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부모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와 놀아주며 여느 다른 부모와 다르지 않다. ⓒ은진슬

아이가 유치원 입학을 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방과후 과정에 지원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알아 보기 위해 담임 선생님께 여쭤본 적이 있었다.

우리 유치원이 워낙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기도 했고, 종일반과 반일반 원아를 따로 구분해서 지원을 받아 제비 뽑기를 했기 때문에 종일반 T.O가 압도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무모하게 종일반으로 지원했다가는 유치원 입학 자체를 못하게 될 확률이 너무 높아 반일반으로 원서를 넣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유치원에 들어오고 한 달쯤 지나니 누구는 종일반에 벌써 대기했다가 들어갔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엄마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고, 나로서는 공식적인 안내나 공지를 받은 적이 없다 보니 여쭈어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질문을 드리자 선생님은 뜻 밖에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드는 질문을 되돌려 주셨다.

‘어머니, 방과후 과정에 지원하시려면 어머님, 아버님이 모두 일을 하셔야 하는데……’

‘네, 저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는데, 증빙이 가능한 상황이고요.’

‘그럼 아버님도 일을 하세요?’

‘……’

‘아, 네, (당연하지요.) 아빠가 일을 안 하면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어요?’

나야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를 썸타며 사는 사람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우리 남편이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었는지 도저히 내 짧은 생각으로는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가 금 수저라도 물고 태어났단 말인가? 그래서 일을 하지 않아도 아이 하나 정도는 거뜬하게 키울 재정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신 걸까? (아,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금수저는 고사하고, 은수저도 못 물고 태어난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미생 가정인 것을……

만약, 위의 가정이 틀린 거라면, 그 밖에 어떤 가정이 가능할까? 장애를 가진 우리 부부가 정상적으로 일 하며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들 것이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 중의 그 누군가가 키다리아저씨가 되어 내 아이를 경제적, 물리적으로 대신 양육하고 있다고 생각 하신 걸까?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매일 아이를 등/하원 시키고, 유치원에서 매월 실시하는 부모 교육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 하고 있는 나와 남편은 육아에 있어서의 얼굴 마담이란 말인가? 제3자인 당신은 교사의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위와 같은 나의 추론이 혹자에게는 너무 과장된 비약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4 년간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상황을 숱하게 마주쳐 온 나로서는 슬프긴 하지만, 이런 추론을 완벽히 배제할 수도 없다. 작년에 아이가 반나절씩 다녔던 어린이 집은 외조카 둘이 다니는 어린이 집이었다.

집에서는 아주 멀었지만 처음 국공립 어린이 집에서 엄마의 장애 때문에 당했던 어처구니 없는 인권 차별적 행위 때문에 도저히 그 곳을 다닐 수가 없어 아이를 내가 계속 데리고 있던 중, 조카들을 돌보시는 친정 엄마의 권유로 그 곳에 다니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부모 상담을 가니 원장 선생님은 아이가 어디 놀러 갔다고 하거나, 쇼핑을 갔다고 하면 그 모든 일들은 다 남동생이나 올케 등의 외가쪽 식구들이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가정해 버리고 상담에 임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이유는 우리 올케는 3교대를 하는 대학병원 간호사고 남동생은 지방 발령을 받아 집에 자주 오지도 못한다는 것을 모르시지 않을 텐데도 저런 가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필요한 경우에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환승해야 갈 수 있는 그 어린이 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도 말이다.

지금의 유치원 입학 후에 있었던 부모 상담 때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원장 수녀님께서도 이 근처에 부모님이나 다른 형제들이 살고 있느냐, 그들이 많이 도와 주느냐는 질문으로 상담을 시작 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부모됨’의 가능성과 ‘부모됨’ 그 자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라고 밖에는 뭐라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다.

부모가 되기 전, 자격시험을 봐야한다면 3가지를 자문해보자. ⓒ은진슬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면 결국 부모의 자격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데… 만약,우리가 부모가 되기 전, 자격 시험을 보아야 한다면 어떨까?

아이를 심리/정서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건강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는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다방면의 육아 지식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갖추어야 할 금전적 자원은 갖추고 있는가?

다행히(?) 내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을 때까지는 그 어디에서도 이런 자격을 공식적으로 묻거나, 서류 전형 같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만약 이런 걸 요구했다면, 나는 당장 부모 자격 시험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심한 우울증에 장애까지 있었으니 두 번 말해 무엇 하랴?

