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현재까지 유아 장난감 시장의 가장 핫한 아이템은 누가 뭐래도 단연코 ‘터닝메카드’일 것이다. 유행을 따르는 최신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는 편인 우리 집에 조차 조카를 사랑하는 큰이모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이 대단한 장난감이 서식하고 있는걸 보면, 이 장난감의 인기와 위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터닝메카드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

‘넌 터닝메카드 뭐 있어?’,

‘난 에반 있는데, 이거 구하기 진짜 어려운 건데 우리 엄마가 사줬다.’

아이들의 이런 대화는, 나로 하여금 이와 매우 유사한 어른들의 다른 대화를 떠올리게 만들기도했다.

‘어머! 저 가방 에르메스잖아? 구하기 힘든 모델이라던데.’

‘난 언제 저런 백 들어 보나.’

마트나 소셜 커머스에 터닝메카드가 떴다하면 마치 백화점 세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엄마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은진슬

우리 유치원 반톡방에도 터닝메카드가 근처 마트나 소셜 커머스에 떴다 하면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며 카톡 알림음이 몇십번씩 울려 대는 통에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에 빠지곤 했다.

좀 더 적극적인 한 두 명의 엄마들은 이게 풀린다는 날이면 근처 마트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구해 왔다며 당당하게 승전보를 울리는 전사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터닝메카드라는 대단한 장난감이 만들어 놓은 이 뜨거운 소용돌이 가장자리에 서서 남의 일 보듯 관조하던 내 머릿속에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터닝메카드를 진짜 갖고 싶어 하는 건 누구일까?’

아이를 키우며 장난감과 미디어 절제에 관한 원칙이 나름 견고하게 확립되어 있다고 생각해 온 나에게 조차 이 뜨거운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터닝메카드 애니메이션에 노출되는건, 에니메이션보다 재미있는 무언가를 해주려는 엄마의 눈물겨운 노력 같은 걸로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 밖, 유치원이라는 아이들의 사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는 법.

아이는, 터닝메카드를 매번 빼놓지 않고 시청하며, 트렌드에 맞는 터닝메카드 장난감들을 어떻게 해서든 구해 주는 엄마를 가진 대부분의 주류 아이들과 다른 자신의 입장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가끔은 자신도 친구들이 말하는 에반이나 타나토스가 갖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런날, 터닝메카드가 어느 소셜에 풀렸다는 반톡방의 쓰나미라도 몰려오면, 나 역시도 ‘내가 너무 한가? 남들이라고 다 저렇게 하는데, 내가 내 육아소신 때문에 너무 아이를 비주류로 만드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 흔들리기도 했다.

이렇게, 주위 환경 때문에 내 육아소신이 뿌리째 흔들리는 날이면 나는 비주류 장애인으로 살아 온 38년산 내공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주류의 거센 소용돌이에 몸을 맡기는 대신 굳건히 버텨내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다. 난 주류에 속할 수 없는 것이 어떤 건지, 비주류가 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분명히, 그건 결코 쉬운 일도, 기분 좋은 일도 아니다. 특히, 그 상황이 철저한 내 자발적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음에 기인한 것이라면 더 그렇다.

반면, 뼛속까지 비주류로 살아온 내 인생 경험은, 남들과 다르다고, 비주류가 된다고 해서 당장 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것 역시 가르쳐 주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과 믿음만 있다면, 나는 여느 엄마들과 조금 다른 육아관을 갖거나 실천하는것, 비주류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이것은 장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가지게 된, 드물게 큰 자산 중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터닝메카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지 않고,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가 울며 떼쓰기 밖에 더 하겠는가 ⓒKBS2 '터닝메카드'

우리 아이는 터닝메카드를 본 적이 없어도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하는 행동을 어설프게 따라하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재미있게 논다.

TV도 보지 않는 아이가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만 듣고는 이상한 멜로디로 노래를 불러 대는걸 듣다 못해 괴로웠던 피아노 치는 엄마는, 엄마 귀의 안녕을 위해 아이가 잠든 후 유튜브에서 터닝메카드 주제곡을 검색해 두어번 듣고는 잔뜩 폼을 잡고 연주해 주기도 했다.

아이는 나와 함께 신나게 터닝메카드 주제곡을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기뻐했다.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주인공 에반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그 마음을 공감해준 다음, 그 장난감이 지금 왜 구하기 어려운지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 주고, 다른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주니, 아이는 좀 더 구하기 쉬워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많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내 아이에게만 없다는건 아이들에게나 엄마들에게나 다소 불편한 경험일 수는 있다. 하지만, 미디어를 적절히 절제하고, 그 장난감이 왜 구하기가 어려운지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면, 엄마들 생각과는 달리 아이들은 의외로 그 상황을 별 불편감 없이 생각보다 훨씬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생각해 보라! 다섯 살 아이가 터닝메카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에반이나 타나토스를 당장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뭘 어쩌겠는가? 기껏해야 울며 떼쓰는 게 다일텐데 말이다.

터닝메카드를 손에 갖고 싶어하는 건 아이의 결핍을 견딜 수 없는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KBS2 '터닝메카드'

결국, 터닝메카드 문제도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일으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 아이가 갖지 못하는걸 견디지 못하는 엄마, 내 아이가 결핍을 느끼고 건강하게 소화해 가는 과정을 견딜 수 없는 아빠, 자기 자신이 이런 상황들을 제대로 핸들링하지 못하는 어른들 말이다

어쩌면, 터닝메카드를 진짜 갖고 싶어 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 아빠일지도 모를 일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