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처리된 100여개 이상의 제·개정된 법률 중에 장애인들의 건강권과 깊은 관련이 있는 법안이 하나 있었다.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이 법은 문정림의원이 대표 발의한 ‘장애인 보건법’과 김용익의원이 대표 발의한 ‘장애인 건강권 보장에 관한 법률’을 상임위에서 병합 심사한 결과물이다. 장애인들의 건강권에 대한 오랫동안의 요구에 나온 법안이라 의료계뿐만 아니라 당연히 당사자들의 관심도 크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종합계획’을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포함하여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하였고,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 건강검진사업, 건강관리사업, 건강보건연구사업, 건강보건통계사업, 건강교육 등의 사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재활의료기관의 정의 및 지정기준에 관한 근거 규정 마련(시행일은 공포 후 2년으로 함),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사업, 장애인 진료 등을 수행하기 위한 중앙장애인보건의료센터와 시도별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하였고,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인건강주치의 제도를 시행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제정소요 등을 감안하여 장애인건강관리사업을 재량규정으로 수정하고 법 시행 전 시범사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부칙 제2조), 시행일은 공포 후 2년으로 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25조는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가장 높은 수준의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결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인자신의 건강상태가 ‘ 좋음 또는 매우 좋음’ 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4.8%로 비장애인의 34.6%에 비해 19.8%p 낮았으며, 조사대상 장애인의 77.2%가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장애인 1인당 평균 1.8개의 만성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장애인은 34.9%가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평균 0.5개의 만성질환 보유한 결과에 대비하면 장애인의 건강관리가 매우 취약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범주의 확대 및 인구 고령화, 만성질환의 증가, 각종 사고·재해 등으로 인해 장애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의 보건의료서비스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장애의 관리 및 치료와 관련된 사회적 부담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소홀히 하여왔다.

장애인의 건강문제의 취약성이나 해결방안을 의료계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장애인의 건강문제마저도 경제적 논리로 보고 있는 의료기관들의 비도덕적인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들이 건강검진이 미진한 것은 장애인들을 위한 의료적 접근성에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료진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영적인 측면에서 크게 도움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재활의료부분은 심각성이 더하다. 특히 척수손상의 경우, 다학제간(정형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재활의학과 등)의 팀접근이 필요하고, 이후에도 재활의학과 전문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재활간호사, 언어치료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동료상담가, 직업재활사 등 다직종으로 구성된 팀에 의하여 재활치료의 목표 수립, 개인에 맞춘 전략 수립, 치료 과정 점검, 퇴원 계획 수립, 체계적 교육 시행 등의 세심한 절차가 필요하다.

이후에도 사회복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시행과 퇴원준비를 위한 주택준비, 보장구 준비, 직장(학업)복귀와 지역사회복귀를 위한 이동권, 활동보조 등의 면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아서 원스톱으로 환자(장애인)를 치료하는 재활병원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를 못했다.

3개월 단위로 다음 병원으로의 재입원을 준비해야 하는 척수손상환자들의 다급함을 보더라도 작금의 의료체계는 장애인들의 인권보다는 병원의 수익에 더 골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정부는 공공재활의료를 고민하게 되었고, 2008년 보건복지부 정책 기획사업으로 장애발생예방 및 장애 후유 관리 사업의 일환으로 권역별 재활병원 사업이 확정되어 시행하게 되었다.

공공재활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전국의 권역별재활병원.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경인, 강원, 충청, 영남, 호남, 제주권역별 재활병원. ⓒ이찬우

현재 전국에 6개의 권역별재활병원에 수백 억원의 국민세금을 투입하여 병원을 신축하여 개관하였고, 공공성이라는 명목 하에 재활의료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민영병원이라는 틀에 공공성이라는 명분을 입혀놓은 모양새라 병원별로 운영상태가 많이 다르다. 그마나 초기의 목적대로 공공성을 위한 사업을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고 본다.

주무부처는 권역별재활병원이 당초의 기획 의도와 목적성에 얼마나 부합되어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향후 권역재활병원사업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모두 위탁 경영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각각 권역별의 장단점과 위탁받은 기관도 꾸준히 제 역할을 하고 있도록 면밀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다.

위탁 경영 속에서 혹시나 재활전문성의 결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여야 한다. 특히 재활의료분야는 전문성이 담보가 되어야 초기의 재활병원설립의 의도를 명확히 할 수가 있고 그로인해 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효율적으로 시행하고 낙후된 지역재활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권역별재활병원의 점검 시에 꼭 국립재활원, 관할 지자체와 위탁기관을 동시에 불러서 공공성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인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예산의 확대 등의 적극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의미 있는 법이 통과되었다. 특히 공공의료의 역할이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 새로운 전달체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기존에 있는 의료기관들의 점검과 재설정을 통한 고효율의 장애인 건강을 책임지는 전달체계가 필요하다.

장애인의 건강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공공재활의료를 굳건히 하는 데에 경제적인 논리는 조금 뒤로 하고, 착한 적자를 감내할 수 있는 공공성과 책임성으로 무장된 새로운 의료시스템과 인식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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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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