그렇다고 내가 대책도 없이, 아무런 검증도 없이 아이를 덜컥 낳은 것도 아니다. 어찌 그럴 수 있었겠는가? 나는 장애인인데 말이다. 어느 정도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서 나 정도의 책임감과 성실성,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부족한 점이 없진 않지만, 나 나름의 최선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은 섰기에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한 것뿐…

오랜 불임으로 너무도 아이를 기다렸던 사람이거나, 특별히 극도로 진지하여 모든 일에 미리미리 대비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도 나와 많이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쳐 어쩌다 엄마, 어쩌다 아빠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야말로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블랙코미디 속의 주인공처럼 좌충우돌 울고 웃으면서 부모가 되어 간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하고 불완전한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의 부모로서의 자격에 대해서는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말하는지…

인간극장이나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어려운 장애인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모습, 정말이지 경제적으로 너무나도 힘들어 아이에게 세 끼 따뜻한 밥 조차 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접하곤 한다.

당신은 이런 장면을 보면서

‘아이고,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장애인이 애만 불쌍하게 애는 왜 낳는지? 자기 몸 하나나 건사 잘 하지?’,

‘낳기만 하면 다 부모인가? 어떻게 저렇게 대책 없는 상황에서 애를 낳을 생각을 했을까? 개념도 없이…’ 와 같은 말을 읊조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지?

반면, 당신이 이제 막 결혼을 한 새내기 부부인데, 부모님 도움도 받을 수 없어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아주 작은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상황에서 당신은 임신을 했다. 그런데, 회사 동료가 당신에게 ‘어머, 그렇게 작은 집,그것도 내 집도 아닌 월세 살이 하면서 무슨 언감생심 아이를 낳으려고 해?’라고 말했다면 당신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사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저런 말을 당신에게 대놓고 하는 회사 동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이나 경제적 취약계층들에게 우리는 왜 이리 ‘부모의 자격’에 대해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함부로 판단하며 말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그들의 약점은 우리들의 약점보다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아이를 키우기에는 너무나도 부적절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코올홀릭일 수도 있고, 범죄 이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 말 오해하지 말기를… 이런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서는 안되느냐? 그럴 리가? 그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결여 내지는 결핍을 가지고 부모가 되는 사람들의 예시를 들려다 보니 이런 경우를 들었을 뿐, 그런 사람들도 최소한 그 아이를 위해, 그 아이를 통해 자신이 부모로서 책임감을 갖고 더 나은 부모로,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결심하고 노력한다면 그걸로 된 거다.

최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은진슬

비록 4년여의 짧은 경험이긴 해도, 장애 엄마로서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자격’, ‘부모의 자격’이란, 철저히 나와 아이 사이에서 진정성을 갖고 서로를 이해해 가며 공들여 돌탑이나 블록을 쌓아 가는 과정과도 같은 일이 아닌가 싶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내가 좋은 부모라고 말해도, 내 아이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반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아무리 보잘것없고 부족한 엄마일지 몰라도 내 아이가 나를 멋진 엄마, 대단한 엄마라고 생각해 준다면 그걸로 나의 ‘엄마 자격 시험’은 A⁺ 통과일 것이다.

우리 아이는 요즘 들어 다섯 살 남자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엄마가 다른 친구 엄마들처럼 카봇에 나오는 멋진 차를 운전해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데려가 줄 수 없다는 것에 다소 슬퍼 하고 있다. 나도 내 아이에게 좀 더 편안한 이동 수단을 제공해 줄 수 없어 슬프다. 특히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먼 곳까지 놀이수업을 다녀와서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밤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일은 구글에서 빨리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 되어 가격이 확 떨어지지 않는 한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해 줄 수 없는 일이기에,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의 이해를 구하는 수 밖에 별 수가 없다. 엄마가 다른 엄마처럼 멋진 자동차로 너를 대리고 다닐 수 없어 미안하지만, 지금 그걸 누릴 수 없는 대신에 네가 운전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가장 먼저 너에게 멋진 차를 사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이다.

내 아이에게 하늘에 별 같이 많은 멋진 책들을 모두 다 읽어 주고 싶은 건 모든 엄마의 마음이겠지만, 나는 글씨를 볼 수 없으니 제한된 책들이나마 매일 밤 점자로 인쇄된 동화책을 하루도 빠짐 없이 진정성을 담아 읽어 주는 것으로 내 미안함과 아쉬움을 대신할 뿐이다.

오늘도 당신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당신의 아이를 키우듯이, 나 또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내 아이를 키우고 있을 뿐…

그러니 혹여 당신도 옆집 엄마가 해 준 그 무언가를 당신이 해 줄 수 없어 자괴감이 느껴지는 밤이 오거든 내 말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부모는 없다. 그저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과 진정성을 담아 아이에게 최선을 다 할 뿐… 그거면 충분하다.

그렇게 진정성을 담아 열심히 최선을 다 해 부모 역할을 하다 보면, 설사 우리가 최고가 아니었더라도, 조금은 상처를 주었더라도, 부족했더라도 아이들은 우리를 이해해 줄 것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