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의 표정부터 살펴본다.

기분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알 듯 말 듯 한 표정의 아이는 나를 늘 헷갈리게 한다. 혼자서 웃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하는 자폐성장애 아들은 내 시선을 온통 독차지 한다. 목욕을 시키면서도,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도, 내 눈은 아이의 표정만 살핀다.

기분이 좋은 거겠지? 주간보호센터에 보내도 되겠지?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다 오겠지? 아닌가? 기분이 안 좋은 건가? 보내지 말까? 좀 늦게 보내볼까?

매일같이 아침잠처럼 갈등은 깨어나고, 시작된 갈등은 밤이 되어서야 잠이 든다. 나처럼 자폐성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저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이 일상이 되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아니면 일찍 데려와야 할지, 멀리도 못가는 마음은 주간보호센터 주위를 서성인다.

명절이라 고향집에 다녀왔다.

친정어머님이 계신 곳이라서 그런지 늘 그립고, 가고 싶은 고향이다. 그러나 한번 가려면 몇 날 몇 칠을 갈까 말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저 펄펄뛰는 녀석을 데리고 어떻게 가야하나” “시골집에 가서 잘 놀까?” 이런저런 걱정이 앞선다. 갈등을 겪으면서도 결국엔 꼭 내려간다.

그저 딸자식이 내려오기만 기다렸다는 듯 어머님은 온몸으로 반기신다. 아직도 손수 빚으신 솔잎에 쌓여 있는 송편을 내놓으시며 허기진 배를 달래 주신다. 어디서 이런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어머님이 계신 고향은 참 좋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아이의 행동에 눈을 떼지 못한다. 혹여 어머님 앞에서 아이가 성질이라도 부리면 어떡하나?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잠시도 두 눈은 떠나지를 못한다. 눈치 빠른 어머님은 애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먹기나 하라고 하신다. 아니 눈치가 빠르신 게 아니라 어머님의 마음이 온통 나한테 있는 것이다, 내 두 눈이 아이를 따라다니듯이.

장애 자식을 데리고 노심초사하며 사는 딸의 고단함이 어머님의 마음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차저차 내 눈치 살피다가 한마디 하신다. “저 녀석 시설에 보내고 이제는 좀 편하게 살아라!”

거의 동시에 “엄마!” 내입에서 굉음처럼 째지는 소리에 어머님은 알았어. 알았어.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시다.

내 눈은 자폐성장애 아들을 따라다녔고, 그런 나를 애타는 마음으로 따라다니시는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렇게 명절이 지나갔다.

주간보호센터든, 생활보호시설이든, 내가 보내고 싶다고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나하고, 내 아이한테 선택권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그들이 내 아이를 선택해주어야 한다.

매 순간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아침잠처럼 깨어나는 갈등이 끝이 보이지를 않는다. 내 아이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은 현재로서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

이번 추석에는 슈퍼 문 이라고 하기에 꽉 차오른 달을 나도 한없이 올려다보았다. 정녕 내 아이가 이 땅위에서 편하게 살 곳은 없단 말입니까? 그래도 어딘가에는 있겠지요! 간절함이 자꾸 입안에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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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명 칼럼리스트
발달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인식개선 사업 차원으로 시내 고등학생, 거주시설장애인, 종사자들한테 인권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당사자의 삶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해 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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