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입니다. ‘지옥 같은 이 나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만큼 젊은 층들에게는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저번 세월호 참사나 이번 메르스 위기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신뢰하던 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사실상 대중들을 배신한 상황에서 이러한 표현이 나왔기 때문에 가벼이 여길 문제는 아닙니다.

또한 이미 양극화의 칼에 크게 베인 터라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파생어까지 나올 지경입니다.

젊은 층의 목표는 자신들도 살 수 있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원하는 것입니다. 복지의 확충이나 ‘좋은’ 일자리의 확대, 안전한 세상 등을 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젊은 층의 요구를 간단히 무시하기 때문에 젊은 층의 불만은 상당합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기성세대의 답이 젊은 층에서 설명하는 표현을 빌려 쓰면 “노오력이 부족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우리(기성세대)는 다 그랬어” 이런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젊은 층의 해결 전략은 제도적/사회적 변화가 아니라 ‘탈조선’, 즉 해외로의 탈출 밖에 없습니다. 진정 원하는 것은 제도적/사회적 변화인데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다보니 ‘헬조선’의 최전선에 놓여있다고 봐야 할 지경입니다. 불안한 일자리, 복지의 부족, 자립에 대한 사회적 지원 부족 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요즘, 어찌 보면 ‘신화’였던 그것을 ‘해체’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의지와 노력의 결과로 이뤄진 "오늘"이라는 신화를 스스로 부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전에는 제겐 “의지와 노력의 결과로 이뤄진 오늘” 이라는 ‘신화’가 있었습니다. 비록 그 와중에 수많은 험난한 길이 있었지만, 결국 이 상황에까지 달려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더 큰 항해를 앞두고 다시 점검해보니, 그것은 단지 작은 성공일 뿐이었고 지원은 부족했었기에 그저 그런 신화가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그 부족한 지원을 최대한 활용했기에 이 상황까지 달려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의지와 노력 이외에도 또 다른 무엇이 있었을까? “ 이 의문에 최근 저는 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대학에서 특수교육대상자 판정(고등학교 2학년 때 판정)을 받았던 제게 입학을 허가해줬던 것, 대학생활 첫날 장애 사실을 밝히고도 그것에 대하여 뭐라고 하지 않고 끝나는 날과 지금까지도 하나의 학우로 인정해 준 학우들, 특별하게 발달장애인에게만 문호를 개방한 장애인개발원의 특별 공채, 다시 잡은 새 직장(최근에 상황 변동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장의 결정 등등…….

누구에게나 사회적 지원은 필요합니다. 발달장애인에게는 그것이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복지에 대한 입장은 “복지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제공되어야 한다. 맞춤형 복지란 똑같이 제공하는 복지에 덤을 주는 것일 뿐이다!”입니다.

장애인이기에 지원되는 복지와 발달장애인이기에 제공되는 복지에 우리들이 ‘개인별지원계획’이라고 부르는 맞춤형 복지가 곁들여지면 발달장애인에게 지원되는 사회적/제도적 지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청년 발달장애인들은 이것을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나름 이것을 분석해보면 청년 발달장애인들도 나름대로의 욕구가 있고, 미래의 꿈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이렇게 비장애 청년들조차 ‘지옥 같다’라는 말을 자연히 말하는 이 시대에, 우리 발달장애인들도 이러한 상황을 헤쳐가야 할 지는 우리가 스스로 찾아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나 스스로 살아가기’의 방법이니까요.

한편으로 되돌아 보았습니다. 발달장애인들에게 나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준비가, 그 ‘헬조선’에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친다고는 합니다만 성인기 이후에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조차 의문점을 제기하곤 합니다.

어렵게 말해서 ‘복지시스템’이 촘촘히 지원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발달장애인들의 사정과 특성은 모르고 발달장애인을 모르는 기성세대들은 그 단어도 와 닿지 않을 발달장애인들에게 ‘노오력이 부족하다’니 ‘능력이 떨어지니 그 일만 해라’ 같은 비발달장애인에게도 치욕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제가 겪어본 느낌에 비롯해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자립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만 끝내 해야 하는 것임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헬조선’시대에서 발달장애인의 ‘나 스스로 살기’를 위한 것이 과연 ‘노력’만으로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제 저는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다만, 당사자가 모든 것을 혼자서, 노력만으로 할 수 있다는 질문에는 이제 ‘그렇지 않다’는 답은 할 수 있겠죠.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 그리고 저도 간절히 원하는 것은 충분한 사회적/제도적 지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이들의 요구는 그러한 자신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사회적/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것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도 있습니다. 최근 대안적인 정치운동이 싹트고 있다는 것이나, 일부 정치권에서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정책 대안 제시가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언론도 단순히 ‘헬조선’ 이라는 말이 인터넷에서 쓸모없이 나오는 소리가 아닌 사회에 대한 하나의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된 것과, 그에 이어지는 당연한 질문,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발달장애 청년들도 그렇게, 제게는 확실히 느껴지는 ‘헬조선’에서의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발달장애 청년들이 ‘나 스스로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리고 있는 것은 확실히 느낍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자마다 다르지만요.

발달장애인 청년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힘든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비장애 청년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는 모두 똑같이 다르기 때문에 답안지의 수를 셀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청년들의 절망 속에서 발달장애까지 가지고 있는 청년 장지용으로서의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겠습니다. 다만, 새로운 청년관련 표현을 가지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실 청년들의 현실을 담은 말은 참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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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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