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마법사, 손으로 그림을 봐요! ⓒ은진슬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 중에 L제과에서 만든 ‘빈*’이라는 초코 과자가 있다. 동그란 쿠키의 뒷면에만 제법 두껍게 초콜릿이 커버 되어 있는데, 초코홀릭인 아들이 무척 좋아한다. 사실 이 과자는 대학 시절 학교 매점에서 처음 본 이후로 내가 즐겨 먹던 과자이기도 하니, 엄마와 아들이 대를 이어 즐기고 있는 셈이다.

우리 모자가 이 과자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그건 바로 이 과자의 초콜릿이 커버된 부분에 그려져 있는 다양한 그림들 때문이다. 바이올린, 하프, 자전거, 공주, 배, 피아노, 오선지 위의 악보 등등….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그림들이 제법 정교하게 묘사된 도들새김으로 그려져 있다. 아이는 낱개 포장된 이 과자를 뜯으면서 이번에는 어떤 그림이 나올지 늘 궁금해 한다. 나 역시 대학시절 연습실이나 도서관에서 이 과자를 먹으며 똑 같은 궁금증을 가졌었다.

아이가 네 살 때였던가?

그 날도 아이와 함께 이 과자를 나눠 먹고 있는데, 이 과자에 대한 나의 대학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이 과자로 아이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얼른 그 찰라의 사고를 낚아채서 아이에게 바로 실행해 보았다.

아이와 과자에 새겨진 그림을 맞추며 자연스럽게 장애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은진슬

나는 뜯지 않은 과자 하나를 들고는 아이에게 무지무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응아! 이번에는 어떤 그림이 나올까? 피아노, 배, 바이올린, 자전거? 엄마는 무척 궁금한데, 이응이는 어때?’

‘나도 궁금해.’

‘그럼, 엄마가 마법 하나 보여줄까? 엄마는 이 과자를 뜯지 않고도 이 과자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맞힐 수 있거든. 한 번 볼래?’

아이는 나의 과장된 억양과 모션에 호기심을 보이며 내가 다음에 무얼 할지 숨죽여 기다렸다.

나는 일부러 시간을 좀 끌면서 뜯지 않은 과자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아이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 과자에는… 바이올린이 그려져 있어. 이응이가 과자를 뜯어서 엄마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한 번 확인해 볼래?’

‘우아! 진짜 바이올린이 그려져 있네. 엄마 어떻게 알았어? 신기해!’

아이는 무척 신기해 하며 나 한 번 쳐다보고, 과자 한 번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엄마가 마법을 부린 거지. 엄마 마법사인거 몰랐어? 엄마는 다른 엄마들은 못 읽는 점자도 읽을 수 있고, 그래서 잠들기 전에 깜깜한 방에서도 책을 읽어 줄 수 있잖아?’

물론, 이런 말은 아이가 세 살 까지만 통했다. 곧 다섯살을 목전에 둔 네 살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써먹어 본 것이다. 아이는 그건 아니라는 듯, 좀 더 구체적이며 진실된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응아, 엄마가 눈이 나빠서 작은 글씨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점자로 책을 읽는 거 알지?’

‘어, 알아.’

‘엄마는 점자를 잘 읽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느끼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아서 과자를 뜯지 않고 만져 보기만 하고도 그림을 맞힐 수 있었던 거야.’

‘아! 그렇구나!’

‘이응이도 한 번 해 볼래?’

...

그 날 이후로, 아이는 이 과자를 먹을 때마다 손으로 만져보며 그림을 맞혀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역부족이다. 아마도 좀 더 시간을 갖고 다양한 촉각적 자극들로 연습을 하다 보면 머지 않아 맞힐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즘 들어, 내 점자정보단말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자꾸 눌러 보고 만져 보고 하는 걸 보면, 폼은 금방 점자라도 읽을 태세이긴 하다. 장애부모로서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아이의 생각주머니가 자람에 따라 과연 언제, 어떤 방법으로 나의 장애와 그로 인한 다름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

나의 경우 아이가 만 3세가 되었을 때, 아이에게 자기 전, 불 꺼진 침실에서 점자 동화책을 읽어 주면서 나의 장애와 그로 인한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가진 장애로 인해 아이에게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공룡파워' 능력을 가진 엄마로 살고있다. ⓒ은진슬

나는 이 의식을 조금 거창하게 ‘Reading in the dark’라고 부르는데,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자기 전에 아이와 책 읽는 행위가 방의 불을 모두 끄고 점자 동화책을 읽는다는 요소 때문에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점자로 책을 읽는다는 건, 글씨를 볼 수 없어 점자를 사용해야 하는 내 장애 특성(어찌 보면 약점?)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인 동시에, 불 꺼진 침실 침대에 누워 배 위에 책을 올려 둔 채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줄 수 있는 나만이 가진 장점을 가장 잘 부각 시켜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Reading in the dark’를 매개로 가장 직설적이며, 가장 정확하고 명쾌한 언어를 사용하되, 아이의 눈 높이에 맞는 설명을 보태 가며 엄마는 시각장애인이고, 그로 인해 어떤 것들이 불편하며, 또, 어떤 것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잘 하는지 등등을 이야기 해 주었다.

이 ‘reading in the dark’ 덕분에, 한동안 나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들은 갖지 못한 ‘공룡파워’로 캄캄한 방에서 동화책을 읽어 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엄마로 살 수 있었다.

위에서 소개한 과자 그림 맞히기 놀이 역시, 어찌 보면, 부모 스스로도 아이와 다루기 쉽지 않을 수 있는 ‘장애’라는 주제를 좀 더 가치 중립적이며 밝은 톤으로 공유하고 싶은 내 바램이 만들어 낸 일상의 마법이 아니었나 싶다.

장애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장애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야기 하며 아이의 이해를 구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특히, 부모가 자신의 장애를 바라보는 마음이 건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아직은 나의 돌봄을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아이, 나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유아기 아이에게 나의 다름, 나의 약함을 인정하며, 아이의 이해를 구하는 일은 해도 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될 수 있으면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장 담백하고 정직하게 시작해야 하는 일이 바로 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이가 옆집 엄마 한 번 쳐다보고, 나 한 번 쳐다보며 의아해 하는 날이 오면, 그 땐 이미 늦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와 어둠 속에서 책을 읽고, 과자 그림 맞히기를 하는 것은, 내 아이가 장애라는 문제에 대해 그 안의 엄연히 존재하는 결핍과 약함만을 바라보기 보다는, 그 안의 공존하는 ‘강함’과 ‘혁신적 문제 해결 능력’ 역시 바라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내 아이가, 불가능에서 가능을 꿈꾸며,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고, 어둠 속에서 빛을 볼 줄 아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 준다면, 손으로 그림을 보고, 눈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 역시 멋진 마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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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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