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떤 이유로 장애인복지시설에 살아야 한다면?

내일부터 일 년 동안 시설에 살아야 한다면?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습니까? 누구는 살겠다 하고, 누구는 못 살겠다 하겠죠. 시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설의 삶을 기대할 수도 있고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기대와 절망, 어느 쪽입니까? 기대합니까, 무엇 때문에? 절망합니까, 무엇 때문에?

절망했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절망하는 사람에게 시설은 어떤 곳일까요. 자원봉사 가서 먹어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언제 한번 가 본 시설의 위치가 좋지 않아, 뻔한 건물 구조와 평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니면, 시설은 누군가에게 잊힌 존재가 되는 어떤 낯선 곳이야, 누군가에 통제되는 어떤 두려운 곳이야. 혹은, 그곳의 '삶’은 뭔가 달라.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이 질문과 답은 만만치 않습니다. 당혹스럽고 괴롭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은 답해야 합니다. 시설의 삶을 기대하는 나의 이유가 지금 시설에 사는 그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시설의 삶을 절망하는 나의 이유가 지금 시설에 사는 그에게 있음에도 그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그렇고 그렇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내 복지관에서 일할 때, 아파트 긴 복도를 지나며 무심결에 한 집 한 집 흘깃하다 멈춰 섰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여기는 어디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선생님께서 먼저 ‘해배解配’를 말씀하셨습니다. 아파트 복도에서 받았던 충격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는 복지관을 퇴사했었죠.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왜 그때 그렇게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았느냐고 꾸중하셨습니다. 그와 관련된 문헌을 살피거나 글을 쓰거나 고민을 나누었어야 한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말해야 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항변해야 했지만, 지금껏 제대로 말하지도 외치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내가 하려했던, 했어야 했던 말은 ‘해배’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해배는 이렇습니다.

"OO복지원, OO촌, 영구OOOOO… 마치 뭐 분류 수거하듯 약자를 분류 수용하고 관리 통제하는, 마치 뭐 쓸어 담듯 약자를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복지판 인종 청소라 할지 모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실상 사회와 격리된 채 복지기계로 생존 연명하는 약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약자 복지 별천지, 약자들의 집단 거주지, 어떤 곳은 유배지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곳의 사회사업가라면 ‘해배’를 도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리적 해산은 몰라도 사회적 해배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릇 사회사업가라면 약자를 분류 분리하는 일에 삼가 나서지 말고 방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불가촉천민 흉악범 전염병자 다루듯 격리를 획책하는 체제의 하수인 노릇 하며 그 분리의 고착화에 가세해서는 안 됩니다." <<복지야성>> <복지기계>, 2016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가 결국에 이루려는 일은 무엇인가? 해배입니다. 자기 일상과 삶에서 유배된 자를 다시 자기 일상과 삶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시설에서 시설 사회사업가가 할 일입니다.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자기 일상과 삶을 만날 것입니다. 한 쪽 다리 싸매어 창공으로, 덫을 풀어 산 속으로, 한 때 목마름을 채웠으면 다시 광야로, 상처 입었을지언정 야생으로, 본디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시설에서 시설 사회사업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자기 일상과 삶으로부터 유배되는 배경에는 가난, 질병, 장애 같은 약자의 처지와 상황이 있습니다. 또 다른 상황이 있는데, 이것은 참 슬프고 괴롭습니다. 동료들을 생각하면 이런 주장이 미안하지만, 해배가 사회복지사의 할 일이라고 했지만, 장애를 이유로 그의 일상과 삶을 통제하는 복지시설과 사회복지사로부터의 해배도 필요합니다.

"인격적 복지, 인간적 복지, 자연스러운 복지를 원합니다. 도움을 받을지라도 인격적 품위를 지키고 싶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을 인지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을 스스로 선택 활용하는 주체적 인간이고 싶습니다. 항생제나 수술 같은 서비스에 내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일방적 서비스 대상이고 싶지 않습니다. 주는 대로 받으라는 식의 서비스는 싫습니다. 설명을 듣고 싶고, 선택 통제하고 싶고, 주체로 참여하여 제구실하고 싶습니다. 제 삶 제 복지의 주인 노릇 하고 싶습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 앞에 애 같은 노릇 약자 노릇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마음을 미루어 사회사업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돕고 싶습니다." <<복지야성>> <자연주의 사회사업 배경>, 2016

내가 시설에 산다면, 어머니 품에, 친구 곁에, 동료와 함께, 이웃과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아웅다웅해도, 옥신각신해도, 치열해도, 무리 속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지 곤지 찍고 만날 사람이 있고, 한 벌 차려입고 갈 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맨밥도 좋고 진밥도 좋다, 내가 했다 하면 좋겠습니다. 돌돌 말아 넣어도 내 옷장이면, 드문드문 쓸어도 내 방이면, 한 평 누울 자리도 내 집이면 좋겠습니다. 누구는 동쪽 창이 좋다지만 누워서 노을 보는 서쪽에 창을 내겠습니다. 자기 일상과 삶으로, 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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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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