하다.

방향정위 (Orientation)는 시각장애인이 주위 환경을 이해하여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정신적인 과정이다.

자신과 환경의 관계 및 이동하고자 하는 방향을 알기 위하여 잔존 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환경 단서(clue)와 지표(landmark)를 활용하여 방향정위를 구현할 수 있다.

즉 방향정위는 이동이전에 보행을 위한 기본적인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하는 과정으로, 자신은 현재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목적지는 어디에 있는지,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서 어떤 경로로 이동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라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의 독립보행을 위한 각종 보행보조기기에 대해 많은 연구가 수행되고 있으나 대부분 시각장애인의 이동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가장 보편적인 시각장애인의 보행보조기기인 흰지팡이의 경우에도 이동상황에서 제한적인 정보만을 제공해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인 유도 블록과 음향신호기 또한 이동상황에서 방향정보나 위험 신호 등을 제공할 뿐 방향정위에 대한 근본적인 정보는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시각장애인용 편의시설의 대부분이 도심(都心)지역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앞을 보지 못하거나, 사물 및 안내도를 인지하기 어려운 저시력자들을 위한 촉각지도(Tactile Map, 觸知圖)의 개발과 보급, 보편적 이용이 본격화되고 있다.

촉각지도(촉지도, 촉각안내판, 점자지도, 점자안내판 등으로도 표현함)는 시각장애인이 특정 장소로 이동할 때 방향정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신체적인 이동 이전에 ‘현재 자신이 있는 위치, 목적지까지 이동하기 위한 경로’ 등의 보행 정보를 제공해 주는 ‘촉각중심의 점자안내지도’이다.

현재 대부분의 촉각지도는 보행환경과 목적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안내 표지판의 지도에 시각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점자와 돌기를 병행 표기하고 있다.

촉각 그래픽(Tactile Graphic)은 시각장애인들이 촉각을 이용하여 감지할 수 있도록 표면에 돌기를 사용한 이미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지도, 그림, 그래프 및 다이어그램과 같은 비 문자정보(non-Textual Information)를 전달하는데 사용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시각장애인이 구두설명, 사운드, 또는 촉각 등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데, 촉각 그래픽의 가장 보편적인 사용물 중 하나가 촉각지도(Tactile Map)이다.

촉각지도는 시각장애인의 보행에 있어서 기존의 편의시설들이 보행환경, 방향정보 및 위험신호 등과 같은 제한적인 정보만을 제공할 뿐 방향정위에 대한 근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하고, 시각장애인에게 보다 효율적인 보행환경을 제공하여 독립보행을 도와주기 위해 개발되었다.

즉 비장애인인 정안인((正眼人)들이 어떤 장소로 이동할 때 지도를 보고 가야 할 경로를 정하거나 공공시설을 방문할 때 표지판이나 안내지도를 참고하여 목적지를 찾는 것처럼, 시각장애인이 특정 장소로 이동할 때 촉각지도를 활용하여 보행환경과 목적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 받는다.

보통의 촉각지도는 정안인을 위한 안내 표지판에 있는 것과 같은 지도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하여 돌출된 이미지와 점자를 함께 표기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독립 보행에 있어서 촉각지도의 효용성은 방향정위에 많은 도움을 줌으로써 많은 선행연구에 의해 매우 유익함이 이미 증명되었다.

키드웰(Kidwell & Greer, 1972)은 점자나 테이프지도보다 촉각지도가 초기에는 많은 지각적 요구를 필요로 하나 점차 시각장애인의 동기를 유발하여 보다 효율적인 보행이 가능하다고 하였고, 벤트젠(Bentzen, 1977)은 보행시력이 거의 없는 시각장애인이 촉각지도를 이용하여 익숙하지 않은 캠퍼스를 혼자 경로를 선택하고 보행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또한 매그리온(Maglione, 1969)은 언어적 지도와 촉각지도를 사용한 시각장애인은 단지 언어적 지도만을 사용한 시각장애인보다 방향정위에 있어서 실수가 적고 짧은 시간에 주어진 경로를 보행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셰필드핼럼대학과 아트앤디자인연구소가 공동으로 개발한 “택맵(TacMap™)”은 잉크에 반응하는 특수용지에 인쇄된 시각장애인용 아이콘이 포함된 지도에 특수 열처리 공정에 의해 촉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표면이 형성되어서 전맹인과 부분 실명자들의 독립적인 실내보행을 지원하기 위한 촉지도이다.

위성 내비게이션(navigation)을 이용한 길 찾기와의 비교 테스트를 통한 사용자 실험에서 택맵은 음성을 이용한 정보 제공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였으며, 장애인이 위치한 주변 환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함을 확인하였다.

특히 택맵을 사용하는 동안에도 시각장애인들은 자신의 위치와 관련된 다양한 주변 소리를 놓치는 일이 없어서 매우 유용함을 발견하였는데, 이러한 결과는 현재의 위치서비스 기반과 주변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전송, 활용 가능한 스마트 폰 기반의 서비스로 발전시켜 활용가능 할 것이다.

이런 점자촉지가 가능한 촉각지도를 제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도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는 펀칭을 이용한 엠보싱(embossing)법,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판이나 금속판을 화학적 부식(腐蝕)으로 만들어내는 방법 그리고 금속판을 NC밀링을 이용해 정밀 절삭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중 금속판을 화학적 부식으로 다듬어 만드는 부식형 촉각지도 생산법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데, 최근에는 시각장애인이 보다 쉽게 인지 할 수 있는 엠보싱 방법을 부식형 촉지도 생산법과 병행하여 제작하고 있다.

픽토그램 (Pictogram)은 "픽토(Picto)"와 전보를 뜻하는 "텔레그램(Telegram)"의 합성어로, 사물과 시설 그리고 행동 등을 상징화된 그림문자(pictograph)로 나타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타낸 상징문자를 말한다.

보통 화장실·관광 안내소·지하철·교통표지판 등 공공장소나 공공시설에 많이 이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화장실·식당·엘리베이터·버스정류장 등 각종 공공시설 픽토그램을 이미 한국산업규격(KS)으로 제정해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 국제 표준화는 일반화되어 있지 않지만 올림픽경기대회 종목의 픽토그램과 같은 국제표준은 이미 정해져 있고, 여러 분야에서 국제 표준화 작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ISO가 정한 ISO 7001은 대표적인 국제 표준이다.

기호이며 동시에 의미인 그림언어로서의 픽토그램의 특징은 1) 정보를 단시간에 전달한다. 2) 수신자의 지적노력이 최소화 된다. 3) 시각에 호소한다. 4) 공간성 기호로서 시간적 제약을 극복한다. 5) 공간을 절약한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처럼 정보습득에 있어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픽토그램은 시각적 감각기관에 기초한 표현이다.

이것을 단순히 촉각에 의해 인지할 수 있도록 돌기의 형태로만 바꾸는 것은 시각장애인의 촉지각 특성이 반영되지 않아서 이들이 촉각으로 분명하게 인지하여 정보를 습득하기 힘들다.

향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적용 대상인 시각장애인의 장애특성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개선책에 대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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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Kg의 미숙아로 태어나면서 출생 시 의료사고로 심한 뇌병변장애를 운명처럼 가지게 되었다. 부산장애인자립생활대학 1기로 공부했으며, 대구대 재활과학대학원에 출강한 바도 있다. 지금은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모바일‧가전을 포함한 장애인 접근성, 보조공학 등 관련 기술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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