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들, 조금씩 양보하세요.”

법정에서 소송 당사자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누님들”이란 호칭까지 동원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 과거 창원지법 제2민사부 재판장 최인석 부장판사 이야기다. 최판사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모름지기 대접받은 대로 행동하는 것일까?

당시 최 판사는 채권·채무의 규모를 놓고 법정에서 격돌한 50대 후반의 아주머니들을 상대하며 먼저 “여사님들, 장바닥에서나 사용하는 말씀을 판사실에서 쓰시면 되겠습니까?”라고 해 당시 험악한 분위기로 치닫기만 하던 상황을 일단 누그러뜨려 놓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내친김에 그는 “누님들, 돈이 얼마나 된다고 악착같이 싸우십니까. 전에는 사이가 좋았다면서요. 조금씩 양보해 소송 끝내고 편안하게 사시지요.”라고 권고했고, 이내 법정의 분위기를 다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1심에서 피고가 갚아야 했던 4천만원을 최판사의 보이지 않는 중재노력으로 1천만 원만 갚는 선에서 재판이 종결됐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법관의 권위를 실추시켰다며 법조계가 온통 비판 일색이지 않았을까? 권위주의의 상징이라고 입을 모으는 법조계가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던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대인관계의 상대성 때문일 것이다.

모름지기 소송 당사자들이란 피고와 원고로 나뉘어져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법정의 분위기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립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다반사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잘잘못을 가리려들기보다 “여사님”과 “누님”이란 호칭까지 써가며 정도(正道)를 걸어가실 것과 조금씩 물러서서 양보해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구하는 재판장의 태도에 적이 부끄럽고 당황스러웠을 법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들은 이런 재판장의 정중한 호칭에 그만 마음이 약해져서 화해권고를 받아들였으리라 믿는다. 대인관계란 모름지기 상대적인 것이어서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좋아질 수 없다. 어떤 특정인을 가리켜 함께 일할 사람이 못된다고 한다면 피차 마찬가지가 아닐까.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것을 가리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규정한 여우의 말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만남이 필연적으로 가져다줄 수밖에 없는 버성김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면 기꺼이 길들여지겠다는 마음가짐도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칼럼니스트 강종건님은 RI KOREA 정책관서비스 부위원장 역할을 맡고 있으며, 한국복지경영연구원 강종건 원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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