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이승범

지팡이

김경식(남, 1982년생, 지체장애) 시인

뒷굽이 닳은 지팡이가 허공을 걸어간다

점을 찍으며 기역자로 서걱서걱 걸어간다

군데군데 긁히고 찌그러진 지팡이는

외할머니의 다리이자 아픈 손가락이었다

어릴 적 소아마비가 된 외삼촌이

열 살 때 고향집을 떠나 세상 떠돌며

온갖 구박과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주셨다는 그 지팡이,

외할머니의 고장 난 두 다리 대신

지팡이는 튼튼한 세 다리가 되어

밭과 들로 함께 다니는 그림자가 되었다

세상 미련을 버리고 먼 길을 걸어간 지팡이는

이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북천北天의 지팡이 별로 떠 있다

김경식_ 솟대문학 추천완료(2014. 시) <한국산문> 수필 추천완료(2014) 외.

시평 : 시로 쓴 가족사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시를 읽을 때마다 놀랍다. 어찌 이토록 짧은 글 속에 많은 이야기와 그보다 더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을까?

김경식 시인은 열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하며 지내다가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은 그에게 새로운 몸을 주었다. 그는 2014년 솟대문학 3회 추천완료 소감에 이렇게 썼다.

-그동안 김수영, 서정주, 백석, 고은, 신경림, 안도현, 문태준, 공광규, 나희덕 등 수많은 시인들의 시집을 많이 읽으며 언젠가는 꼭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 분들의 작품을 외우며 때로는 모방도 하고 비유와 묘사를 익히면서 습작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에 대한 편협한 생각과 좁은 시야 때문에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시창작법 이론서를 보고 배웠지만, 지금도 시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저 눈으로 사물을 보고 관찰하며 느끼고 생각한,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시를 통하여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경식 시인의 창작법이다. 시 <지팡이>에서 그의 관찰이 잘 나타난다.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고 걷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지만 시인이 외할머니를 관찰하여 시어로 빚어낸 그 모습은 독자들을 놀라게 만든다. 할머니의 한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는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의 삶은 편치 않았다. 장애 때문에 온갖 편견과 차별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 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선물한 것이 지팡이다. 다리가 불편했던 아들은 늙으신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팡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주인을 잃고 유품이 된 할머니 지팡이를 보고 시인은 지팡이를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또 다른 다리로 상징하였다. 그러면서 ‘북천北天의 지팡이 별로 떠 있다’고 시상을 확장한 솜씨는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얼마나 넓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게 한다.

할머니의 부재로 쓸모 없게 된 지팡이의 화려한 재탄생은 시인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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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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